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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고등법원에서 온 편지

| 조회수 : 2,812 | 추천수 : 225
작성일 : 2010-03-24 04:51:44
3월 초에 큰 아이가 고등법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온 뒤 몇 날 며칠을 마음을 졸이고 있던 중, 어제 오후에 우편함을 열어보니 편지가 와있었다.
응시원서를 한 통은 위원회 회장에게, 한 통은 청소년법원 부장판사 (Supervising Judge) 에게, 그리고 또 한 통은 총괄 판사 (이 명칭이 맞는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Presiding Judge)에게 보내는 것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괄판사에게 보내는 원서가 중간에 분실이 되어서 판사의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원서를 못 받아보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시간이 촉박하니까 팩스로라도 보내달라고 해서 부리나케 팩스로 보내주었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고 있던 차였다.
뭐가 잘 안되려고 이런 일이 생기나. 분명히 확인하고 세 통을 보내었는데 분실이 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이 지나간 터라 내가 응시한 것도 아닌데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떨리는 마음으로 뜯어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잘안되었으면 뭐라고 전할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본 게 어디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위로해줘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편지를 열어 읽어내려갔다.

고등법원의 판사들 중에서도 유독 깐깐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표판사가 팩스로 원서를 받고 심사하여 같은 날 오후에 부랴부랴 보내온 임명 확정 편지였다.
지난 목요일에 팩스를 보낸 뒤부터  며칠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 판사는 받자마자 비서를 시켜 이미 임명 편지를 보내고 난 뒤인 것을 나와 남편만 둘이서 공연히 떨고 있었나 보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가 될 거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던 큰 아이도 편지를 전해주니 펄쩍 뛰면서 기뻐한다.

지난 몇 년 동안을 아이의 교외 활동에 관하여 고민도 하고 헛된 후회도 해보고 죄책감에도 시달리면서 지나온 뒤라 눈물이 핑 돌도록 감사하고 기뻤다.
시계추처럼 가정폭력보호센터에서 희생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에만 매달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저걸로는 부족한데,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는 마음이 수없이 들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음악을 열심히 시켜 대학원서에 쓰겠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사실 전국 수준의 콩쿨이라도 나가서 번듯한 상을 타올 정도가 아니면 내세울 일이 안되는 것이고, 미술과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그나마 시켜오던 피아노도 이런저런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열심히 밀어주지도 못한 사정이니 부모로서의 미안함이 가득했다.
"엄마, 난 공부 성적 외에는 적을 게 없을 것같아요. 그래도 괜찮은 걸까?"
작년 이맘 때 시무룩하게 물어오던 큰 아이의 얼굴이 내 마음에 꽂혀있었는데 오늘만은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UC 계통은 그래도 성적을 더 중시해서 보지만, 아이가 가고싶어하는 이 동네의 그 학교 (이름은 비밀입니다^^)는 성적은 물론이고 리더쉽, 교외 봉사활동이 중요한 지수로 들어간다는 얘기에 아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천성이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인데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게 생기니 언제 부끄러움을 탔던 아이였나 싶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변화된 모습이 내 아이이지만 참으로 낯설기도 했다.
청소년정의실현위원회 (Juvenile Justice Commission) 에 지원하고 인터뷰를 하러가면서도 떨리지 않냐고 걱정을 했더니 "엄마, 내가 지금 떨리고 아니고를 생각할 처지가 아니거든요. 그냥 무조건 잡아야 되는 기회에요."라고 말하면서 비장한 (!)얼굴을 하고 들어갔었다.

합격 편지를 보고서 아이에게 물었다.
"너 기도 많이 했었나 보다. 엄마는 사실 네가 그다지 내세울 특기가 없기 때문에 반 정도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경험을 잘 살리면 입학 원서가 달라보일 수 있을 것같아."
"엄마, 그냥 그렇게 기도했어요. 내 머리로는, 나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하면 가능한 건지 알 수도 없고 답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주세요. 그러면 모든 일이 다 가능한 걸 믿어요...이렇게요. 하나님은 뭐든지 다 하실 수 있잖아요."
아이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나의 믿음의 한계를 들킨 것같아 부끄러웠다.
나의 믿음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능해보이는 것, 내가 갖고 있는 계산기를 두드려보았을 때 될 것같은 일, 내 능력으로 이해가 되는 일만 믿고 기도하려고 하지 그렇지 않은 일은 아예 구해보려하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그게 바로 나의 믿음의 한계인가 보다.
엄마는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0.1%의 가능성을 딛고서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5월에 시작하는 로스쿨을 준비하느라고 학비 융자와 각종 부대절차로 머리도 아파하면서 또다시 조금씩 머리를 들고 올라오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게 미친 짓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딸 아이의 용감한 믿음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또 씻어내려본다.
우리 딸과 엄마가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늘도 우리 모녀를 지탱해주기를 기도한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릉
    '10.3.24 4:25 PM

    축하드립니다.^^
    따님이 강한 어머니를 봐와서 항상 열심히 잘 하실거예요.^^
    저도 좋은 엄마가 되도록 오늘도 열심히 동경미님 글을 다시 읽어볼랍니다.!!

  • 2. 다짐
    '10.3.24 4:43 PM

    모녀지간의 믿음과 강인함을 배워갑니다.
    축하드립니다. 제 마음도 이렇게 기쁜 데 동경미님 마음은 어떠실지?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3. 동경미
    '10.3.25 3:23 PM

    소릉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아이가 점점 자라가면서 자꾸만 저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 엄마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심히 찔립니다^^

    다짐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보니 더욱 믿음에 의지하네요.
    딸래미덕분에 요 며칠은 참 기쁘게 지나갔어요.

  • 4. sugar
    '10.3.26 1:18 PM

    청소년을 향한 신뢰와 품위,공정함과 존경...
    와! 정말 아름다운 말과 목표네요.
    축하드려요.
    간절함과 간구함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좋은 결과를 나오게 했네요.
    선영씨 인생에 아주 큰 도전이었으며 큰 수확이라 믿어요.
    그리고 동경미님은 모르시겠지만 마음속으로, 기도로 동경미님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 5. pinkberry
    '10.3.28 3:03 AM

    아이가 스탠포드에 들어가기를 원하는군여~~^^

  • 6. 동경미
    '10.3.28 8:06 AM

    sugar님,
    이번 기회를 지나면서 아이가 훌쩍 큰 것같아요^^
    저를 위해 기도로 응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말씀에 기운을 얻고 갑니다.
    늘 감사해요^^

    pinckberry님,
    ㅎㅎㅎ 아직은 잘 모르지만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 7. 수민맘
    '10.3.30 2:44 PM

    참..엄마는 아이들의 본이라고 하는말...^^*다시한번 머리속에 새겨보네요..^^*
    충만한 기도가 있는 집...항상 기도가 끊이지 않는한 두 모녀분이 원하시는 길...^^*많은 도전하셔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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