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뫼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참상이 정 씨 눈에 들어왔다. 동네를 빠져나올 때 요란한 기관총 소리가 지축을 흔들더니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던 게다.
기관총을 거치한 듯한 언덕은 노란 탄피로 뒤덮여 있었다. 어찌나 많은 탄피가 깔렸던지 그 위를 걸을 때마다 자갈밭을 걷는 듯 부스럭댔다. 피 묻은 탄피는 차갑고 미끄러웠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자꾸만 넘어져 네 발로 기어갔다. 순간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언덕 밑으로 수많은 이들이 흉물스런 얼굴을 한 채 널브러져 있었고, 이슬비와 함께 씻긴 시뻘건 피는 남산뫼를 적신 채 그 아래로 졸졸 흘러내렸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채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무리 속에 신음하는 형이 보였다. 큰 형의 무릎은 두부처럼 으깨져 있었고, 박살난 무릎 아래로 피범벅 된 다리가 힘없이 덜렁거렸다. 아버지는 짊어온 이불의 호창을 뜯고 두꺼운 솜을 댄 뒤 서둘러 진덕 씨 무릎을 감쌌다. 조금 뒤 눈을 뜬 형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부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정 씨 부자는 주검이 된 진덕 씨를 틀어잡고 악을 쓰며 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