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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정직 훈련

| 조회수 : 2,096 | 추천수 : 163
작성일 : 2010-01-27 15:30:51
우리 집 둘째 켈리가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고 내밀었다.
아직 졸업식도 많이 남앗는데 무슨 상인가 했더니 '정직'상이라고 씌어있다.
영어 선생님이 추천을 하셨다고 하는데 상을 받는 이유를 읽어보니 마음이 흐믓해졌다.

* 자기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진실하다
* 친구들과 의견을 같이 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옳은 일을 한다
* 학업성적이 우수하다
* 진실되다
* 올바른 선택을 한다
상장의 뒷면에 선생님이 덧붙여 설명을 적으셨는데 읽어내려가면서 눈물이 핑 돌만큼이나 켈리가 자랑스러워졌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켈리를 정직상에 추천합니다.
켈리는 매우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입니다.  켈리가 항상 기쁜 얼굴로 친절하게 말을 하면서 우리 반에 있어 정말 좋습니다. 켈리는 학과 공부나 과제에 있어서 잘 모를 때에는 정직함과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제와 성적에 있어서도 자신이 염려하는 부분을 정직하게 터놓고 얘기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잘 보여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Ms. Imagawa"

아주 어려서부터 정직을 가르쳐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다 내가 바라는만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기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때로는 작은 거짓말로 혼줄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무언가 잘못 가르치고 있나 싶게 말썽을 부리기도 했었다.
특별히 작년 한 해 동안은 정말 사춘기의 절정인가 싶게 반발도 하고 말대꾸도 하면서 내 마음을 뒤흔들기도 했던 둘째이다.
뭐라 야단이라도 치려 하면 입이 댓발이나 이미 나와있고, 책상을 치워주다가 발견한 일기장에는 엄마에 대한 불만도 가득 적혀있기도 했다.
작년 봄에는 Lacrosse 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등록을 했는데 집에서는 아무 내색없이 열심히 연습을 하러 다니는 척을 하더니 두 달이 지나서 코치와 만났더니 첫 날 이후 한번도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하는 기가 막힌 말을 들었다.
아이를 불러 앉혀놓고 그럼 그동안 방과 후 두 시간을 무얼 하고 있다가 연습 다녀온 척을 하였는지를 물었더니 엄마가 알아챌까봐 몰래 교실 뒤에서 숨어서 책을 읽다가 엄마가 데리러 올 때쯤이면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는 라커룸쪽에서 걸어나왔다고 쭈삣거리면서 말을 했다.
세상에나...하늘이 노래지면서 아이에게도 화가 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자책이 올라왔다.
난 그동안 뭘 하느라고 아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는가.
아무 것도 모르고 연습 후에 데리고 오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준 것이 도대체 뭘 한 건가.
왜 진작에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Lacrosse 장비가 워낙 비쌌는데 한 번 갔다 오고 그만 둔다고 하면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한 학기를 그렇게 지나가려고 했다고 했다.
여름 방학이 올 때까지 친구 집에도 못가고 외출 전면 금지령을 내리고 났지만 엄마로서의 자괴감에 한동안 마음이 아팠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을 다시 돌이켜보아도 감이 잡히질 않았고 엄마의 눈을 속이느라고 나름대로 마음을 졸이면서  날마다 운동장비를 들고 집을 나섰을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졌다.
이럴 때면 어낌없이 올라오기 쉬운 것이 일하는 엄마로서의 자책과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들이다.
이 김에 아주 일을 그만 두고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과 재책 근무이니 그래도 여러가지로 편안한 근무환경이니 쉽게 그만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번갈아 나를 흔들었다.

