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곳 중에는 대역전극이 펼쳐진 지역도 적지 않았다. 선거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진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확실하게 전망된 지역은 현직 교육감이 나선 4곳(광주·강원·전북·전남) 정도였다. 그 밖에 경기·충북 정도에서 진보 후보의 우세가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뒤처지다 결과가 뒤집힌 곳이 속출한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룬 곳은 서울이다. 지지율 4.1%(5월13일 한국갤럽 조사)로 시작해, 선거 기간 내내 상대인 고승덕·문용린 후보에게 밀리면서 3위로 고전하던 서울의 조희연 후보는 선거 당일 39.2%의 득표율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이를 두고 일명 '캔디 고 효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승덕 후보의 딸인 고희경씨(미국명 캔디 고)가 SNS에 낙선 호소 글을 올린 5월31일 이후 세 후보 사이에 극적인 지지율 변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JTBC에 출연한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후보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교육감 선거의 특성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교육감=선생님'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유권자 사이에 팽배한 만큼 교육감 선거에 대해서는 다른 선거에 비해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4년 전 서울교육감 선거에서도 이런 공식이 실현된 바 있다.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 수위를 달리던 보수 성향의 이원희 후보가 선거 막바지에 사생활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급추락했고, 그 결과 진보 성향의 곽노현 후보가 1.1%포인트 차로 신승했던 것이다.
보수 후보 분열 탓에 진보 후보 승리?
보수 후보가 분열되면서 진보 후보가 득을 보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 조선일보 > 6월5일자 사설은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의 최대 책임이 '보수 분열'에 있다고 지목했다. 그러나 보수 후보의 난립은 이번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교육감 후보는 모두 72명. 지역별로 진보 성향 단체들이 단일 후보로 추대한 15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보수 또는 중도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2010년 선거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시 입후보자는 모두 70명. 그때도 진보 진영은 13명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고, 나머지는 보수 또는 중도 성향이었다. 그런데 4년 전 선거에서는 난립 와중에도 당선됐던 보수 후보가 이번에는 대거 낙선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보수 단일화는 과거보다 훨씬 진전됐다. 4년 전 보수 진영이 이른바 '반전교조 단일 후보'라는 이름으로 추대한 후보는 4명에 불과했다(서울·대구·인천·경기). 반면 이번 선거에서 '바른 교육감 추대를 위한 전국회의'가 추대한 '보수 단일 후보'는 10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중 단 한 명(대구 우동기 후보)만 당선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진보 교육감이 전국적으로 약진한 이유를 보수 단일화 실패에서만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덕성도 마찬가지다. 고승덕 후보의 사례가 극단적인 측면은 있지만 4년 전 선거에서도 음주운전·뇌물 수수 등 후보의 사생활이나 범법 행위를 둘러싼 난타전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진보 교육감의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인물 경쟁력이 변수였을까? 4년 전에 출마했던 후보가 또 나온 지역을 보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 낙마했다가 이번에 성공한 진보 후보는 모두 4명. 이청연(인천)·김병우(충북)·김지철(충남)·박종훈(경남) 후보다. 이들은 지난 선거에 비해 7~16%포인트 더 득표했다. 지난 4년간 이들이 바닥 민심을 훑으며 인지도를 올렸다고는 하지만 선거 초·중반 경쟁 후보에 뒤졌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것만으로 득표율 상승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뿐 아니다. 다른 지역의 진보 후보도 4년 전 출마한 진보 후보에 비해 득표율이 4.9%(서울)에서 26.0%(전북) 포인트까지 크게 높아졌다(위의 < 그림 > 참조). '진보 교육감의 수장' 격으로 꼽히던 김상곤 전 교육감이 빠져나간 경기에서만 득표율이 5.8%포인트 빠졌을 뿐이다. 결국 선거 막바지 유권자들이 '진보 후보'라는 브랜드에 표를 몰아줬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낳은 결정적 요인은 세월호 참사라는 것이 중론이다. 세월호 참사는 철옹성 같던 서울 강남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조희연, 강남 3구에서도 선전참조).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 중 송파구에서는 조희연 후보(37.9%)가 문용린 후보(34.0%)를 제치고 득표율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시작된 이래 강남 3구 중 한 곳에서라도 진보 후보가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사IN 조남진 4월30일 마담방배 등 육아 커뮤니티 회원들이 강남역 사거리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역에서도 표심이 움직였다. 특히 여성들의 지지세가 뚜렷했다고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말했다. 이른바 '앵그리 맘'의 표심이 진보 교육감을 대거 당선시킨 으뜸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2009년 충남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바 있는 김지철 당선자 측 남원근 공보팀장은 "선거 초반부터 여성 지지율이 경쟁 후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양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경남 박종훈 당선자 측 강순희 대변인 또한 "엄마들의 움직임이 4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했다"라고 말했다. 육아 커뮤니티나 책읽기 모임 등에서 후보 지지 선언을 하거나 선거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곳곳에서 활발한 토론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거제·통영 같은 지역 모임에 가보면 저녁시간대인데도 엄마들이 60~70명씩 모여 있어서 놀랄 때가 많았다. 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갑갑해했다." 경남의 경우 현직 교육감의 부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진주외고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으로 학생 2명이 잇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심이 더 요동쳤다. 인천 이청연 당선자 측 이진숙 대변인은 "카톡 등 SNS를 통해 움직인 젊은 엄마들이 막판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라고 말했다.
