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생 역사책이라곤 교과서밖에 안 읽은 사람이 ‘반일 종족주의’ 1/4쯤 읽고선 “왜 역사학계는 이런 걸 비판하는 책을 못 내느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좋은 책은 많습니다. 사람들이 읽지 않을 뿐.
2.
No Japan으로 할 거냐 No Abe로 할 거냐로 논란 중입니다.
이런 문제로 굳이 논쟁할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밀푀유나베' 같은 어려운 이름도 잘들 외우는데, 'No Abe's Japan'이라고 해서 쓰기 어렵진 않을 겁니다.
우리 발음으로 '놔베스저팬'
3.
"통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푹 빠져든 사람과 대화.
"문대통령 지지율이 50%이고 자한당 지지율이 27%라던데, 그건 믿나요?
"바닥 민심을 봐야지. 여론조사 통계따위를 어떻게 믿나?"
"IMF 통계에 따르면 한국 경제 성장률이 OECD 최상위권이고 일본보다 훨씬 높은데, 그건 어떤가요?"
"서민들은 다 죽겠다고 난리인데 그런 통계따위가 뭐 중요한가?"
"21세기 한국 여론조사 기관 통계나 국제 경제기구 통계는 아무 의미 없다면서 20세기 초 조선총독부 통계는 왜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겁니까?"
4.
역사학은 연대기에서 출발한 학문이기에 대체로 귀납적 방법론을 씁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이론을 만들거나 이론화하려는 욕망이 생기면 먼저 가설을 세우고 실증을 통해 이론을 확립, 보강하는 연역적 방법론을 쓰기도 합니다. 저는 역사학(인문학)과 경제학(사회과학)의 주된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역사학자들이 정립한 이른바 ‘식민사학’은 동조동근론, 정체성론, 반도적 성격론(타율성론)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조선민족은 본래 일본민족의 한 갈래라고 보는 게 동조동근론, 조선은 자립적으로 근대화할 수 없는 정체된 사회라는 게 정체성론, 조선인은 반도적 특수성 때문에 사대주의를 체질화했다는 게 반도적 성격론입니다. 본래 이 이론들은 ‘실증적 연구’의 토대 위에서 구축된 게 아니라 먼저 그들의 ‘혐한의식’에 따라 가설로 만들어졌고, 실증은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들의 실증 방식은 과거 ‘유능한’ 공안검사가 애먼 사람을 ‘좌익 용공사범’으로 몰기 위해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기소하는 방식과 기본적으로 같았습니다. 그 기소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기소장 내용만 읽다 보면 ‘논리적으로 완벽’한지 아닌지만 따지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허점이 없거나 적은’ 기소장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나라에서, ‘논리적 완결성’이나 ‘문서 기록의 유무’만으로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풍조가 널리 퍼진 것도 참 답답한 일입니다.
화제의 [반일 종족주의]는 읽지도 않았고 읽을 생각도 없지만, 저자들이 가설을 세운 동기와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진행한 실증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의 그것이나 독재정권 시절 유능한 공안검사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핵심 가설은 ‘정체성론’이고, 보충 가설은 ‘탈민족주의론’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이 비판했기 때문에 저는 한 가지 '가설'에 대한 얘기만 추가할까 합니다.
현재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보다 더한 점은 일본의 조선 침략(병합) 목적에 대한 가설입니다. 그들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경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훗카이도나 오키나와처럼 ‘일본의 일부’로 삼기 위해서 병합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 자본의 조선 투자는 ‘사실상의 본토 투자’로서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투자와 달랐으며, 그 덕분에 한국은 해방 이후에도 다른 구 식민지 국가들과는 달리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이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징용 노동자나 종군 위안부를 동원하는 방식에서도 민족 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창씨개명 강요나 우리말 사용 금지도 ‘조선의 일본화’, ‘조선인의 일본인화’라는 ‘대국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세부 정책이 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인 대다수가 ‘민족 말살의 시대’로 기억하는 일제 강점 말기는 ‘조선의 일본화가 (거의) 완성된 시대’가 됩니다. 한국인 절대 다수에게 혹독한 언어적, 문화적, 정신적 폭력이 가해지던 시대가 ‘차별 철폐의 시대’가 됩니다. 당시 일제 권력은 전시 상황에서 ‘국책상(國策上)’ ‘내선일체’를 위해 조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기록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 자체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 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광범위했는지를 알려주는 방증입니다. 또 강제동원에서 ‘차별이 없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실증적으로도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키나와 원주민의 상황을 보면, 그들의 '내선일체 황국신민화'가 궁극적으로 성공했더라도 그 결과가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화’하기 위해 쓴 수법이 언어 말살, 이름 말살, 역사 말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식민지 중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가진 민족, 이름에 개인과 가문의 역사적 정체성을 담아 온 민족, 무엇보다도 다른 식민지 민족들과는 달리 ‘역사 기록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역사 기록이 너무 풍부해서 문제인’ 민족에게 이런 정책이야말로 가장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였습니다.
역사란,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집단 기억’입니다. 한국인 대다수가 ‘끔찍하고 폭력적인 민족 말살의 시대’로 기억하는 시대를 ‘일본인과 조선인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가던 차별 없는 시대’로 기억하는 건, 그들이 ‘한국, 한국인, 한민족을 의미 없는 ‘허상(虛像)’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상류층’이나 지식인 사회에서도 ‘민족 담론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인’으로 사는 것이 현명하고 세련된 태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익 실현에 장애가 된다면 언제든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인 것처럼, 한국인들이 쌓아 온 역사적, 문화적, 정신적 자산도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의 일제 불매운동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실증적 근거 없이 만들어진 ‘반일 종족주의’가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존감입니다. 이것이 이 운동이 인류사적 정당성을 갖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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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세종의 ‘한글’ 창제를 비방한 기독교 목사가 있습니다. 한글이 불필요한 문자이거나 일본어 가나보다 열등한 문자라는 주장은 일제 강점기에 일반적이었고, 심지어 1950년대에도 공공연히 표출됐습니다. 한글조차 ‘열등한 문자’로 생각하는 자들이 일본 민족이 되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글이 열등한 문자라기보다는 저런 자들이 문화적으로 ‘열등한 인간’이라고 해야 옳을 겁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1868961823/posts/2928240917248178/
역사학자 전우용님 페북들
... 조회수 : 773
작성일 : 2019-08-12 16:02:33
IP : 218.236.xxx.162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공감
'19.8.12 4:08 PM (175.223.xxx.246)조목조목
2. 친일파
'19.8.12 11:23 PM (117.111.xxx.248)버러지들은 왜 그토록 자랑스러운 일본으로 안 떠나고 한국에 살까요?
그것이 매우 궁금합니다.
여기 친일파 분들있으면 한번 말해 보세요.3. ᆢ
'19.8.13 10:25 AM (223.62.xxx.251)그러게요
그토록 목메는 일본을
가지도 않고
여기남아
국민들 염장지르는짓만 하면서
꾸역꾸역
더럽게 살고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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