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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아침에 시한술 - 여행은 혼자 떠나라

시가조아 조회수 : 2,916
작성일 : 2016-07-10 05:54:43

여행은 혼자 떠나라 /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안부를 묻다 / 노희경
 
건강들 하신지요 ?
행복들 하신지요 ?
사랑이 힘겹진 않으신지요 ?
부모와 형제가 미치게 버거워도
여전히 껴안고들 있으신지요 ?
잠자리에선 꿈 없이 주무시는지요 ?
비 오는 날엔 울음 없이들 비를 보시는지요 ?
맑은 날도 좋아들 하시는지요 ?
낙엽이나 고목들을 보면서도
기대를 버리시진 않으신지요 ?
여린 새순이 좋으신지요 ?
라일락이 아카시아와 같이 피고 지는 지금의 기후들이 안타까우신지요 ?
잎과 꽃이 만나지 않는다는 상사화를 혹여 보셨는지요 ?
정말 불행하지 않기를 원하는데 , 그러신지요 ?
지금 그리운 것들이 모두 그대들 옆에 있으신지요 ?
저는 괜찮은데 ,
정말 그대들도 괜찮으신지요 ?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햇빛 . 바람 /윤동주

손가락에 침발러
쏘옥 , 쏙 , 쏙 ,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문풍지를
쏘옥 , 쏙 , 쏙 ,

아침에 햇빛이 빤짝

손가락에 침발러
쏘옥 , 쏙 , 쏙 ,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나
문풍지를
쏘옥 , 쏙 , 쏙 ,
 
저녁에 바람이 솔솔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 잊었노라 '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 잊었노라 '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연은 한번밖에 오지 않는다 / 신경숙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내 곁에서 사라지게했던 사람들
한때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무엇 때문인가로 서로를 저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관계의 죽음에 의한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
사람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는 건 아닌지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신뢰
서로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둘만 있어도
살아가는 일은 덜 막막하고 덜 불안할 것이다
마음 평화롭게 살아가는 힘은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남의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주고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들어주며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만이 누리는 행복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도 언제나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 않는가도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그랬다면 지난 날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줬을 것이다
 
결국 이별 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가 자주 만난 날들을 맑은 무지개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게 이별했을 것이다

진작 인연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막걸리 같은 약속 / 이생진

어젯밤 인사동 순퐁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약속했다
장마가 끝나면 선유도에 가자고
그건 선유도의 풍광을 이야기하다 그도 나도
물에 빠진 것인데
약속한 다음 날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그곳에 갈 나이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문자를 보내 그 약속을 찢어버렸다
그랬더니 그쪽에서도 문자를 보내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막걸리에 빠져서
약속한 것인데 도저히 지킬 수 없어
고민 중이었다며
취소된 약속을 기뻐한다

그래서 막걸리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구절초 / 유안진
 
들꽃처럼 나는
욕심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 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어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볕은
성자聖者의 미소
 



착해지는 날 / 유안진

살았던 곳들은
모두 다 고향들이었구나
괄시받은 곳일수록
많이 얻고 살았구나
행차 지나간 뒤에 나팔 부는 격이지만
갈지자로 세상을 살고 나서
불현듯 마음 착해지는 날은
울고 싶은 사람 뺨쳐주는 적선이라도 하고 싶다
그런 악역이라도 자청하고 싶어진다 .
 


절망에게 / 유안진

검푸른 어둠
그 먹물 속에서
어여 나오기만 혀어봐아
먹향기 진동할 거야
묵란 ( 墨蘭 ) 한 대궁 솟아 필 거야
눈 오신 이 겨울이
한 장 화선지로 기다리고 있잖냐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 ( 絶交 ) 다 !
 


1% 의 행복 / 이해인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
행복하냐고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사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 면
저울이 행복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없습니다 .
우리 삶에서 단 1% 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어느 상품명처럼 2% 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
아마 ...
그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2% 라는 수치가 얼마나
큰지를 아는 모양입니다 .

1% 가 빠져나가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얼른 채워넣어
다시 행복의 무게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

기도 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

단 1% 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 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행복하다고








IP : 160.13.xxx.32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침시
    '16.7.10 6:02 AM (160.13.xxx.32)

    세번째 올려요 ^ ^
    잠시 쉬었다 가세요.

    시한술
    로 검색하면 돼요.

    아침에 깨 있을 때 종종 올릴게요.
    저도 다시 읽게 되고 좋아요.

  • 2. 박노해
    '16.7.10 7:06 AM (210.183.xxx.241)

    박노해가 부드러워졌는데
    저는 박노해하면 하나의 노래만 연상됩니다.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으로 찬 소주를 붓는다.. 하는 노래, 노동의 새벽.

    올려 주신 시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3. Jane
    '16.7.10 7:06 AM (218.39.xxx.78)

    너무 좋은 시들의
    진수성찬에 과식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4. 덕분에7
    '16.7.10 8:20 AM (223.62.xxx.137)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미루기만 하다가
    이렇게 올려주시면 모처럼 읽게 되네요
    시 한 편 한 편 너무 좋아요
    신경숙님의 시는 처음 접하는데 마음에 와 닿아요
    감사합니다^^

  • 5. . .
    '16.7.10 8:48 AM (110.70.xxx.247)

    아침에 읽는 시. 막거리 같은 약속 ㅎㅎ
    좋은 시들 감사합니다

  • 6. ..
    '16.7.10 9:12 AM (126.253.xxx.142)

    절제된 언어로 이렇게 많은 뜻을 담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정말 시인들 존경합니다.
    더운 아침에 맑은 이슬 같은 시.. 감사합니다.

  • 7. 시가조아//님
    '16.7.10 9:25 AM (111.118.xxx.48)

    덕분에 잠시 맑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매일 올려 달라고 하면 염치 없겠지요?

  • 8. ...
    '16.7.10 9:35 AM (1.249.xxx.79)

    아침에 읽는시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으네요.

  • 9. 나무
    '16.7.10 9:42 AM (175.223.xxx.183)

    원글님 사랑합니다~~~~~~~~^^

  • 10. phua
    '16.7.10 10:04 AM (175.117.xxx.62)

    오늘도 정말 감사합니다.^^

  • 11. 요리사랑
    '16.7.10 11:35 AM (58.127.xxx.230)

    감사합니다~^^~

  • 12. 아우
    '16.7.10 4:24 PM (61.255.xxx.53)

    너무 좋아요~~

  • 13. ...
    '16.7.10 4:43 PM (122.34.xxx.208)

    시한술 감사합니다.

  • 14. 치자꽃설화
    '16.7.10 5:45 PM (211.36.xxx.113)

    시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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