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스포만땅) 오스카 주요상 지명 기념 '미나리' 2번째 관람기 (1)

... 조회수 : 1,271
작성일 : 2021-03-16 10:09:33
미나리를 처음 보려고 했을 때는 두번 볼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보고난 후에 자꾸 생각나고 다시 확인하고 싶은 몇몇 장면이 생각나서 지난 일요일 두번째 관람했습니다
이렇게나 단순한 영화인데 두번째 보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처음보는 것들이 생겨나는 신기한 영화였습니다.

제가 느낀 감상이라면 최소 오스카 각본상은 지명될 것 같아서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정이삭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직접 감독을 했으니, 각본상 지명이면 감독상도 지명 가능성 높아질 것이고, 이 두개 동시 지명이면 작품상까지 지명을 노려볼만할텐데, 다른 경쟁작을 본 적 없으니 비전문가인 제 입장에서는 예측을 해볼 수도 없고, 그저 궁금하게 기다렸는데, 역시나 셋 다 지명되었어요

지금부터 스포 만땅일 예정이니, 미나리를 앞으로 볼 예정이거나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가기 클릭 바랍니다.
==================================================================================================


















두번째 미나리를 보기 전에 제가 계속 머릿속에 굴리던 건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의 아칸소에 도착하기 전의 전사였습니다

제이콥은 몇살일까요?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40을 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이콥은 아칸소에 도착하기 전에 10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서울 아가씨 모니카를 만나서 지영 혹은 앤이라 불리는 큰딸을 낳아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했을테니, 제이콥이 20대 중반에 모니카와 결혼해서 2~3년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거라 추정해 봅니다
모니카는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니 50~53년 생이겠죠?
제 추정은 제이콥은 미국 교포였을 가능성, 무슨 일인지 서울에서 살다가 완전 한국토종인 모니카를 만나 서울에서 정착하려고 애쓰던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가진 건 젊은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대가족의 장남이었지 않았을까 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기에 너무 힘들어서 서로를 구해주자며 모니카와 어린 지영이를 데리고 용감하게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엄마와 떨어져 아무도 없는 모니카를 설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근거가 아마도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모니카가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미국에 어린 아이를 안고 엄마를 한국에 두고 제이콥을 따라가지 않았을 테니까요. 전 이 대목에서 스티븐 연의 어정쩡한 한국말, 아주 익숙하지도 교포처럼 아주 어눌하지도 않은 한국말의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가 미국에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번 직업이라 각광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제이콥에게 병아리 감별사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초기 정착단계에서 돈은 많이 벌기는 했을 겁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병아리 감별사는 당시 미국에서 꽤 괜찮은 직업의 1년 연봉을 한달만에 벌기도 했다니까요.

그런데 그 많은 돈은 제이콥의 본가, 모니카의 시가에 상당부분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퍼부어졌을 가능성, 의지했던 교회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한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기를 당했을 가능성, 혹은 제이콥의 친가 쪽 인물과 한인 커뮤니티가 합작되어 뭔가 큰 일이 있어 재산을 거의 날리고 한인 커뮤니티조차 상처만 받고 외면하게 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제이콥과 모니카는 불화가 이어졌고 그때 태어난 둘째 데이빗은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제이콥은 남은 돈을 움켜쥐고 본가 가족과 한인 커뮤니티를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일과 장소를 찾기 시작했을 겁니다
병아리 감별사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이걸로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한인 커뮤니티를 배제하고 미국에 정착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올 때보다 더 절망적이고 무서웠지 않았을까요?
미국에서 심장 판막이 잘못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를 키우는, 게다가 10년간 머물렀던 지역을 떠나는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는 젊은 아빠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무것도 모른채 이 미국 땅에 나하나만 믿고 따라온 모니카와 앤, 여기서 태어난 아픈 데이빗까지, 아빠 제이콥의 두려움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요? 그러나 가족 앞에서 나조차 두렵고 자신감없다는 걸 보일 수는 없다는 그 책임감까지...

