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점이 바로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문제다. '전문가'의 함정을 벗어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라는 것이다. 내가 알기론 안철수도 스티브 잡스 전도사로 알고있다.
그런데 안철수는 서울시장 이야기하면서 느닷없이 전문가 정치를 거론한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 취급 받으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그리고 이제까지 서울시는 하드웨어 즉 외관만 중시했고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고 한다. 대체 뭐가 소프트웨어고 뭐가 하드웨언데? 디자인 서울은 하드웨어라고 말하고 싶은가.
로마제국이 3세기말 외침이 잦아지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전과는 달리 정치와 군사를 완전히 분리시켰는데 그 이후로 로마에 찾아온 것이 바로 관료주의다. 그리고 민중의 삶은 본격적으로 도탄에 빠지기 시작했고 제국은 멸망으로 치달았다. 억지 연결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성찰 없이 전문 분야 운운하면서 관료주의로 빠지는 것은 너무나 뻔한 케이스다. 관료주의는 바로 엘리트주의로 흐르게 되어있고.
지금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뭔가? 전문 토목기술이 모자라서 성수대교가 무너졌나? 학생들이 체육 전공하면 공부는 아예 제껴서 문제가 되니까 걸핏하면 전인교육 부르짓지 않나? 영리병원 추진하면 의사들이 사회의식 가지고 반항하나?고시공부만 하다가 판검사 되니까 법 집행 전문적으로 잘 하고 있나?
그럼 안철수 말대로 하자면 정치는 정치 전문가가 해야지. 왜 IT 전문가가 정치하겠다면서 전문가 정치 운운하나. 정치는 전문분야 취급 못받는 만만한 분야로 보이던가. 그리고 행정이란 말의 정의 자체가 정치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교양행정학 교재 첫머리에 나온다. 정치와 행정이란 말의 정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다.
안철수의 저런 행보는 우리 정치문화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지 현실인식이 먼저다.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정치분야에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정치판에 들어오려면 먼저 정치판의 현실인식이 먼저 아닌가.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밝힌 적도 없지만 안철수의 정치적 비전은 이미 기성 정치판에 다 있는 것이다. 그럼 자신의 비전이 어떻게 기성 정당의 정강과 다른지 밝히는게 순서다. 비전이 같은데 독자적으로 나오려면 또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막연한 혐오감 유포는 더 심한 혐오감을 부르게 되어있다.
내가 전에 쓴 글에서 안철수가 차라리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물론 안철수가 한나라당 물이 든 것 아니냐고 흥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그것에도 별 관심 없다. 그 사람들은 안철수가 한나라당으로 나오는 것보다 무소속으로 나오는 것을 덜 혐오할 것이다. 난 안철수가 한나라당으로 나오는 것보다 무소속으로 나오는 것을 훨씬 더 혐오한다는 말이다.
난 심하게 말해서 무소속 출마는 대중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치문화를 퇴행시키는 짓이다. 게다가 지금 출마 여부로 언론플레이 하고 있던데, 여론 추이를 봐가면서? 300명의 멘토들?
내가 한가지 충고를 하겠다. 한국에서 정치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 주려고 하면 안된다. 그게 바로 사기다. 한국에서 정치하려면 특정 계층으로부터 증오를 받아야만 한다. 한국 사회현실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체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고 느끼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특정 계층으로부터 증오를 받지 않는 정치인은 가짜다. 사실 그게 정치의 본질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을 어루만지고 역사를 거꾸로 가게 하지 않겠다? 그런 말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혀라. 그게 순서고 기본이다. 정치에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런 저런 말하게 하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다.
정치에서 예측 가능성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가능성이란 건 정치인들이 대중들에게 꼭 줘야만 하는 신뢰의 문제다. 조승수가 진보통합에서 욕 먹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중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철수는 가족의 허락 운운하기 전에(그 문제는 자신의 집안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먼저 대중들이 예측하고 허락할 조건을 제시하라.
안철수가 정치판에 나오기도 전에 대중들이 씹는 것을 우려하는 일각의 흐름을 난 우려한다. 그건 대중들의 잘못이 아니라 명백히 안철수의 잘못이다. 예전에 정운찬이 대선후보로 냄새 피울 때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씹었다. 그리고 정운찬은 금방 찌그러졌고. 지금 그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을 대중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 안철수는 지금 대중들끼리 싸움을 붙이며 대중들을 갖고 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판에서만큼은 안철수가 정운찬보다 더 저질이라고 본다.
조국이란 애도 마찬가지. 안철수와 거의 막상막하 저질이라고 보는데 스타일이 달라서 재밌긴 하더라. 얘네들이 지금 쌍으로 한국 정치문화를 더럽히고 있다. 새로운 인재 운운 하는데 정치판에 검증된 인재들 많다. 미국의 무소속 마초 뉴욕 시장이나 일본 젊은 여자 의원들 돌풍이 그 나라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라. 얄팍한 인기로 대중 낚시 하고 다니는 것들을 정치판 인재로 착각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