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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의 추억

.. 조회수 : 1,997
작성일 : 2021-09-28 02:33:46
초등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대림동에 살았어요.
초등 때 전학을 가서 중등 때 다시 옮긴 거죠.

그때의 대림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대림동에 가 본 지가 10몇 년도 넘어서 지금 모습이 어떤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 같은 데서 언급되는 걸 보고 짐작하면 말이죠.
(요 아래 있는 이사 고민 글에서
대림동 같은 학군이면 이사가 답이다 하는 걸 보고 쓰는 거고요)

그때의 대림동은 그냥 응8의 쌍문동 같은 모습과 느낌의 동네.
저쪽 큰길 건너에 시장이 있고
큰길 이쪽의 동네에는, 고길동 씨 집 같은 집들이 (세 놓기 위한 다가구가 아니라 마당 딸린 주택) 있고 그 집들은 마당에 감나무 대추나무, 장독대가 있는 집들이었고…
저기는 오빠랑 둘이 남매인 내 친구네 집이고 저어기는 큰딸이 우리 언니 친구고 둘째인 아들이 내 동창인(친하진 않음) 가족이 사는 집이고 또 다른 언니 친구네는 동네 작은 수퍼를 하고.
마트 같은 게 없던 그 시절, 정육점, 쌀집, 그릇 가게, 유리 가게가 다 따로 있었고 그 집들 아들 딸들이 다 같은 학교에 다녔어요. 아침에 학교 가려고 나와서 걷다 보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손에 보온도시락을 든 중고등학생들이 걸어나와

친구끼리는 야~ 인사하고 같이 가고
속으로 좀 좋아하거나, 잘생겼다거나 예쁘다고 생각하는 같은 학교 학생과 마주치면 괜히 안 본 척 눈 내리깔고 같은 방향으로 어색하게 걸어가는 그런 풍경이 있었죠.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아이들이 합류해서 늘어나고 왁자지껄해지고
교문 앞에는 지각생 잡는다고 선생님이 서 계시고.
누군가 뛰면, 왠지 마음이 급해져 다 뛰기 시작.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군이랄 것이 없는 그냥 동네였는데… 날라리들은 꽤나 요란하게 놀기도 하는 동네였는데, 그런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날라리들과 상괸없이 우리같은 범생들은 우리끼리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잘 살았어요. 날라리들은 날라리들끼리 사귀고 싸우고 헤어지고 돈 뺏고 그랬지, 얌전이들은 웬만하면 안 건드렸거든요.
초등에서 중등, 십대의 초입에 들어서던 민감한 시절에 살았던 곳이라 왠지 더 그립게 기억나는 것인지는 몰라도. 기억의 왜곡은 없이, 사실 그대로를 쓰고 있어요.

그냥, 가나 초콜렛과 정말 맛있고 비싼(천 원) 티라미스
초콜렛, 예쁘고 맛있던 미니쉘 모카 맛 초콜렛을 가끔씩 사 먹던 크고 작은 가게들이 있고, 노랑 피아노 가방을 들고 체르니 치러 다니던 학원이 있고, 친구들하고 맘먹고 좀 멀리 가면 조각 치킨을 팔던 롯데리아가 있는 태양의 집이 있고(동네용 미니 백화점 같았어요) 그랬던, 신길동과 대림동.
가끔 그 롯데리아에서 치킨 한 조각 무료 쿠폰을 뿌리면 얼굴에 철판 깔고 가서 그것만 받아서 먹기도 하고.
기억하기론 그 치킨은 700원짜리였어요.
돈이 좀 있는 날은 밀크쉐이크를 사 먹기도 하고.

친구들 대부분은 비슷비슷한 주택에 살았고 근처 우성 아파트나 건영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도 가끔 있었어요.
빈부 차이가 있었다기보다는 주거 자체가 대개 아파트 문화가 아니던 시절이랄까요.
근처 아파트에 친척이 살아서 가끔 놀러가면, 자가용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지상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었어요. 물론 어린 제가 그 하얀 네모가 그어진 빈 터가 주차장이라는 걸 알 리 없고, 우린 그냥 그 드넓은 빈 땅에서 자전거도 마음껏 타고 거칠 것 없이 뛰어놀았죠. 이따금 가던 여의도 광장에서 놀듯이.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영어 배우러 가기도 하고.
62번인가 그랬는데.
우성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의 안내 방송은 항상
‘우성 아파트, 구 영창악기입니다’
였어요. 저는 그걸 들을 때마다 영창악기가 왜 여기 있었을까, 공장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큰 악기 가게가 있었을까 궁금해 하곤 했죠.

