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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막내와 성적표

| 조회수 : 2,919 | 추천수 : 190
작성일 : 2010-03-10 09:32:34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보통 11월에 한번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부모 면담을 하고 나서 3월에는 하고 싶은 사람만 따로 면담을 하게 한다.
위로 언니들 셋을 기르면서는 언제나 11월에만 가서 면담을 하고 3월에는 그다지 할 필요를 못느꼈었는데, 막내는 지난 11월에 면담을 한 뒤에 충격 (^^)을 받아서 3월 면담에 신청을 했다.
11월에 면담을 했을 때에는 주의 산만에다가 주변 친구들과 왕수다에 그리고 수학이라면 담을 쌓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코가 석자는 빠졌었다.
그 날로 당장 구몬 수학에 등록을 하고 하기 싫다는 막내는 얼르고 달래도 모자라서 얼굴을 몇 번 붉혀서 간신히 보내기 시작했었다.
11월에 시작했으니 이제 넉 달 째인데 1월이 지나면서 아이가 나름 많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선 담임 선생님에게 원조를 구하고 거의 날마다 이메일로 아이의 상태를 묻고 체크를 했고, 일주일 이상 좋은 상태가 계속될 때에는 아빠와 함께 Baskin Robbins에 가서 아이스크림 데이트도 했다 (사춘기 언니들은 이제 다들 아빠와의 데이트를 졸업을 했던 터라서 아빠는 은근히 좋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선생님 복이 있었는지 선생님이 얼마나 자세하게 거의 날마다 귀찮은 기색 한 번 없이 보고를 해주었는지 이게 공립학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몬 수학에서 날마다 해야 하는 숙제도 처음 두 어달은 입이 열 발은 나온 채로 눈물 반 하소연 반으로 어떻게 해서든 면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더니 이제는 자포자기인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그날 그날의 양을 해서 내 책상에 가져다 놓는다.
지난 주에는 잠자리에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뛰어나와서 구몬을 하고 다시 들어가는 모습에 숨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결실인 걸까.
이제는 곱셈과 나눗셈, 그리고 분수와 방정식을 편안하게 풀어가고 있다고 선생님이 전해주었다.
옆 친구들과도 그렇게 떠들어서 늘 주의를 들었는데 이제는 수다파 친구들을 피해서(^^::) 다른 쪽으로 가서 앉는 지혜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한동안 선생님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조금만 주의가 산만해져도 바로 자기 옆으로 불러 앉히고 주의를 환기시켜주고 해주신 덕이 큰 것같다.
집에서도 물론 초긴장상태로 닥달을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같았으면 촌지네 선물이네 하면서 난리들을 했겠지만, 여긴 그렇지가 않으니 그저 몸으로 때우는 일로 선생님을 성심껏 도와드리면서 감사의 표시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 일정 중에 일주일에 두 어시간씩을 꼬박 막내네 반에 가서 수학 시험지와 읽기 시험지 채점, 받아쓰기 시험지 채점, 가정통신문 봉투 정리, 아동도서 판매 담당 등 정말 사무실 일보다 더 혼이 빠지게 일을 해주느라 정신없이 지나가는 2학기인 것같다.

남편과 함께 면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혹시 화가 나서 온 건 아닌가 해서 거실 한 쪽에서 눈만 꿈뻑이면서 눈치를 보는 막내가 측은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4학년이지만 벌써부터 중학교 준비라고 학교에서는 극성을 부리는 기색이다.
이 동네가 그다지 극성 학군은 아니라도 그래도 관심이 만만치 않은 지역인지라 동양 엄마들을 중심으로 교육 열풍이 항상 뜨거운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4학년이면 아직도 한참 아기인데 벌써부터 인생의 앞길을 신경쓰면서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이 엄마마음에는 안타깝기도 하다.
한껏 꾀를 부리면서 제 딴에도 스트레스가 생기는지 학교에서 자기의 꿈과 소망을 적으라고 했더니 좋은 대학을 가는 거라고 적어놓았다.
대학 입시 준비에 한창인 큰 언니와 작은 언니, 그리고 중학생인 셋째 언니 틈새에서 뭔가 아련하게나마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막내가 공연히 안쓰러워서 무릎에 앉히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려고 하는데 엉덩이가 유난히 두툼해서 물었다.
"브리트니 엉덩이가 왜 이리 푹신하지?"
"학부모 면담 결과가 안좋으면 내가 자진해서 맴매를 맞겠다고 하려고 엉덩이에 휴지를 잔뜩 넣었어요."
언니들과 아빠까지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고 넘어갔다.
요만큼도 야단은 안맞으려고 하고 어쩌다 불러앉혀 따끔하게 혼을 내려고 하면 어느 틈엔가 도망을 가버려서 찾기도 어렵게 골탕을 먹이던 어리광쟁이 막내가 제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각오를 하고 있었다니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결과가 안좋아도 이렇게 이쁜 브리트니를 어떻게 맴매를 해주겠어? 게다가 선생님이 그렇게 칭찬을 하는데 뭘 야단을 쳐? 엄마 아빤 칭찬 밖에 할 게 없는데!"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들어 양 볼에 뽀뽀를 해주는 막내의 입술이 마당에 한껏 피어나는 봄꽃들의 꽃잎보다 더 싱그럽기만 한 저녁이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시그널레드
    '10.3.10 8:22 PM

    ^___^ 언제나 동경미님의 글을 열심히 읽고있는 팬이랍니다. 정말 훌륭하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계신 거 같아 너무 부러워요. 많은 것을 배우고있어요. 감사합니다~

  • 2. 선희맘
    '10.3.11 12:11 PM

    참 재미있네요 ㅎㅎ

  • 3. 동경미
    '10.3.11 2:31 PM

    시그널레드님,
    감사합니다.
    제가 뭘 한다기보다는 이리저리 시행착오 속에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고 해야 맞을 것같아요^^
    아이가 많다보니 아이들에게 집착하거나 올인하는 것도 저절로 방지가 되고요.

    선희맘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4. 매일
    '10.3.13 11:51 PM

    오늘 글은 하하 웃고 말았어요

  • 5. sugar
    '10.3.14 4:52 PM

    잠자러 들어 갔다가 다시 나와서 구몬을 하고 들어 간다는 그 순진함이 정말 귀여워요.
    언니들이 좋은 예를 만들어 가니 때로는 그것이 조금은 과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잘 해낼거예요.

  • 6. 동경미
    '10.3.18 9:00 AM

    매일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ugar님,
    그래도 요새는 구몬에 많이 익숙해져서 야단 맞지 않아도 알아서 해놓아주니 수월해졌어요^^
    언니들 틈에서 살아남기(?)가 참 쉽지 않지요...!

  • 7. jinny
    '10.3.19 3:19 PM

    동경미님 글이 이리로 왔었군요.
    그동안 자게에 없어서 서운했었는데..
    또 뭉클했어요. 귀여운 막내 브리트니(!) 녀석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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