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중에 부모 잘 만나 부모 덕으로 중견기업에 입사한 애가 있습니다.
그 애가 무슨 아파트 어쩌고 하면서 우리 집에 주소를 옮겨 놓아서
대부분의 서류가 우리 집으로 오고,
그러면 우리 보고 그걸 보고 알려달라고 하거든요.
며칠 전에 그 사촌 국민연금 관련 서류가 왔더군요.
총 납부 금액이 얼마, 앞으로 받을 금액이 얼마.....
중견기업에서 급여도 잘 받는다더니 납부금액도 많고 앞으로 받을 금액도 많더군요.
(제 입장에서는 많다는 것이었어요)
일반고졸로, 회사 사장과 부모가 지인이라 낙하산으로 꽂혀서
일 제대로 못하고 업무 몰라도 잘리지도 않고 연봉도 잘 받고 잘도 다녀요.
저는 인서울 대학을 나왔지만, 장애인 가족부터 시작해서
내내 제 발목을 잡는 여러 일들 덕분에 취업시험도 제대로 못 봤고,
그나마 간신히 발악해서 들어간 회사조차
아버지의 폐암 3년 투병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어머니와 하루 12시간 교대로 간병했습니다.
그렇게 3년 단절되고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 큰 회사는 안 받아주네요.
어쨌든 사촌보다 급여가 적다 보니 국민연금도 적죠.
그런데 어제 그 서류를 보시던 어머니가 저에게 제 국민연금은 얼마냐고 물어요.
저도 확실한 액수 기억이 안 나서 '걔보다 약간 적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다른 이야기하느라 화제가 다 끝난 줄 알았어요.
자러 제 방으로 돌아갔는데 어머니가 뭘 막 찾으시더니 제 방으로 오셔서 보여주시네요.
"걔보다 약간 적은 거 아냐. 많이 적어. 너 ~ 얼마밖에 안 돼. 나중에 받을 돈도 얼마 안 돼."
하하하...
저에게, 사촌보다 국민연금이 한참 적다는 거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12시가 넘은 오밤중에 서류 넣어둔 서랍을 다 뒤지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부모 잘 만나 일반고졸로 중견기업 들어갔고,
인맥으로 들어갔으니 낙하산으로 뻐대면서 절대 안 잘리고 지금까지 회사 다니는 애 부러우면
엄마도 좀 인맥 만들어 날 회사에 넣어주시니 그러셨나요?
이 말이 입까지 올라오는 걸 참았습니다.
6개월간 하혈할 때, 너무 심한 하혈로 빈혈과 부종이 생겨
몇 번 안 본 남들조차 어디 아프냐고 묻는데도
부모라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아버지 칠순만 거창하게 하려고 할 때도
그래, 부모가 신은 아니다, 약한 인간이다, 나보다 나을 게 없을 수도 있다....
수천 수만번 외우며, 퉁퉁 부어서 손가락이 접히지도 않는 몸으로
아버지 칠순을 했었습니다.
하긴, 원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제가 옷 한 벌을 사오면 반드시 흠을 잡아내야 직성이 풀렸고,
뭘 좀 사오라고 해서 사다 드리면 니가 사온 건 이상하게 꼭 물건이 이상하다고 하시네요.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오뚜기참기름', 그것마저도 제가 사다드리면
안 고소하고 기름이 찐득거리고 맛이 없으시답니다. 하하.
아버지가 투병하실 때, 코로 삽관하고 유동식 드시게하는 게 있는데
호주인가에서 나온 유동식을 사다 드렸어요.
그런데 엄마 동생인 이모 부부가 다른 사람이 사다 놓았던 그 유동식이 20개 있다고 갖다 줬죠.
같은 회사, 같은 상표, 같은 종류의 유동식이었어요.
캔으로 나와서 파는 건데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버지에게 그 유동식 드리면서 한 마디 하시네요.
"이모네가 가져온 게 훨씬 진하고 냄새도 고소하다. 넌 어디서 똑같은 돈 주고 그런 이상한 걸 사오니?"
이런 어머니가 남들에겐 참 잘 해요.
그래서 우리 엄마를 참 좋아하던 제 사촌이,
가까운 데 살면서 엄마가 제게 하는 걸 보고는
"내가 너로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라고까지 하더군요.
에휴.............. 그냥....... 넋두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