혁신교육 경험자들의 지지도 한몫
그렇다면 '앵그리 맘'의 동력은 왜 교육감 선거에서 유독 결집된 형태로 분출됐을까. 조희연 후보는 5월21일 < 시사IN > 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가 '좋은 삶'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기쁨인데, 그런 아이들을 밤 12시까지 학원에 붙들어놓고 닦달하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인지 부모들이 되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를 병들게 만드는 '미친 경쟁'을 이제는 끝내야겠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 듯하다"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 분야의 경우 미완의 형태로나마 '대안'이 제시됐다는 사실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보수 교육감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진보 교육감들이 지난 4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들에 대한 우호적 평가'가 이번 선거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고 총평했다. 전교조 또한 '혁신교육을 경험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지지'를 진보 교육감 당선의 동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대안 부재로 유권자들의 신임을 받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야당과 달리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지난 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전과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무상급식'과 '교육복지'를 확대한 1기 진보 교육감 시대에 이어 2기 진보 교육감 시대에는 '입시 고통 해소' 및 '공교육 정상화'를 이뤄내겠다고 목표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등을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고교 평준화를 확대하며 △대학 입시를 내신과 수능으로 단순화하는 한편 대입 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서겠다는 공동 공약을 5월19일 발표한 바 있다(아래 < 표 > 참조).
지역별 공약에서도 이런 지향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충북의 김병우 후보는 고입 선발고사와 0교시 수업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충남의 김지철 후보는 '전국 유일의 비평준화 지역'인 충남에서 고교 평준화를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이청연 후보(인천), 김석준 후보(부산), 박종훈 후보(경남) 등은 혁신학교를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공통적으로 무한경쟁을 완화하고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공약들이다. 당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여기에 유권자들이 호응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진보 교육감 2기는 벌써부터 순탄치 않은 항로를 예고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위기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조선일보 > 는 선거 다음 날인 6월5일자 1면 헤드라인을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 뽑아 교육감 당선자 중 8명이 전교조 지부장 출신임을 환기시켰다(쉽지 않은 진보 교육감 시즌2참조). < 중앙일보 > 는 "'전교조 교육감' 시대…그 밑에 학생 605만"(6월6일)이라면서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부나 보수 단체장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것은 물론 정치 편향 교육을 할까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은 한발 더 나아가 교육감 직선제 무용론을 들고 나왔다. 교육감 선거가 인물과 정책보다 진영 논리의 대결로 흐르고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하자는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에 대해 직선제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폐지론부터 들먹이는 것은 '진보 교육감 당선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런 외부의 공격보다 더 큰 문제는 진보 교육감들이 앞으로 4년간 역량을 발휘해 유권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이다. 진보 교육감 1기가 내세운 교육 정책의 차별성은 보수 진영의 '따라하기 전략'으로 많은 부분 희석된 상태다. 무상급식은 전국으로 확대됐고, 혁신학교를 본뜬 프로그램과 교육과정 또한 다수 운영되고 있다. 웬만한 정책으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학교 현장의 개혁 동력을 살려내는 게 관건
교육 악순환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기 위해서는 그 정점에 있는 대학 서열화와 입시제도를 건드려야 하는데, 이는 교육감의 권한을 넘어선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는 "후진국형 교육체제를 선진국형 교육체제로 바꾸기 위한 범국가적 공동협의기구를 만들자고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변화를 체감하려면 무엇보다 학교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교사 출신으로 서울교육감 정책보좌관을 지낸 이형빈씨는 진보 교육감의 지난 4년을 "그야말로 '엇박자'가 난 시기였다"라고 진단했다( < 오늘의 교육 > 5·6월호). 진보 교육감의 등장으로 '혁신 교육의 시대'가 도래했건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개혁의 동력이 소진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더 노골화된 경쟁 교육은 학생·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도 고립시켰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자조가 일상화된 배경이다. 그나마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일부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올인'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 교육 전반을 바로잡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번 선거 직후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골든 타임'에 처한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으라' 대신 '물음표가 있는 교육'을 선택했다는 소감을 SNS에 남겼다. 그 선택은 과연 침몰하는 한국 교육을 구원할 수 있을까. "성공한 진보 교육감은 교육 주체(학부모·학생·교사 등)의 열망과 동력이 결합될 때만이 만들어질 수 있다"라는 이형빈씨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