그러던 둘째가 올해 8학년이 되면서 하늘과 땅차이로 변한다 싶더니 갑자기 어른이 된 것처럼 의젓해졌다.
어쩌다 한번씩은 "엄마 일하시느라고 힘드시죠? 이리 좀 앉아서 쉬다가 하세요" 하면서 제법 엄마를 챙겨주기도 하고 아빠와 농담을 하면서 깔깔거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춘기가 벌써 지나갔나 남편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런 힘든 시간이 지나간 뒤이기에 둘째가 가져온 정직상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슴앓이를 하는 동안 아이도 나름대로 훌쩍 자라면서 많은 걸 생각했나 보다.
엄마가 말로 가르쳐주는 주입식 교육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부딪쳐보는 것이 아니던가.
지난 봄 세게 지나가던 거짓말 사건이 아이에게 좋은 거름이 되었나 보다.  
아이를 기르면서 언제나 느끼는 진리는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엄마만 자라도 균형이 무너질 것이고 아이만 자라도 서로에게 버거운 콤비가 될 것이다.
아이가 한 걸음 갈 때에 엄마도 꼭같이 한 걸음을 가주어야 하고, 아이가 뒷걸음질할 때에는 엄마도 과감히 뒷걸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새롭게 깨닫곤 한다.
둘째가 거짓말을 할 때에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보다도 아이가 나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자기 말로는 자존심이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혼자서 마음을 졸일 때에 엄마에게 하루라도 빨리 털어놓고 그 짐에서 해방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계속 숨기고자 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두고 두고 나를 부족한 엄마로 밀어놓곤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마저도 나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추스리기가 더 힘겨웠던 건 아니었을까.

상장을 전해주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켈리는 정직한 사람이구나. 공부를 잘한 것도 기분이 좋지만 엄만 우리 켈리가 이렇게 선생님의 빽빽한 노트가 적힌 정직상을 받은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올 A 를 받은 성적표보다도 훨씬 자랑스러운 상장이야. 액자를 해서 잘보이는 곳에 걸어놓아야겠다. 정말 고마워!"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앙칼진마눌
    '10.1.28 10:38 PM

    정말 명예스러운 상이네요
    성품이나 인격은 돈주고도 살수 없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동경미님도 정직하신분일듯 ^^

  • 2. sugar
    '10.1.29 12:04 AM

    둘째가 어른인 저보다 훨씬 더 용기있고 강하네요.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자기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의견을 같이 하지 못하더라도 정직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저까지 어깨가 으쓱여져요.
    제 아이도 정말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런 자랑은 정말 그냥 하면 안돼요, 아시죠?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추스리기가 더 힘들었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찔려요. 아이의 상처보다 제 자신의 상처를 감싸기에 급급한 저도 어미라고 아이는 안기는데...
    아이가 뒤로 가면 저도 뒤로 가고 아이가 앞으로 가면 저도 한 발 내딛는다는 말을 새겨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 3. 동경미
    '10.1.30 3:49 PM

    앙칼진마눌님,
    아이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에 늘 뜨끔하는 엄마에요^^
    살아가면서 정직하게 사는 것처럼 너무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 건 없지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정직의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혼자만 정직하거나 혼자만 착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니 말이에요.
    그래도 손해를 보고 살더라도 정직하게 살자라고 가르치긴 하는데 얼마나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어요.

    sugar님,
    자랑이 되었네요^^;;;
    지난 해 동안 둘째 땜에 마음을 졸였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나니 좋은 날도 오네요.
    엄마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하지만...저는 저의 모습 속에서 문득 문득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것들이 많았더라구요.
    아이에게 온전히 포커스를 맞춰서 아이만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 4. 물푸레나무
    '10.1.31 4:53 PM

    읽는 내내 눈물나네요. 저도 늘 진실하게 살고자 하지만, 하루하루 진실하게 세상을 마주하는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제가 아직 미혼이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있어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잘알기에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 점점 결혼을 미루게 되네요.

    그러면서도 아이들보는게 정말 좋답니다. 참모순적이죠.
    아이들보면서 제가 가르치는 것보다도 많이 배우기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좋은지도.....
    정말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아이가 마음졸였을 시간, 또 어머님이 마음아파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되짚어봤던 시간이 모두에게 좋은 영양제가 되었나보네요.
    정말 마음 넉넉하게 행복하시고 기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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