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불성실한 걸까요? 아님 번역가에게 줄 돈을 아낀 걸까요?
작품의 제목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영문 제목을 그냥 발음대로 써버리는 만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영혼', '태양은 가득히' 같은 영화는 원언어 제목과는 관계없이 아름답게 새로 작명한 한글제목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프라미싱 영 우먼'
이 영화 제목을 보고 어떤 영화라고 상상이 되시나요?
영화 포스터라도 본 사람이라도 이게 뭔 영화일까 직관적으로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전국민의 대부분이 영어 울렁증, 영어 열등감이 있는걸 간과하고 그냥 이런 제목을 쓴다는건, 영화 배급사 혹은 수입사가 불성실하거나 돈을 아꼈거나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그닥 돈을 벌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그랬다는 뜻이겠죠?
제가 주말에 개봉관도 몇개 없는 이 영화를 굳이 찾아 본 건, 미국 아카데미상의 강력한 작품상, 감독상 후보이며 각본, 감독을 맡은 에메랄드 펜넬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 한줄을 스치듯이 본 탓입니다.
물론 주연 캐리 멀리건도 애정하는 배우이기도 하고요
제목 '프라미싱 영 우먼'을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이라고 일단 해석을 해도 이 영화를 쉽게 감을 잡기는 힘듭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하긴 합니다.
전도유망했던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 사건이 조리돌림으로 2차 가해를 당하고 자살한 후, 단짝친구가 복수하는 얘기, 아주 짧게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법이 당황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과하게 강렬하고 조금은 거북할 수 있는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처음 볼 때는 이게 뭐야 싶고, 이게 무슨? 뭐 이런 황당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제게 정확히 꽂힌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복수극의 와중에 술이 취해 본인이 가누지 못할 상황에서 당한 성폭행에 대한 일반대중의 반응입니다
피해자의 행실, 옷차림 등등이 화를 자초했다, 겨우 술먹고 저지른 실수로 전도 유망한 젊은 '남자'의 앞길을 막아야겠냐...
놀랍게도 한국의 여자들마저도 너무나 오랫동안 지겹도록 들어온, 겪어온 이야기 아닌가요?
심지어 같은 여자의 입에서도, 21세기 지금 이 게시판에서도 우습게 찾아볼 수 있는 말들이고요.
미국에서조차도 똑같구나 싶습니다.
전도유망한 '젊은 남자'가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의 앞길을 망가뜨린 사건에서조차 남녀는 차별받으며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동정받고 있습니다. 성범죄가 단지 젊은시절 한때 일탈로 치부하는 것까지도...
아마도 이 분노를 충격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다소 충격적으로 당황스런 스토리와 셋팅을 구축했을까 싶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던 현실문제를 제기한 용감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그닥 개봉관도 많지 않고 시간도 많지 않지만 여성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은 꼭 한번 보아두어야할 영화입니다.
ps. 근데 캐리 멀리건 얼굴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못 알아보겠어요.
내가 점점 안면인식장애가 되고 있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