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 한겨레

저녁숲 조회수 : 1,258
작성일 : 2013-01-10 11:17:44

[사설] 말의 죽음, 시인의 죽음

2013.01.09 19:06

 

 

시인의 말은 핍박받는 이들의 무기다. 가난한 이들의 위로이며 소외당한 이들의 벗이다. 말로 말미암아 이들은 다시 일어서고, 저항하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말마따나 시와 문학은 고통의 산물이고, 시인이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예민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런 시인의 맨 앞줄에 새겨진 이름 가운데 하나가 김지하다. 그의 글은 황토에 선연한 땀과 피의 긴장 속에서 튀어나와 독재자와 부역자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었다. 치명성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형 선고를 당해야 했다. 당대인들은 그 앞에서 숨죽여 몸서리쳤다.

 

그런 그의 말은 어느 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불의에 맞서는 이들에게 수치심이 되었다. 시대의 절망이 강요한 산화를 두고 죽음의 굿판으로 몰아붙였다. 요즘엔 그 자신을 옭아맸던 빨갱이 공산당 따위의 말을 마구잡이로 날린다. 황토를 떠나 허공을 맴돌던 그의 말이 언제부턴가 권력의 추력을 받아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치명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고통을 외면하고 슬픔을 잊은 말이 힘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요설은 한갓 현혹이고, 협박, 깡통, 쥐새끼, 똥꾸멍, 찢어죽여… 따위의 말은 ‘오적’과 ‘비어’의 말 그대로지만, 맥없이 코앞 시궁창에 박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가 신앙하는 후천개벽과 여성시대의 도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내공에 대한 믿음 따위를 무작정 비난할 순 없다. 신념은 신념대로 존중해야 한다. 여성성에 대한 판단을 놓고 논란은 있겠지만, 시비를 일도양단할 순 없다. 변신을 안타까워할 순 있지만 훼절이라 매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졸렬한 증오와 마구잡이 가해는 참기 힘들다. 누군가는 그에게 서푼짜리 분노를 집어치우라고 했다지만, 요즘 그가 토해내는 공연한 분노는 서푼 값어치조차 없다. 상생을 말하면서 저 혼자 옳다 우기고, 섬김을 말하면서 섬기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한때 서운했던 감정 때문에 평생을 저주하는 그의 말들이 어찌 한푼 값어치나 있을까.

 

그 자신도 말했듯이, ‘오적’ 이후 말이 육신이 되고 힘과 희망이 되는 그런 시를 그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시인 김지하’는 아주 오래된 전설 속의 이름이다. 하지만 몇몇 시편과 그로 말미암은 수난은 한 시대의 가시면류관으로 우리 기억에 각인돼 있다. 설사 오늘날 그의 말들이 수치스럽다 해도, 그 이름을 쉽게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이제 그를 책갈피에 묻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오늘의 아픔을 담아낼 오늘의 말과 시인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IP : 118.223.xxx.23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ㅁㅁ
    '13.1.10 12:08 PM (211.246.xxx.209)

    창비 영인본 살 때 외판사원이 슬쩍 끼워준 시집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폴 엘뤼아르를 읽을 때 자꾸 겹쳤던 이름 김지하. 한겨레가 많이 참으며 글썼구나 싶은 기분, 몇 번이고 자기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썼구나 싶은 기분. 옛 김지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의.

  • 2. 바이
    '13.1.10 4:03 PM (1.236.xxx.103)

    내 마음은 너를 잊은 지 오래.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207479 학원비가 죄다 현금입니다. 6 고딩엄마 2013/01/15 2,816
207478 빨강머리 앤 극장판 2 실망실망 2013/01/15 1,806
207477 치킨 먹은게 체해서 힘들어요 좋은 방법 있나요? 6 다람쥐 2013/01/15 1,041
207476 실수령액 350만원... 쓰임새 좀 봐주세요. 30 도와주세요 2013/01/15 6,240
207475 독일 사는 분들 혹시 후시딘 같은 효능 연고 뭔가요? 1 ----- 2013/01/15 2,139
207474 색다른상담소 들으셨던분들, 급질이요! 1 대변트라우마.. 2013/01/15 939
207473 돈 잘모으시는 고수분들 조언 좀 6 질문 2013/01/15 2,609
207472 미국에서 핸드폰으로 전화할때! 4 미국 2013/01/15 2,075
207471 김치나 고기 싫어하면 이상한가요? 18 ㄷㅈㅂ 2013/01/15 2,060
207470 긴머리 효과적으로 빨리 말리는 법 3 Adrian.. 2013/01/15 9,274
207469 난 형제 주는 부모보다 노후대책있는 부모가 되고 싶어 15 이런 2013/01/15 4,569
207468 책가방으로 어떤가요? 르꼬끄 트리플컬러백팩~ 2 중학신입생 2013/01/15 1,180
207467 시어머님 감성에 공감을 못하겠어요. 14 공감제로 2013/01/15 3,491
207466 요즘 라면이 너~무 땡겨요. ㅠ.ㅠ 5 나트륨~ 2013/01/15 1,441
207465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이런가요? 2 환경 2013/01/15 1,003
207464 빅토리아시크릿 쇼에서 브루노마스가 부른 노래 알려주세요. 5 팜므파탈 2013/01/15 2,184
207463 적금 매달 새로 넣어서 돌린다는게 불가능한데 이해 좀 시켜주.. 9 적금셔틀 2013/01/15 2,538
207462 다음 달 전기요금 오르는 건 민영화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3 궁민 2013/01/15 1,033
207461 여러분 제가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까요 275 . 2013/01/15 20,636
207460 딴지일보 후원안내... 5 .... 2013/01/15 1,043
207459 조각실 판매처 있을까요? 3 손뜨개 2013/01/15 681
207458 라천들으셨던분들~ 2 야식왕 2013/01/15 555
207457 상해 2박3일 여행가요~ 자유여행 어쩌면 좋을까요? 12 상해 2013/01/15 2,203
207456 (급) 전세 계약 질문 할께요 6 전세 2013/01/15 1,139
207455 아까 호의에 대해 글 쓴 사람입니다 1 남편의 명언.. 2013/01/15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