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7살, 조금 있으면 8살 되는 조카가 가족행사 때문에 지방에 있는 집에 왔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없어서 아버지께 얘기만 들었는데
외가에 도착하고 언니와 형부가 짐을 정리하는 사이에 조카가 아버지께 (조카의 외할아버지)
안부전화를 해야한다고 하고, 집전화로 어디로 전화를 걸더랍니다.
상대편한테 잘 도착했다고 인사를 하고 끊었는데...
알고보니 형부의 직장상사분께 안부전화를 건 거였어요.
두 달 전에 직장상사분 집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그 분이 조카를 귀여워해주셨나봐요.
외가에 오기전에도 그 분이 잘 다녀오라고, 가있는 동안 보고싶겠다, 라고 한 게 조카 마음에 남았었나봐요.
그래서 자기 딴에는 잘 도착했다고 말씀드려야한다고 생각했는지 전화를....
형부가 뒤늦게 아버지께 얘기를 듣고 사색이 돼서 상사에게 전화를 하니
그 분도 애가 애가 아니라고....정말 놀라시더래요.
알고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사 분 휴대전화도 외우고 있었고,
이웃에 살면서 왕래하는 분들 번호도 다 외우고 있더랍니다.
원체 기억력이 좋았어요. 세 살 좀 넘었을 때 자리에 같이 누워서 아이가 좋아하는
긴 동화책 (초등학생용)을 읽어주는데, 읽어주다가 제가 계속 졸면서 놓치니
"아이참~왜 못 읽어" 하면서 그 다음 대목부터 줄줄 읊기시작하는데
정말 토씨 하나 조사 하나 안 틀리더라구요.
끝까지 그 긴 동화를 외우는 거 듣고 누워있으려니 무섭기까지 하더라구요.
내 옆에 누워있는 이 조그마한 아기는 대체 어디서 왔나....
한글 혼자 떼는 건 흔하니 그렇다쳐도
아무도 안 시켰는데, 다섯살 때 삼 일을 악착같이 매달려서 구구단을 다 외우고
서점에서 파는 학습지 사주니 너무 좋아서 침이 뚝 떨어질만큼 웃더니,
반나절 내내 매달려서 공부하더래요.
유치원에서도 공개수업하는데 원장이 학부모 다 있는 자리에서
이 아이가 유치원에서 제일 똑똑합니다, 얘기를 했다는 거 듣고 (쉽지 않은 일이 잖아요)
제가 고슴도치 이모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조카를 보면 신기한 게 기억력 좋고, 똘망똘망하고 그런 거 보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배우고 익히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희 언니는 워낙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엄하게 교육시킨게 상처가 돼서
책 읽어주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애가 혼자서 한글, 알파벳, 영어회화 공부하고 아빠한테 한자도 배우고.....
이런 거 보면 저도 어릴 때 4살 때 혼자 한글 떼서 책에 파묻혀 지낸 애였는데
조카에 비하면 무슨 진흙덩어리였던 거 같아요.
다섯 살 때 세숫대아에 담긴 물을 흘려보내면서
"이모, 세월이 흘러가...."라고 말하며 저를 향해 배시시 웃던 조카 모습, 영영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첫 조카는 자기 아이 보다 더 귀엽다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