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즉위 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지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세웠다. 우선 분황사(芬皇寺)라는 절 이름부터 그렇다. 즉위 3년째에 지은 이 절 이름은 “향기로운 황제의 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芬’자는 ‘향기’ 외에 ‘많다’, ‘기운이 왕성하다’의 뜻도 있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풍요를 가져오는 여신의 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선덕여왕 4년에 지어진 영묘사에는 옥문지(玉門池)가 있었다.23) 여성의 성기가 연못이름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인데, 『삼국사기』도 이 이름을 기록해 놓고 있다. 분황사와 영묘사 둘 다 절의 외양을 하고 있어도 토착신앙을 담고 있었다(강영경, 1990: 196-200). 여왕이 여성임을 내세운 것은 여성성에 대한 자부심 때문으로 보인다. 그녀는 옥문지에서 개구리들이 우는 것을 보고 백제군이 잠입한 사실을 알고 군사를 보내 격파시켰다. 그에 감탄한 신하들이 묻자 그녀는 “남근이 여근 속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죽는 법”이라고 답한다. 여왕의 이 발언에는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여성파워에 대한 절대긍정, 가부장제 이전 여신문화의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녀의 배면에는 당시 신라 땅 여기저기에 존재했던 신성한 여성 성기 암각화들, 무수한 성혈들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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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캐릭터 매력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