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용실을 잘 안간다.
머리 한답시고 두 세시간쯤 앉아있다보면 지겹고 지루하고 허리도 아프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진지한 철학적 고민과 성찰의 시간은 개뿔... 머리고 나발이고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원래 그랬다.
대학때도 친구들이 머리하러 가자고 하면, 나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며 원래 이쁜애들은 머리 좀 안해도 이쁘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다 뒤통수 한대맞고 끌려가곤 했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삼일전부터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아.. 미용실가야되능데 ㅜㅜ 이러고 있다가 맘을 먹고 집을 나섰다.
보통 집앞 동네미용실서 흰머리 염색하시는 개똥이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말곤 했었다.
'아줌마 발롱펌 되나요?(어디서 주워 들었다.)'
'아줌마 C컬 되나요?(친구들이 요즘 이게 유행이랜다)'
이래봤자.. '뭐? 굵게 말아달라고?' '네 ㅜㅜ 굵게 말아주셔요' 했드랬다.
그래도 대세엔 지장 없었다.
집에서 드라이 대충하고 모임에 나가면 머리 어디서 했느냔말도 가끔 듣곤 했으니까.. 헐헐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대따 큰 미용실로 향했다.
어우... 막 번쩍번쩍하다.
남편이 머리하러 간다니까 '띠링~' 카톡을 보내온다.
'당신 이 머리 한번 해봐. 잘 어울릴것 같아' 하며 보내온 것은 아이리스 오연수사진이었다.
난 '훗.. 내가 뭔들 안어울리겠음!' 이럼서 막 겁대가리도 상실했었다.
드자이너 언니한테 사진도 보여주고, 뭐라뭐라 말도 오가고, 커피도 두잔쯤 마시고, 보조가 와서 또 뭐라뭐라 깔깔대고..
잡지도 세권쯤 보고나니 머리다 다 됐단다. 아효.. 힘들다.
'느무느무 잘 어울리셔요'
'훨씬 영~~~~ 하시네요' 호호호
이런 영혼없는 소리를 들으며 거울을 보니.. 허걱!!!!!!!!
오연수처럼 캐 시크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상상하고 갔던 나는...
내 얼굴이 오연수가 아니었던걸 잊었던 거야..
내가 더이상 똥꼬발랄한 뭘 해도 어울렸던 이십대가 아니었음을 잊었던거야..
가만보자..... 거울 속에 내가 웬지 익숙한건 왜지??
왜 항상 성경책을 옆에끼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던... 구루푸를 말아 짱짱한 커트머리를 자랑하시던...
옆라인 권집사 아줌마가 생각나는거지..
아.. 쓸쓸한 가을 바람이 불 뿐이고...
나는 왠지 구루푸를 사야할 것 같을 뿐이고..
내손에는 20만원쯤 하는 카드 명세서가 있을 뿐이고...
예쁜 모자, 가을 유행 모자, 모자 예쁘게 연출하는법 검색하다 갑자기 울컥해서 올려봅니다.
다시 읽고 오글거리면 지울지도 모르겠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