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초등학교 5학년 때 완장을 처음 차봤다.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이라서 6학년은 입시공부를 하고 주번을 5학년이 맡았었다. 주번완장을 차고 교문에 서 있다가 지각생을 잡아 이름을 적었다. 그 지각생 중에 6학년 짱도 있었다. 5학년 범생이가 ‘살아있는 권력’ 6학년 전교짱’을 벌 받게 했던 것이다. 완장이 준 권력의 쾌감은 짜릿했다.
윤흥길의 ‘완장’은 마을 건달 임종술이 저수지 감시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국가소유의 농업용 저수지를 최 사장이 물고기를 키우려 임대한다. 최 사장이 임종술에게 저수지 감시를 맡기며 ‘감시원’이라는 완장을 준다. 그러나 임종술은 흑백 ‘감시원’ 완장을 버리고 자비를 들여 노란 바탕에 ‘감독’이라는 빨간 글자와 3개의 줄을 새겨 ‘위엄있는’ 완장을 만든다.
임종술은 자신이 만든 완장을 차고 저수지 둑 위에 올라 외친다.
“오늘부터 내 저수지다. 내 손안에 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땅이다.”
임종술이 권력이라는 인류 최고(最古)의 마약에 회까닥한 것이다.
임종술은 저수지 근처에 접근하는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른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자신을 고용한 최 사장까지 통제하려 한다. 참다못한 최 사장이 그만 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가뭄이 들어 저수지 물을 농업용수로 쓰게 되었다. 최 사장은 물을 농지로 빼고 고기를 잡는다. 임기 끝난 임종술은 완장과 동네 인심까지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술집 작부 김부월과 함께 고향을 떠난다.
누구 얘긴지 다 아실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준 대통령도 권력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시골건달 임종술 수준이다. 윤석열은 총장이 되는 순간부터 “검찰은 내 것,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권력”이라고 믿는 것처럼 행동한다. 검찰을 개혁하려는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은 삼족을 멸하고 이미 돌아가신 조장관의 부친까지 부관참시 하겠다고 날뛰었다. 검언유착 한동훈 수사를 방해하고, 임은정 검사의 한명숙 총리 사건 감찰을 방해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검찰은 자신의 것이라 믿으니까. 완장 뽕 맞은 임종술이 ‘이거 내 땅’이라며 패악질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의 대리인 법무장관의 지시를 마구 잘라먹고, 대통령의 정책에 속하는 일을 빛의 속도로 수사한다. 자신에게 완장 채워준 최 사장마저 통제하려는 임종술의 행패 그대로다.
종말도 임종술과 비슷할 것이다. 비슷해야한다.
그나저나 임종술은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는 시골작부 김부월과 고향을 떠날 수 있었다. 라마다 르네상스 볼케이노 ‘호스티스 쥴리'로 알려진 김건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산부인과 의사나 양재택 검사의 경우처럼 헤어질까? 아니면 완장 잃은 윤석열과 계속 갈까?
두 사람 관계가 1983년 당시 최고 권위의 현대문학상을 받고 영화화까지 된 작품보다 더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