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에.. 친구한테 계속 전화가 와서 곤란하다는 글을 읽었는데..
저한테도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그냥저냥 알고 지내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면서부터..
거의 매일같이 저한테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실 처음부터 그 친구의 사고방식이나 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어요.
어릴 적 상처로 인한 애정결핍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결혼전에는 유부남과의 연애, 결혼 후에도 그런 이성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놀자고 조르는 애를 방치해두고 저와 몇 시간씩 통화하는 모습 등.. 그러면서도 자기가 좋은 엄마라는 걸
어필하는 모습, 자기 친구들 얘기까지 너무 자세하게 하는 게.. 재밌게 들으면서도 꺼림칙했어요.
결국 제 이야기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못마땅한 마음이면서도 제 입에서는 그 친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나갔어요.
다 괜찮아 질 거다, 잘 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다, 너는 좋은 엄마다... 친구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기계적으로 했죠.
저는 애인은커녕 친구도 없는 사람이고, 늘 전화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서인지..
친구한테서는 정말 꾸준히 전화가 왔고.. 시시콜콜 일상을 전했고..
서서히 저도 그 전화에 익숙해졌어요. 그리고 저도 똑같이 수다를 떨었어요.
주로 힘들다는 이야기였죠. 서로...
정말 듣기 싫을 때는 전화를 피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정이 쌓였고.. 언젠가는 우정이 깊어질 거라고 믿었어요.
저도 사람의 정에 굶주린 사람이고.. 제가 가끔 성의없이 전화를 받고 짜증을 내는데도
친구는 연락을 계속해서... 뭔가 기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이 친구는 끝까지 가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어요.
가끔 너무 힘들 때는.. 나는 전화 통화 오래 하는 걸 싫어한다.. 불행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힘들다..
불행을 나누는 게 나한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는 초반에 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몇 년이나 수다를 떨고 난 후에.. 뜬금없이 전화 통화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친구한테는 안 통했죠. 친구는 서운하다고 하고.. 저는 또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계속 반복...
사람과의 친밀한 사귐이 없어서.. 저도 너무 경험이 부족했던 거예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렇게 취향이 안 맞는 사람하고.. 길게 사귀다보면..
언젠가는 진정한 친구가 될 줄 알았던 거예요.
하지만.. 몇 년 동안 통화를 하면서..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저는 그 친구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요.
어릴 때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저도 마찬가지) 친구한테 네 삶의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식의 말을 주기적으로.. 했고,
그 친구는 그런 저의 말을 자기 전체를 거부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크게 상처 받고...
오랫동안 깊은 속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친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요. 가끔 통화하면서 미칠 것 같은 상태가 되곤 했는데...
(뭔가.. 제 불행을 이야기하면서 저는 더 힘들어지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외로워서 통화를 피하지 않는... )
결국은 그 친구한테 매정하게 쏘아붙이고 지금은 친구가 나가떨어진 상태예요.
저는 아직까지 미안하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도.. 친구가 상처를 받았을까 봐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상태고..
친구한테는 답이 없네요.
... 여전히 제주변에는 사람이 없고, 이제 그나마 꾸준하던 친구의 전화마저 끊긴 상황.
이런 상황이 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리송해요.
좀 더 좋게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예전에 통화를 줄이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자는 말을 해보기는 했는데.. 안 통했죠. 친구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저는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
결국...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 사이였을까요?
종종 친구한테서 느끼던 감정은.. 정말 저라는 사람이 좋아서가 아닌..
언제나 전화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어릴 때부터 애정결핍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는 사람..
그 친구한테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는 친구한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 결국 저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은 거겠죠?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이라는 존재를 사귄다는 게.. 저한테는 참 힘드네요.
얼마나 진정성 있는 관계를 바라는 건지..
그런 게 있기는 한 건지..
아마도 평생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겠죠?
저와 친구.. 둘다 미성숙한 사람들지만.. 저는 차라리 그 친구가 부러워요.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저보다는 끊임없이 사람으로 위로를 받고자 하는 그 친구가..
아직.. 그 친구가 제 삶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실감도 안 나고.. 지금은 약간 홀가분한 기분도 들지만..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