원래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추억을 생각하다 보니 계속 생각나네요. ㅎ 한없이 말할 수 있을 듯.

대충 그만 하고

그랬던 대림동이, 신길동이

그렇게 많이 변했나요? 조선족의 동네가 되었을까요? 엄마 심부름으로 고등어 사러 가던 그 시장은, 중국어 간판으로 뒤덮인 곳이 되었을까요.
다시 가면 그때 그 시절, 엄마랑 아빠랑 우리 식구들이 살던 예쁜 집은 찾을 수 있을까요?

그냥 대림동은… 어디 살았었다고 말하기 아무렇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 갑자기 어디 가서 말하기 뭐한 이름이 되어 버렸어요.
무서운 동네 이름,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험한 동네 이름처럼.

대림동.
내 인생의 몇 년을 살았던 곳. 가슴에 중학교 이름표를 처음 달고 중학생이 된 자부심에 차서 나풀거리며 걸어갔던 거리는 아직 거기 있는지.

가 보고 싶으나,
가서 아무것도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가서 보게 될 풍경이 두려워서 가 볼 수 없는
이제는 너무 자라고 지쳐 버린 사람이 그 이름을 안타깝게 떠올려 봅니다.
IP : 223.62.xxx.186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1.9.28 2:40 AM (210.94.xxx.156)

    맞아요.
    전 그동네 출신아니지만,
    친구가 있어 한두번 가본 대림동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어요.
    구로나 가리봉쪽보다는
    좀 여유있는 분위기.
    신길동도 먼친척이 있어
    중고딩때까지 몇번 가봤었는데
    그냥 서민 동네였어요.
    평범한 서민동네였던 대림동이
    지금은
    조선족,중국인 천지의 위험지역의 대명사가 된 듯해서
    원글님 마음이 이해돼요.

  • 2. ....
    '21.9.28 3:38 AM (106.102.xxx.132)

    중등 때 집 팔고 나오셔서 다행이네요.
    저희도 거의 30년 째 한집에 사는데
    팔려고해도 팔리지도 않고
    집주변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데
    주변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하네요.

  • 3. 잔잔한
    '21.9.28 7:25 AM (223.62.xxx.64)

    단편 소설이나 수필 한 편 읽은 느낌이에요 ♡
    고마워요~

  • 4. 너무나 좋은 글
    '21.9.28 7:40 AM (73.12.xxx.24)

    저는 도림동 살았는데 대림동에 영남중학교가 생겨 1회 졸업생이 되었죠.
    혹시나 후배일까.. 하는 생각에 댓글 씁니다.

  • 5. 얼마전까지
    '21.9.28 7:50 AM (118.219.xxx.224)

    대림동살았어요
    2006년 결혼해서 대림동에서 살다가
    2018년 11월 말에 이사했어요
    거기서 아이 둘 낳고 살다가 이사했어요
    인생에 힘들었던 때
    그곳에서 좋은사람들 많이 만났었어요
    아이들 학부모들 혹은 제 주변인들
    너무 고맙고 감사한분들, 잊지못할 분들을 거기서
    만났었네요
    아직도 그 곳에 살고 계신분들과 연락하면서
    지내는데 저에겐 그곳이 친숙하고 따뜻한? 느낌이요
    저도 영창악기 그쫌 이였는데 ㅎㅎ
    게시판에서 대림동글 보니 반갑네요 ㅎㅎ

  • 6. 저희친척도
    '21.9.28 9:14 AM (124.49.xxx.188)

    대림동 대림시장 초입 금은방있는 건물 갖고 계셨어요. 어직도 세받나 모르겠는데 아들하나라 혼자 물려받고 지금은 서판교살던데...
    얼마전 대림@시장에 만두사라갔는데 상인들 아찌나 불친잘하던지요

  • 7. ...
    '21.9.28 10:38 AM (14.55.xxx.141)

    글 잘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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