전 영화를 볼 때 타인의 리뷰, 심지어 감독, 배우, 제작자의 제작 의도조차도 일부러 미리 보지 않아요
저 스스로의 편견없는 첫 감상을 해치지 않고 싶어서요.
당연히 미나리도 그랬고요.
저 위에 장황하게 설명한 것들은 그런 제가 오로지 영화 안에 나오는 대사 한줄, 단어 하나로 유추해낸 제 나름의 상상입니다
그래서 전 정이삭 감독의 각본이 대단하다는 걸 제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한 씬, 대사 한줄, 심지어 단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내포하고 사건을 짐작하게 하는 능력은 엄청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간결하고 미니멀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을 수 있는 시나리오라니요...
압축과 요약의 천재가 아닌가, 이렇게도 단순하고 간단한 대사와 대사량으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구체적인 감정,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정말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때문에 정이삭 감독의 각본상 지명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스스로 구축한 2차원 시나리오를 3차원의 시각적 표현을 제대로 구현한 능력으로 감독상 지명도 기다렸고요
다른 경쟁작품을 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상까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대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은 대개는 세트라서 약간 기대도 하긴 했습니다

너무 길어서 다음 편에서 스티븐 연과 한예리의 연기에 대해서 좀 더 써볼까 합니다.
IP : 220.116.xxx.18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ㄱㄴㄷㄹ
    '21.3.16 10:17 AM (122.36.xxx.160)

    잘 읽었어요.좋은 결과가 기대 되네요.

  • 2. 으음
    '21.3.16 10:24 AM (221.142.xxx.108)

    ㅎㅎㅎ 추측 흥미롭네요
    저는 둘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희망을 안고 미국으로 간거라 생각했어요
    남편이 교회를 너무 가기 싫어하길래^^ 대도시에서 많이 번 돈은 어떤 일로 잃고
    시골로 간거같은데.. 동료랑 얘기할때 한인교회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있긴했죠
    전 자동차극장에서 봐서 화면이 선명하지 못해서 인물들의 표정을 제대로 못봐서..
    다시 봐야하나... 두번보면 느낌 다르겠죠?^^

  • 3. 오오
    '21.3.16 10:28 AM (203.247.xxx.210)

    이주 이전을 설명대로 생각하니 딱입니다

  • 4. 김혜리 필름클럽
    '21.3.16 10:41 AM (14.43.xxx.51) - 삭제된댓글

    한 번 들어보세요

  • 5. 김혜리
    '21.3.16 10:43 AM (14.43.xxx.51) - 삭제된댓글

    초록창에 김혜리필름클럽 검색 이번 미나리편 들어보세요.

  • 6. 김혜리
    '21.3.16 10:45 AM (14.43.xxx.51) - 삭제된댓글

    초록창에 김혜리필름클럽 미나리편 들어보세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410/clips/168

  • 7. ...
    '21.3.16 10:48 AM (220.116.xxx.18)

    제 감상이 정답은 아니예요.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아주 단순한 영화에서 저 많은 걸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압축하면서도 다 드러낸 정이삭 감독의 시나리오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썼을 뿐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상황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라 감상평을 쓸 때 남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자세하게 쓰지 않는 편인데, 이 느낌은 스포를 써야 전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제 그림을 좀 적어봤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는 분들께 방해가 안되는 감상문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상은 못할 것 같습니다

  • 8. 소오오름
    '21.3.16 10:56 AM (221.147.xxx.113)

    원글님, 두번째 감상평 너무 감사하고 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걸 느끼셨다니
    정말 공감 만땅입니다.

    저는 한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또 볼 예정입니다)
    원글님이 느끼신 대사 한 마디 마디에서 유추하고 상상해볼 수 있는
    이씨 가족의 이전 삶이 느껴져서 영화 보는 내내 울컥울컥하더라고요.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있을테니 원치 않는 분은 읽지마세요.

    윤여정 배우의 순자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기르던 과부의 삶,
    곱고 심지 깊게 키운 딸을 머나먼 이국 땅으로 떠나보낼 때의 마음,
    그 당시 전화비도 아까워 길게 통화도 못했을텐데
    간간이 전해지는 소식과 사진 정도로 그리워하며 살았을 엄마의 마음,
    그 딸이 도움을 요청해서 미국으로 오게 될 때
    한국에서의 삶을 다 정리하고 오는 용기,
    어렵게 마련했을 것이 뻔한 현금 봉투와 한약, 고춧가루, 멸치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 시골에 도착했는데...

