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 년 중학교 무시험제도 실시에 이어 1974 년 ‘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 는 도입 당시 극심한 과외 해소와 치열한 고입 경쟁 완화가 목표였다 . 처음 효력이 있나 싶더니 약발이 떨어져 우리 풍토병인 사교육은 오히려 고질의 불치병이 되었다 .
과외 유발의 원인 진단과 처방이 아닌 평준화라는 무기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결국 잡초 제거 용 제초제를 무차별 살포해 환경을 오염시킨 꼴이 되었다 . 고교평준화제도는 일부 계층의 ‘ 내 자식 차별화 ’ 라는 욕구 충족을 외면하고 출발하였기에 강압적 단속에도 아랑곳 않고 비밀과외 성행을 조장하는 등 온갖 불협화음이 이어져 왔다 .
평준화에 발맞추어 시행되던 과외금지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초 중 고 재학생의 학원 수강을 전면 허용함에 따라 과외금지 조치는 무색해졌고 오히려 평준화가 극성과외를 부채질해 사교육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것도 사실이고 ,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사교육이 학교 수업의 연장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
‘ 학교교실은 사교육을 위한 휴식처요 취침실로 전락해 공부는 사교육장에서 ...’ 라는 등식아래 학교에서와 같은 과목을 선행하거나 반복하여 공교육 부실을 부채질하였고 , 사교육이 당연한 교육과정이라 여기고 있다 .
저물어가는 사회주의 국가나 산업화 시대에 어울리는 획일적 교육을 사교육을 핑계로 평등주의를 앞세워 전인교육이라고 주장하다가 오히려 사교육에 볼모로 잡힌 꼴이 되었다 . 따라서 40 년 이상 시행했으니 쉽사리 뒤집지 못하고 전전긍긍이다 . 황폐한 공교육이 유지되는 한 계층상속이나 계층이동은 물론이요 뜻한바 좋은 대학 입학이 어렵다고 국민 간 암묵적 합의로 나타났다 .
평준화 교실에서 잠자는 토끼가 아닌 바에야 토끼와 거북이 경쟁은 그 결과가 뻔하고 우수생과 열등생이 구조적으로 혼재된 교실에서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 평준화는 평등이라는 허구 속에 우수생과 열등생 모두가 수혜자가 못되고 피해와 불이익을 입는 지극히 불평등한 제도이고 껍질만 평등주의인 반면 알맹이는 불평등주의 , 무늬와 선발만 평준화이고 속내는 비평준화로 지극히 불평등한 제도이다 .
평준화 병폐의 보완책이 다양성과 수월성 제고 ,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확대라는 이름 아래 특목고와 자사고 탄생이다 . 특목고와 자사고는 과도한 입학금과 등록금도 문제지만 본래의 설립 목적에 반하여 대입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우수생 집단이 모인 귀족고등학교요 옥상옥 고등학교로 평준화고교를 묶어놓은 채 운영되고 있다 . 이들 입학을 위한 중 3 생들의 치열한 경쟁 유발도 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평준화의 문제점을 대변하고 평준화고교 간 극심한 격차도 새로운 불씨로 떠올랐다 .
평준화가 인성과 수월성 함양을 동시에 수반하지 못해 평준화가 교육의 평등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없어 허구에 불과하다 . 많은 국가가 국가경쟁력을 이유로 수월성 제고와 선택권 확대를 앞세워 손질 중이며 무한경쟁 속 정당한 경쟁이 글로벌 시대의 교육의 방향인데 , 이에 제동을 걸어 평준화의 무경쟁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 . 지역과 학교 간의 평준화 , 학생들 수준의 평준화 , 시설과 학습기자재의 평준화 , 교사들의 평준화가 전제되지 않는 선발만의 평준화는 오히려 건강한 경쟁을 봉쇄하여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
정부의 교육정책 역시 평준화제도 시비를 차단하면서 변죽만 울리고 있어 실질적인 평준화는 깨지고 평준화고교는 마이너리그로 전락하고 말았다 . 평준화고교와 특목고 자사고 등의 병행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 특목고 자사고 등의 명문대 상위 인기학과 싹쓸이 입학은 45 년 간 유지돼온 고교평준화제도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