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의.. 혁명 또는 자살
2009년 7월 9일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란셋>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실직률이 1퍼센트 높아질 때 55세 이하 사람들의 자살률이 약 0.8퍼센트 높아진다고 한다. 유럽 내 26개국을 대상으로 30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결과다. 실직률이 3퍼센트 증가할 때 65세 이하 사람들의 자살률은 4.5퍼센트, 알콜 중독에 의한 사망률 역시 28퍼센트 가량 증가한다는 것이 이 연구팀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 위기를 겪을 때 범죄, 이혼, 자살 모두 다 증가했다. 한마디로 악화된 경제 환경이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경제 위기로 실직을 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비관만이 남는다.
그것은 결국 이혼이나 자살로 이어진다. 2009년 7월 20일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 간부로 있는 남편이 회사에 복직되기 힘든 상황을 비관하여 네 살과 두 살 아이를 둔 부인이 자살하지 않았는가.
경제 위기만으로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는데, 내일도 오늘처럼 삶이 지치고 힘들기만 할 뿐 하나도 나아질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자손대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절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다. 혁명 또는 자살. 하지만 사회가 지금처럼 고도화되고 구조화된 사회에서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론은 한 가지, 자살밖에 없다.
특히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국민성은 그런 절망이 자살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성향을 가만히 살펴보면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살지 못한다. 예로부터 민란이나 폭동이 유난히도 많았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오히려 이웃인 일본 사람들은 구조화된 사회에 훨씬 적응을 잘한다. 최근 일본도 종신고용제가 약해지고 있지만 종신고용제 하에서 일본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면 누가 과장, 임원, 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될지 거의 정해진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해 평생 동안 직장을 다닌다.
직장에서 승진의 기회가 별로 없지만 희망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지 않고, 대신 직장 이외에 다른 곳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를 보면 직장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본 만년 과장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회사에 입사했는데 “넌 만년 과장이야”라고 사장님이 말해준다면? 대부분은 사표를 던지고 더 나은 비전이 있는 새로운 직장이나 업무를 찾아 떠날 것이다. 이런 차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인들이 승진을 목표로 밤 새워 일하게 만들고, 일본에서는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퇴근 후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공 욕구, 즉 성취 동기가 우리나라만큼 강하게 민족성에 배어 있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장래를 밝게 해주는 요인이라고 앨빈 토플러는 설파했지만, 성취 동기가 꺾여버릴 때 우리만큼 쉽게 절망에 빠지는 민족도 드물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성취 동기가 꺾이고, 좌절감만 남아 있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초·중·고등학교 12년을 죽도록 공부만 하고, 간신히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잠시 놀아볼 틈도 없이 또 취업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의 첫발을 백수로 시작해야 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서울 시내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수 없다.
몸이야 상하든 말든 밤을 새워 가며 죽도록 일하고도 구조조정으로 길거리에 내몰리며, 평생 번 돈을 자녀들 사교육비로 다 쏟아붓고, 가진 돈 하나 없이 빈손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늘어나서 환갑잔치는 옛말이 되고 90세까지 살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1,000원의 행복, 마지막 희망 티켓마저도 빼앗겨버린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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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계안의.. 혁명 또는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