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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며느리 사랑은 시어머니

| 조회수 : 3,037 | 추천수 : 144
작성일 : 2010-03-31 00:47:54
로스쿨 입학이 5월로 다가왔다.
원래 시작은 가을 학기부터이지만 조금 시간을 벌어보고자 여름 학기부터 시작을 하기로 했다.
첫 학기는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방학 중이니까 아이들을 챙기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조금 덜한 시기이니 조금 나을 것같아서이다.
LSAT (로스쿨 입학시험)을 마친 것이 2008년이었는데 꼬박 2년이 걸려서 결국 시작을 하게 되었다.
시험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는데, 학비의 부담도 있었고, 융자를 받자니 대학 입학을 앞둔 딸들이 줄서있는 상황에서 웬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어머님의 재촉으로 올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해서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올해 일흔 여덟이신 우리 어머니는 웬만한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원기왕성하시고 깨이신 분이시다.
설흔 다섯 젊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셔서 2남 2녀를 대학 공부 다시키시고 아주버님은 독일에 미국까지 음악공부를 위해 유학 뒷바라지까지 다 해내신 그야말로 장한 어머니이시다.
시댁 모임이 있을 때면 어머니께서 농담 삼아 그러신다.
내가 너희들처럼 헐렁하게 살았으면 너희들 모두 중학교도 못 가르쳤을 거라고.
마흔 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넷을 남기고 가신 시아버님은 아내 걱정, 자식 걱정에 아마 제대로 눈도 못 감으셨을 거다.
한눈 한번 팔지 않으시고 곧게 앞만 보고 뛰어어신 우리 어머니는 팔순을 바라보시면서도 얼마나 각종 정보에 밝으시고 세상 일에 관심이 많으신지 여느 할머니로 생각했다가는 큰 코를 다치기 십상이다.
그런 우리 시어머님께서 며느리가 늦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찬성을 하시고 남편에게도 적극 외조하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다른 사람은 못해내도 우리 며느리는 할 수 있다는 눈물겨운 신뢰를 내세우시면서 행여라도 시누님들이 반대할까 미리 큰 소리로 찬성해주시는 게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게 고마웠는지 모른다.
낼 모레 쉬흔을 바라보는 늙은 며느리가 다 굳어진 머리로 공부를 하겠다는데 어느 시어머니가 흔쾌히 반가워하겠는가.
맞벌이하는 며느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고생할까봐 오히려 말리는 게 당연할 일인데, 시어머님은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지지를 보여주셨다.

두 달 뒤로 다가온 입학을 실감하면서 학비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는데, 아이 넷 딸린 엄마인지라 그다지 남아돌지도 않는 살림에 내 몫으로 학비를 떼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큰 아이가 내년이면 대학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하니 입시학원이라도 보내야 할 터이고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에, 중2가 되는 셋째, 그리고 5학년에 올라가는 막내까지 돈 들어갈 일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며칠 전 어머님댁 다녀온 남편이 빙그레 웃으면서 군고구마 한 봉지를 꺼냈다.
"당신은 참 복많은 여자인가 봐."
"뜬금없이 무슨 얘기야?"
"당신 고구마 좋아한다고 엄마가 고구마를 구워놓으셨더라구. 식기 전에 갖다주라고 하셔서 얘기도 길게 못하고 왔어. 그리고 당신 학교 입학하면 첫 등록금은 엄마가 내주실 거래."
대꾸할 말도 못 찾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친정엄마가 대주는 일은 봤어도 시어머니가 며느리 학비 내주시는 경우는 드물 거야. 엄마가 당신을 딸보다 더 챙기시는 것같아. 어떤 때는 아들인 나도 샘이 난다니까."
아직도 김이 나는 고구마의 껍질을 까다가 내려놓고 휴지를 찾아 눈시울을 닦았다.
"나, 정말 왜 이렇게 복이 많은 거야!"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채로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래서 내리사랑이라던가.
지난 가을,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시고 돌아오신 어머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 마음이 조금 상했었다.
서울 아주버님 댁에서 지내시다 오셨는데 형님과 형님의 친정 부모님께서 얼마나 각별히 잘 챙겨드리고 잘해드렸는지 어머님의 자랑보따리가 열리기 시작해서 끝이 없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즐겁게 듣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며느리라는 게 생각나면서 행여라도 형님과 내가 비교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친정부모님이 사정이 있으셔서 어머님을 만나러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오실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맘이 더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복한 친정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부모님에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란 형님과 나는 정말 무엇 하나 공통 분모가 없이 달랐다.
그런 형님이 모처럼 오신 시어머님께 각별히 신경을 써서 극진히 모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슬며시 못된 마음이 올라왔다.
두어 시간을 내내 큰 며느리 자랑을 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해지기도 했고, 형님의 반의 반도 해드릴 수 없는 나의 처지가 죄송스럽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남편이 슬슬 미워지려고도 했다.
그런 묘하고 복합적인 마음으로 얘기를 하다가 일어서 집에 오려는데 어머님이 여행가방에서 부시럭거리면서 이런저런 봉지를 꺼내주셨다.
"너 좋아한다고 곶감이랑 명란 사왔다. 아범이랑 애들 다주지 말고 너도 꼭 챙겨 먹어라. 이게 미국에서는 비싸서 잘 사먹게 되질 못하잖니."
나의 마음을 들킨 것처럼 순간 송구스러운 마음이 올라와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이번에 부모님이 아무 대접도 못해드려서 너무 죄송했어요. 지금 저희 친정이 그럴 형편이 아니시라서..."
"얘, 내가 언제 그런 거 따지는 거 봤니. 그나저나 너희 어머니가 너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니. 네가 빨리 한번 가서 뵈어야 할텐데. 너희 어머니가 나봐서 뭐하겠니, 딸을 봐야지. 전화라도 자주 드리고 있지?"
우리 어머님은 하여간 며느리 울리시는 데에는 선수이시다.
그날도 기어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면서 왔다.
반은 어머님의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꼭 예닐곱 살 먹은 아이처럼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어머님이 잊을만 하면 한번씩 말씀하신다.
"얘, 며느리도 자식이다. 아들만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거야. 딸도 자식이고 사위도 자식이고 모두 모두 다 내자식이란다."
바다 건너 가야 만날 수 있는 친정엄마의 사랑이 그리워 베개를 적실만하면 그때마다 시어머님이 살가운 마음으로 나를 보듬어주시는 이 곳이 바로 나의 천국이고, 이 곳에 사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이다.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굿럭
    '10.3.31 10:08 AM

