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학벌주의, 대학서열화의 필연적 결과인가 / 이범

열정과냉정 조회수 : 1,220
작성일 : 2014-02-20 18:23:08
가을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학생들이 있다. 
특성화고(실업계고) 또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려 하는데, 
엄마가 결사반대하니 엄마를 설득해 달란다. 
몇년 전부터 기업에서 고졸자 채용을 늘리거나 지방대 졸업자 채용을 확대하고 
스펙을 안 보는 ‘열린 채용’을 넓히는 등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의 총장추천제도 실상 이러한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얘기를 학부모들에게 하면 대체로 ‘쇼하고 있네’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기업의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무척 진지하다. 쇼가 아닌 것이다.

흔히 학벌주의의 원인으로 대학 서열화를 지목한다. 
하지만 한국의 학벌주의는 한국 대학시스템의 모델이 된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 
학벌주의를 곧바로 대학 서열화의 결과로 파악하는 환원주의는 
시급히 보완되고 교정되어야 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나라는? 소련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때 좌익이었을 때 이를 접했을 것이다. 
관료들이 돈과 권한을 틀어쥐고서 어디에 조선소를, 
어디에 비료공장을 세우라고 지휘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거리가 멀다. 
관료의 힘이 매우 강한 것은 식민통치의 유산이자,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의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이 관료를 시험을 통해 선발해왔다. 
서구 각국의 공무원 채용이 일반 기업처럼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이뤄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는 ‘정부 주도 성장’과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이 익숙하지만, 
실은 두 가지 모두 예외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극단적인 학벌주의는 ‘중첩된 예외’의 결과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입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이른바 ‘스카이’에 모이게 된다. 
대학입시와 고시는 유사한 유형이므로 이들은 고시 합격률이 높다. 
이렇게 고급 관료가 되면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정부 쪽의 학벌주의는 이로써 설명된다. 
그리고 이것이 민간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 정부가 ‘갑’이고 기업이 ‘을’이었으니까. 
정부 주도 성장하에서 기업은 기왕이면 ‘갑’과 친한 사람을 두고 싶어한다. 
대학 동문이 보증수표다. 룸살롱에서 술 따라 드리며 선배님에게 엎어지기도 해야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 정부 주도 성장, 그리고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 등 
세 가지 요인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부 주도 성장’이 끝났다.
 금융업 정도를 제외하면 더는 정부가 ‘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기업이 굳이 ‘관료들과 친한 사람들’을 포진시킬 이유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삼성그룹 사장 승진자 여덟명 가운데 스카이는 단 한 명이다. 
모 그룹 임원진 승진자 명단에 스카이 출신이 몇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소식이 돈다. 
최근 채용 트렌드의 변화도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정부 주도 성장의 종료로 인해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잘 안 먹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의해 ‘2차 학벌주의’가 심화된 탓이다.
 좋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구직자의 심리 속에서 ‘좋은 대학 간판’이라도 확보하고 싶은 간절함은 더 강해진 것이다.

학벌주의 강화 신호와 약화 신호가 동시에 들린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1차 학벌주의는 대학이 평준화되어야만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갈수록 간판과 스펙보다는 역량과 전문성이(구체적으로는 경력과 추천서와 면접이)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2차 학벌주의는 이와 별도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높이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요구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IP : 221.152.xxx.95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52645 집에서 살림만 하시는분들...안 우울하신가요? 12 우울해요.... 2014/02/20 3,557
    352644 군포 산본에서 연아선수 플랭카드 너무 오버 13 .. 2014/02/20 3,890
    352643 올림픽 관람권 되게 비싸네요 9 ........ 2014/02/20 2,092
    352642 대학 합격후 학원에 어떤 감사 표시가 좋을까요? 4 엄마맘 2014/02/20 1,302
    352641 내일 제주도 가는데 질문이 좀 많아요 ^^;; 4 당장 내일 2014/02/20 1,434
    352640 네일아트 배우는거 어떨까요? 질문 2014/02/20 501
    352639 네덜란드 여기자의 한국 여성 취재기 “결혼이 그리 중요?” 도루묵 2014/02/20 1,325
    352638 학벌주의, 대학서열화의 필연적 결과인가 / 이범 열정과냉정 2014/02/20 1,220
    352637 직장 오너에게서 받는 수모감과 비참함에 가슴이 콱 막.. 9 비정규직 2014/02/20 2,877
    352636 제가 결혼 생활 중에 행복했던 시절 9 일기 2014/02/20 3,323
    352635 심플한 삶을 지향하는 분들 있으세요? 113 99 2014/02/20 25,690
    352634 오늘 프리 드레스 리허설보신분 계신가요? 1 졸리당 2014/02/20 2,009
    352633 중견탈렌트 한인수씨 2 ... 2014/02/20 3,284
    352632 저녁 준비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네요.. 2 아자 2014/02/20 740
    352631 감사합니다^^ 4 환불은..... 2014/02/20 496
    352630 7년 전부터 씨가 마른 신토불이 명태... 1 손전등 2014/02/20 542
    352629 요새 트위드 입으면 좀 촌스럽나요? 9 .. 2014/02/20 4,137
    352628 명지대 법학과 질문입니다. 4 변호사 2014/02/20 4,339
    352627 트윌리 감고 다니는 분들 안 풀리나요? 2 손잡이에 2014/02/20 1,306
    352626 여권사진 찍을때 귀보여야되나요? 6 살빼자^^ 2014/02/20 1,742
    352625 식당에서 땅콩을 볶아서 반찬이 나오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건지요?.. 3 어케해 2014/02/20 1,743
    352624 4개월정도 위약금없이 인터넷 가입할 수 있나요? 1 궁금녀 2014/02/20 480
    352623 일본은 마오가 금메달 딸 때까지 선수로 뛰라네요. 14 니뽄 2014/02/20 4,869
    352622 어린이 이갈이 고쳐질까요? 3 이갈이 2014/02/20 2,117
    352621 미국에서도 시설 장애인 학대..한인 부부 기소 착취 2014/02/20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