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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현장의 소아응급전문의 글 (Allison Lee 페북 글)

ㅇㅇ 조회수 : 1,796
작성일 : 2021-01-08 09:41:50
소아응급센터에서 진료를 한지 6년.

학대로 숨진 16개월 아이의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에겐 일상에 가깝다.

다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담담해지지 않는 아주 특이한 일상.

응급실에 딱 일주일만 있어 보시라.
당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오만가지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맞아서 오는 아이.
싸워서 오는 아이.
교복을 입은 채 임신 해 오는 아이.
배달 오토바이를 타다 다쳐 오는 아이.
성폭행 당해 오는 아이.
자살시도 후에 오는 아이.
그러다 자살에 ‘성공’하여 숨이 멎은 채 오는 아이.
학대가 의심되나 보호자가 진료를 거부하는 아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보호자가 나타나지도 않는 아이.

드라마틱한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는 아이만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간, 이 순간,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은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중심에서 매번 아이들을 마주하는 나는
OO야 미안해, 와 같은 SNS 챌린지나
국민청원, 가해자 엄벌을 위한 진정서 같은 것들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방관자적인지,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가벼운 셀프 속죄의 유희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소아과 의사들은 보통 스물 예닐곱 즈음
내가 치료하던 아이의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그 순간이 심장 속에 박제되듯
강렬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죽음, 두 번, 세 번의 죽음,
그렇게 몇 십번의 죽음을 겪어내고
조금씩 눈물이 덜 날 때 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고, 또 부모가 된다.

직업적으로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냉정해지지만
그 때의 나는 엄마가 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고,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다시 흐르는 혼란스러운 경험의 반복.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학대아동의 진료다.

학대당한 아이의 진료를 보고,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신고를 하고, 진단서를 작성하고,
입원을 시키거나 혹은 사망선고를 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말간 얼굴로 안기는 내 자식들을 볼 때
내가 느껴야했던 죄책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

어쩌면 그래서 나는 저 가벼운 미안해 챌린지가
더 야속한가보다.
미안하다는 공허한 말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국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좇아 쇼를 하고,
그러면 정책결정자들은 쇼에 부응하기 위해
더 쇼같은 법안을 발의하고,
결국 실체없는 보여주기식의 행정이 펼쳐진다.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가해자 엄벌을 탄원할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국을 정식으로 만들라고,
보호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인력과 예산을 넣으라고 호소해야 한다.
약사에게도 신고의무를 부여하자 따위의
되도않은 법령을 발의할 게 아니라
사설기관과 민간병원에만 속수무책 떠넘겨져있는
일을 나라에서 챙겨서 하라고.

그런데 지금 세금은 어떤 곳에 사용되는가.
경찰에는 과연 학대아동과 신고자를 보호 할
재량과 능력이 있는가.
의사들은 신고 후 신분비밀과 생업유지 보장이 되는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부터 행동하고 싶지만
이런 사건의 중심에서 수십번 같은 상황을 겪고 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뜯어고쳐야
이게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든다.

이것저것 다 떠먹여주려다
오히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다 찢어버린
아마추어 사회의 단면이 어제도 오늘도 적나라하다.
IP : 223.62.xxx.20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1.1.8 9:43 AM (223.62.xxx.20)

    국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좇아 쇼를 하고,
    그러면 정책결정자들은 쇼에 부응하기 위해
    더 쇼같은 법안을 발의하고,
    결국 실체없는 보여주기식의 행정이 펼쳐진다.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 2. ㅇㅇ
    '21.1.8 9:46 AM (211.207.xxx.153)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 부분이 참으로 뼈아프게 들립니다.

  • 3. 솔직히
    '21.1.8 9:55 AM (211.117.xxx.56)

    지금 번개같이 추진되는 법안도 누가 서로 입법하느냐, 이슈가 되느냐의 경쟁이고 싸움이지 그 법이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죠.
    국민의 관심이 쏠린 뉴스를 누가 먼저 캐치해서 법안으로 올리느냐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문가도 아닌 아마추어들의 짝짜꿍....

  • 4. ..
    '21.1.8 9:56 AM (223.38.xxx.10)

    이 사람은 한국 의사인가요? 아니면 외국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사람?

  • 5. ..
    '21.1.8 9:59 AM (223.38.xxx.10) - 삭제된댓글

    글의 결론부분이 어째 영

    이것저것 다 떠먹여주려다
    오히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다 찢어버린
    아마추어 사회의 단면이 어제도 오늘도 적나라하다.


    원래 사회의 안전망이 있었는데 그걸 찢었다는게 무슨 뜻이며 찢은 주체는 또 누구?

    이것저것 다 떠먹여준다고? 누구한테 뭘 떠먹여줬다는 건지?

  • 6. .
    '21.1.8 10:01 AM (223.38.xxx.10)

    글의 결론부분이 어째 영

    이것저것 다 떠먹여주려다
    오히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다 찢어버린
    아마추어 사회의 단면이 어제도 오늘도 적나라하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초소한의 사회의 안전망을 찢었다는게 무슨 뜻이며 찢은 주체는 또 누구?

    이것저것 다 떠먹여준다고? 누구한테 뭘 떠먹여줬다는

  • 7. ㅁㅁ
    '21.1.8 10:12 AM (180.230.xxx.96)

    아까 그알피디 인터뷰 에서 그러더라구요
    지금도 메뉴는 잘 되어있다
    단지 그메뉴얼을 제대로 하지 않는게 문제라고..
    각자 자기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절대 이런일이 안 생겼을겁니다

  • 8. ㅇㅇ
    '21.1.8 10:22 AM (223.62.xxx.20)

    가해자 엄벌을 탄원할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국을 정식으로 만들라고,
    보호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인력과 예산을 넣으라고 호소해야 한다.
    약사에게도 신고의무를 부여하자 따위의
    되도않은 법령을 발의할 게 아니라
    사설기관과 민간병원에만 속수무책 떠넘겨져있는
    일을 나라에서 챙겨서 하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발 이렇게 해주길

  • 9. ...
    '21.1.8 10:35 AM (223.38.xxx.192)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이 글을 가지고도 또 말들이 많군요. 뭐만 어떻게 했음 좋겠다는 말만 해도 바꿨으면 고쳤으면 잘못하는거 같다는 말도 국민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군요. 그냥 잘 모르면 그 감정을 읽어주면 되는거지 문장 하나하나 따져서 뭐가 어떻다느니 잘 하고 있다느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카더라 말 퍼다 날라도 그럴줄 알았다 동조하고 난리면서.

  • 10.
    '21.1.8 10:51 AM (121.152.xxx.100) - 삭제된댓글

    쓸데없는 여가부 축소하고
    아동보호국 만드는 것 찬성
    의료진과 신고자 비밀준수 어길시 처벌
    그리고 신고자한테 해를 가하는 가해자는 엄중처벌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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