    아, 첫댓글 영광이에요. ^^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동경미님 늘 행복하시길 기도해요.

  • 2. 세실
    '10.3.31 8:08 PM

    행복한 글이네요. 저 또한 그런 시어머니가 되렵니다

  • 3. 매일
    '10.4.1 9:30 AM

    항상 반성하고 잘못 저지르고
    울고 웃고
    고마워하고 야속해하고
    그러다 사람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강인하게 자식들 키우신 시어머니 부럽네요

  • 4. 동경미
    '10.4.1 9:43 AM

    굿럭님,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기도해주심에 감사드리고요.

    세실님,
    감사해요. 멋진 시어머니 되세요.
    저는 딸만 있는지라 우리 딸들이 저희 시어머니처럼 좋은 시어머니 만나길 기도하지요.

    매일님,
    사람의 진심을 알기가 참 어렵지요.
    오래 겪고 좋은 일 언짢은 일 다 겪어봐야 비로소 조금 알게 되는 것같아요.
    혼자서도 자녀들을 잘 길러내신 저희 어머니를 보면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늘 쩔쩔 매는 제가 부끄러워진답니다.

  • 5. 산수유
    '10.4.1 9:52 AM

    저절로 고개 숙여 집니다.
    정말 님의 복이십니다.

  • 6. 쿠키
    '10.4.1 10:17 AM

    저희 시어머니도 님 못지 않게 절 챙겨주시죠...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몇번은 있엇는데...아주 과거에요.. 이제는 그것조차 스스로 미안해하실 정도지요... 아.. 나도 우리 시어머니처럼 늙어가야지... 라고 종종 생각하는 저도 복 많은 며느리죠?

  • 7. 동경미
    '10.4.1 10:38 AM

    산수유님,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불평하고 지나온 세월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어머니는 늘 저보다 더 깊은 사랑을 주시면서 오신 건데 저의 부족함이더라구요.
    자식은 늘 부모맘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나 봅니다.

    쿠키님,
    복많은 며느님이 또 계셨군요^^
    저도 저희 시어머니처럼 나이가 들어가야 할텐데 말예요.

  • 8. 나비야~
    '10.4.1 11:28 AM

    제 가슴이 꽉 차~오르네요.
    복 많으시네요.
    너무 부럽습니다.

  • 9. sugar
    '10.4.2 9:21 PM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관계라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마도 동경미님께서 시어머니를 그리 생각하시는 마음이 어머님에게도 전해지니까 그런것 아닐까요? 어쨌든 너무나 보기좋은 고부관계네요.
    동경미님의 글을 읽으니 순한 눈 빛을 가진 우리 시어머니가 생각이 나네요.
    전화라도 드려야 겠어요. 마침 아이도 부활절 방학을 시작했으니 손주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펄펄나시겠지요.

  • 10. 맘마미아
    '10.4.3 4:45 AM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저도 이런 시엄마 되도록 노력해야지....넘 부러워요. 인복도 많으시네요.시엄마의 맘이 좋으니. 모든것이 다 고맙고 좋은것이겠죠. 그러니 좋은 며느리들을 얻은것이지요.매사에 고마워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그.럼 후사가 좋을것 같아요

  • 11. 동경미
    '10.4.5 11:30 AM

    나비야님,
    제가 하는 것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는 복많은 사람이네요.
    늘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며느리가 되어드려야 할텐데 말예요.

    sugar님,
    부활절 방학 잘 보내시고 계시죠?
    저희는 12일 부터네요.
    가까이 보지 못하는 손주이니 얼마나 더 보고 싶으실까요.
    전화 자주 드리시고 아이 목소리도 자주 들려드리세요.
    저도 전화 자주 드리고 자주 찾아 뵙는 것 잘 못하는 불효 며느리이면서 말은 이렇게 합니다^^

    맘마미아님,
    좋은 시어머니 되실 거에요.
    저희 어머니의 사랑으로 며느리가 힘도 얻고 용기도 얻고 그런답니다.
    저도 이제 중년을 지나가고, 어머니도 이제 전보다 많이 연로해지시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해요.
    이렇게 오래도록 주시는 사랑 잘 받고 저도 어머니 잘 섬기면서 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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