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밀사, 헤이그에 가다
을사늑약(1905)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하여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을 파기하고자 헤이그에 파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영국이 인도 지배를 묵인 받는 대신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하는 영일동맹으로....
이들은 일본의 방해 때문에 평화회의 본회의에 끝내 참석할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은 회의를 취재하던 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 기자들에 의해서 보도되었다.
7월 9일에는 기자협회에 귀빈으로 초청되어 이위종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라는 주제로 연설할 수 있었다. 이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받았으나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