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는 결정적인 상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적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권력자가 부르지 않았을 때에도
직접 찾아가서 민의를 전했고,
권력자는 이 분과 또 이 분을 통해서 전해지는 천심을 두려워했습니다.
총칼로 모든 시민을 짓누르며 통치했던 군사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도
이 분 김수환 추기경은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권력자에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해야만 하는 역할,
자신의 십자가를 졌고,
신음하는 국민들은 이분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아 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뜻이 광범위하게 일치되어 있는데,
햇빛을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시키는 돋보기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영적 지도자가 없는 듯 합니다.
이날 염 추기경은 박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온유(溫柔·온화하고 부드럽다)함이
좋다. 기도하면서 일하시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7일 종교계 원로들과 대통령의 만남)
이날 염수정 추기경은 박대통령이 가진 악의 핵을 정확히 지적하고
문제를 만든 장본인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준엄한 말씀을 전달했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박대통령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 주었습니다.
부패하고 어리석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못 했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가톨릭 교회가 그런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못 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가 정부와 권력자들에게 받은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음으로 양으로 주고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권력자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교회와 그 지도자를 위해서
더 많은 기도와 희생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서울 교구장을 사임하신 지 20년이 채 안 되는데,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급속도로 돈과 권력에 밀착되어 버렸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아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에 붙들려 있는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가난해 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손에 흙을 묻히고 더려워지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는 은총을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