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방대생이었고 친구는 명문 여대생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베프였죠.
방학 동안 서울 친구 자취방에 신세를 지게 되었어요. 고마운 친구였죠.
선뜻 같이 지내자고 하고..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어요.
그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때였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술만마시던 아버지라 어린 마음에 해방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나중에 아주 나중에 너무 아프더라구요.
그때 저는 친구네 집에서 학원도 다니고 알바도 하려고 그랬던거 같아요.
친구의 남자친구는 여대 옆 대학생이었는데 제 친구랑 사귄지 몇 달 안되었다고 했어요.
제 친구를 엄청 좋아하고 아껴주더라구요. 친구 저 그 남자 친구 이렇게 몇 번 밥이랑 술을 먹기도 했
어요.
그 날은 술을 마시고 남자친구가 자취방에서 잔다고 하더라구요.
친구 자취방은 방 두개에 사이로 간이 주방이 있는 형태였는데 남친은 컴퓨터가 있는 다른 방에서
잔다는거였죠.
저는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친구와 남친은 한 잔 더 한다고 했나 암튼 그랬어요.
눈을 떴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일어나보니 그 남친이 제 옆에 앉아서 아래 속옷으로 손을 넣고 있었어요.
눈으로는 TV를 보면서요. 그 새벽 TV에선 바둑이 하고 있더라구요. 눈은 바둑을 보고 손은 제 속옷에 넣고 있더라구요,
저는 벌떡 일어났고 그 남자는 당황하더라구요.
친구는 다른 방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그 남자는 옆방으로 갔던지 그러고 저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첫 차가 다니자마자 옷을 대충 입고 집 밖을 나와서 커피숍에서 한참 울었어요.
다른 고등학교 친구랑 대학 친구를 불러 얘길 했어요.
친구들은 분개하며 당장 그 친구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어요.
밤에 그 친구에게 얘길했죠. 니 남친이 나에게 이러이러 했어.
친구는 충격을 받더군요.
너무 힘들다며 포항인가 어디에 사는 고모에게 갔다온다고 했어요.
그 남친은 제게 전화를 하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다 하더니
나중엔' '니가 뭐 볼게 있어서 널 건드리냐' 라고 했어요.
전 집으로 돌아갔고, 친구는 한 달 정도 있다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어요.
친구의 선택은 그 남자더군요.
그 남친이 친구의 고모에게 찾아가 울며 불며 매달렸대요,
자긴 기억이 나질 않고 OO를 너무 사랑한다.
고모가 그랬대요.
남자 눈빛이 진실해보인다. 거짓말 할것 같진 않다.
저는 그 친구와 절교했어요.
나중에 다른 친구들 통해 한 번 본적이 있어요.
그 남자와는 곧 헤어졌다고 했어요.
지금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살거예요.
그동안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가만 문득 문득 계속 생각이 나요.
TV 속 바둑을 보며 제 속옷에 손을 넣은 그 남자의 얼굴에 드리우던 TV음영.
난 왜 바보처럼 거기서 잠들었을까.
나는 왜 그 방학 때 친구의 자취방에서 살려고 했을까.
그 남자도 제 친구도 잘 살거예요.
저도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정말 가슴이 갑갑하네요.
그 남자 연락처라도 알면 문자라도 보내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다닌다던 회사도 아는데 정확한지도 모르겠고
그 개새끼는 다 잊고 잘 살겠죠.
제 친구도요. 다 잊고 잘 살겠죠.
저한테 모진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넋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