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게를 읽다가... 예전부터 머리속에 맴돌던 생각이 떠올라서 그냥 끄적끄적 해 봐요.
저는 일본쪽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일본 출장...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야 합니다. 주로 도쿄 쪽으로요.
처음 3.11 대지진이 일어나고, 원전이 터지고... 그런 일들이 생기면서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 일을 정리해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오래 깊이 고민했어요.
3월 5일이던가 출장에서 돌아 왔는데 일주일 있다가 지진이 난거예요.
그리고 원전..
무서웠어요. 망가진 원전이 뿜어내는 방사능 물질들, 건강에 미칠 영향...
후배 중에 원자력 공학 전공한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원전 터지자 마자 제게 연락을 했어요.
누나 당분간은 일본, 조심하시라고, 심각한 일이라고, 절대 조심하셔야 한다고.
다음 출장은 4월 중순... 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한 달을 미친듯이 고민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4월 출장, 갔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갔고요.
지금도 여전히 한 달에 3일에서 4일 정도, 도쿄에 머무릅니다.
'방사능 천진데 거길 왜 가나요?' 라는 얘기 하실 분들, 많을테지요.
'알면서 거길 왜 가나요?' 라는 얘기도.
그런데요, 정말 어쩔수 없어서 일본행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말 정말 어쩔수 없어서 일본에 계속 머무르시는 분들도 당연히 있고요.
저는 생업이라... 도저히 접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지만... 단순한 여행은 저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건강은 자신하는게 아니라는거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게다가 도저히 수습 불가능해 보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태...
그런데도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어요.
'먹고 사는 일' 이 걸려 있는걸요.
안 가면 '먹고 사는 일' 을 하지 못하게 되는걸요.
그냥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하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하물며 오랜 시간을 들여서 구축해 놓은 사업망을 정리하는게 쉽지 않은거, 당연하잖아요...
저는 일본과 기술 제휴 비슷한 일이라 계속 유지를 해야겠다 생각을 했지만
만약 일본 제품을 가져다 파는 종류의 일이었다면 어려웠더라도 정리를 했을거예요.
원전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이 어떤지 모르지 않으니... 그리고 저부터도 흠칫 꺼려지는데
그걸 어떻게 가져다가 팔겠어요.
위에도 적었지만 저는, 단순 여행은 '권하지 않'아요.
제가 일본에 자주 가니까 저한테 요즘 도쿄 어떠냐, 여행하기 괜찮냐, 묻는 분들 많아요.
그럼 저는 그냥 웃으면서 '도쿄도 좋지만 홍콩도 좋아요' 하는 식으로 뭉뚱그려 대답해요.
그래도 가실 분들은 가시죠.
'모르고 가는' 분들도 계시고 '알아도 가는' 분들도 계세요.
'알아도 가는' 분들은... 원전이나 토양 오염등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심각하게 생각 안 하시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수를 하시겠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럼 저는 더 이상 딴 말씀 안 드려요.
본인이 감수를 하시겠다는데 제가 무슨 얘길 더 하겠어요.
'즐겁게 잘 지내시다 조심히 돌아 오시라' 정도 인사만 드려요.
저는 일을 해야하니 자주 드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포감이 무뎌진건 아니예요.
겁나죠. 혹시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기는건 아닐까...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까, 가요. 되도록 조심하면서, 만약 일어날 수 있는 피해는 감수하자고 생각하면서.
저는 그래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지만, 정착해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 분들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감이 전혀 없어서 거기 사신다는 생각, 안해요.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그런거 아닐까요.
원전사태 이후 일본행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모두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어서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그 분 나름의 감수할 몫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거든요. 일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 만에 하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내 몫으로 받아 들이고 감수하자, 라고.
그러니 너무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느끼기엔, 거길 왜 가니 한심하다... 라는 식의 반응이 불편해요.
몰라서 가는 분도 있겠지만 알면서 가는 분도 있는데, 이후의 일들에 대해선 그 분들 몫이잖아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당신들이 말리지 않아서 나 큰일났다...고 할 것도 아니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세상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거 다들 알잖아요.
되도록 안 갔으면 좋겠지만 일단 갔으니 즐겁게 지내시라, 는 정도의 반응이 좋을것 같은데요.
예전에 자게에서 읽었는데... 방사능 때문에 일본이 끝났다(?)는 식의 글에
일본에 사시는 분이 '이런 글을 읽으면 여기에 사는 우리들은 시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라고
댓글 다셨던게 기억이 나요.
일어난 일, 현실인 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거,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알건 알고 살아야죠.
다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서로 좀 부드러운게 어떨까 싶어요.
그렇잖아도 팍팍한 세상에, 굳이 날 세우면서 서로 기분 상할 필요 있을까요...
다 자기 몫이고, 자기 선택이예요.
꼭 좋은 말 달콤한 말만 할 필요는 없겠지만... 서로 생각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날도 궂고 어쩐지 일하기도 싫고 해서 한참 주절거렸네요. ^^;
따뜻한 오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