    딸의 집은 깡시골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는 모빌 하우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얘, 재밌다"라고 받아치는
    엄마의 마음...그런 걸 생각하면 먹먹해집니다.

    한편의 이 잔잔한 영화가 이렇게 마음을 따뜻하게
    때론 웃게 때론 울게 또 어떨 땐 뭔 일이 더 일어날까
    가슴 졸이며 보게 할 지 정말 몰랐습니다.

  • 9. as
    '21.3.16 11:06 AM (175.223.xxx.167) - 삭제된댓글

    깊은 마음의 울림을 받으셨다는 분들
    너무나 부럽습니다.
    10년을 유진에서 살다가 온
    나름 영화좋아한다는 저는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 진짜 아무것도
    못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이제 나이 먹는건가
    심란해하며 나왔네요 ㆍ ㆍ

  • 10. ...
    '21.3.16 3:43 PM (220.116.xxx.18)

    as님 부러워하실 거 없어요
    두번째 볼 때, 제 오른쪽 옆에 앉았던 분을 비롯해서 한 1/3 정도의 관객이 중간에 우르르 나갔어요.
    모든 영화에 다 같은 감동을 받을 필요도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사람마다 꽂히는 포인트가 다 다른걸요.
    전 라라랜드가 뭔 재미인지 모르는 사람이예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183944 부동산 불만 많은 연예인 김광규요 52 .. 2021/03/16 7,415
1183943 민주당은 토지공개념 엄청 좋아하네요. 17 ... 2021/03/16 998
1183942 진리의 길을 가려는 사람은 다음의 다섯 가지 직업에 종사하지 말.. 1 아함경 2021/03/16 949
1183941 봄 패션 1 패션 2021/03/16 1,162
1183940 (스포만땅) 오스카 주요상 지명 기념 '미나리' 2번째 관람기 .. 2 ... 2021/03/16 1,418
1183939 대놓고 선물 요청하는 시부모 26 ㅡㅡ 2021/03/16 5,899
1183938 lg화학은 우찌 될까요? 7 고민중..... 2021/03/16 2,773
1183937 운전면허1종 보통 기능이랑 2 뱃살여왕 2021/03/16 431
1183936 유리잔 버릴때요 3 2021/03/16 1,560
1183935 식당에서 다쳤을 때 보험처리 여부 아실까요?? 22 질문자 2021/03/16 2,634
1183934 팔꿈치통증에 체외충격파 치료 하신분^^ 2 .. 2021/03/16 1,033
1183933 아까 입냄새 안난다는거요 11 2021/03/16 4,735
1183932 "韓, AI 기술 보급률 2년새 세계 7위→3위..&q.. 4 뉴스 2021/03/16 758
1183931 잠을 12시간 잤더니 4 aa 2021/03/16 2,658
1183930 종합비타민 추천 해주세요 4 ㅡㅡ 2021/03/16 2,163
1183929 나물 캐는 거 좋아하세요? 16 봄처녀 2021/03/16 2,102
1183928 부동산 그리고 보유세로 들썩이느걸 보니 49 때가됐네요 .. 2021/03/16 3,872
1183927 12개월~24개월 남아 겨울 옷 5 ... 2021/03/16 433
1183926 Lh직원은 땅투기 하면 안되고 11 ... 2021/03/16 1,975
1183925 서울에 무지외반 수술 잘하는 병원 알려주세요 3 ㅇㅇ 2021/03/16 619
1183924 재신경치료--임플란트 1 less 2021/03/16 795
1183923 국짐당 정권잡으면 85 ..... 2021/03/16 1,656
1183922 서울시의원 5명이 81채 집가지고 있다니... 19 ... 2021/03/16 2,629
1183921 싱크볼 옆에 물이 튀는데요 2 자취방 주방.. 2021/03/16 745
1183920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 지역 보험료 모의 계산하기 1년 보험료인가.. 2 궁금합니다... 2021/03/16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