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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잘 놀 줄 아는 아이

| 조회수 : 3,588 | 추천수 : 185
작성일 : 2009-12-04 01:11:22
미국을 떠나 한국에 갈 때 큰 아이부터 세째까지 육년 동안 정이 들대로 들은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국계 미국인이었던 할머니 교장선생님은 동양 사람들이 대체로 교육열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하루에 세시간씩 꼭 제 마음대로 놀게 해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들에게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유치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함께 있는 학교였는데, 학과 중간 중간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식사 후의 쉬는 시간이 되면 전교생이 모두 나와 노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모두 같은 놀이터에 나와서 함께 어우러져 비슷한 모습으로 논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자라난 내 생각에는 중학생 쯤 되면 놀이터에서 어린 초등학생들과 놀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학교의 아이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함께 어울리고 또 저희들끼리도 그네도 타고 뛰어다니면서 장난도 하면서 놀았다.

학교 놀이터 뿐만 아니라 동네 곳곳에 있는 공원에도 아침 나절부터 저녁까지 유아들부터 조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까지 놀러나온 아이들로 붐비게 마련이었다. 삼삼 오오 짝을 지어 각종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주변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오후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의 모습은 어느 곳을 가든지 찾아 볼 수 있었다.

정신의학이나 상담심리학에서도 아이들의 이러한 놀이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치료방법의 하나로 도입해 효과를 얻고 있다. 언어능력이 완성되고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상담자와 마주앉아 대화를 함으로써 자기의 문제를 들여다 볼 능력이 발달되어있지 않게 마련이다. 때문에 아이들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장난감 등을 이용해서 아이를 놀이로 유도하고 그 모습을 살펴보는 방법을 사용한다. 소꼽놀이, 전쟁놀이, 인형놀이, 그림그리기, 모래놀이 등은 오래전부터 그 효과가 입증된 치료요법이다. 방법과 도구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의 문제는 그 아이의 놀이 모습을 보면서 찾아낼 수 있고 그 속에서 얻은 진단을 통해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놀이치료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의 경우에도 어려서 충분히 놀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여러가지 대인관계 및 정서적 문제를 갖게 된다고 한다. '놀이'란 반드시 거창한 장난감이나 화려한 놀이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마음 편하게 자기가 하고싶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하루종일 뒹굴며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제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을 그리며 지내는 일도 좋은 놀이가 된다. 물론 전자 게임을 한다거나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려있는 것은 건강한 놀이라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모가 시간을 정해주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을 하게 유도해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한다거나 보드 게임 들의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부모의 통제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놀이도 가급적이면 지능을 계발하고 학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고 싶지만, 진정한 놀이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게 해 줄 때에 그 의미가 있다. 폭력적이거나 지나치게 비사회적인 것만 아니라면 엄마의 판단보다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놀이의 효과는 커질 수 있다. 또 혼자서 노는 것만 시킬 것이 아니라 자꾸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도 마시게 해주고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게 해주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아이들의 사회성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도 각종 학원에 다니느라 눈 한번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세 시간씩이나 놀게 내버려두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 잠깐 나가있을 때 큰 아이와 둘째를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2년을 다니게 했었는데 아마도 피아노 학원 외에 다니는 학원이 없어 늘 한가했던 아이들은 우리 동네에서 우리 아이들 밖에 없었던 것같았다.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놀으라고 하니까 우리 아이들 얘기가 놀러오라고 하려고 해도 다들 일정이 많아서 올 수 있는 아이들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나도 아연실색을 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도 같이 물이 들어서 방과 후 숙제를 마친 아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소리를 안하고 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두는 일이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몇 시간을 책을 놓고 노는 모습을 보면 왠지 이래서는 안될 것같고 뭔가 공부와 관련된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만 내심 안심이 되었던 것은 미국에서 십여년을 보낸 나도 남과 다름이 없는 점이었다.

언젠가 여름방학이 되어 아이들더러 제각각 방학 동안의 생활계획표를 만들어오라고 했더니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의 계획표에는 잠자는 시간이 12시간, 쉬는 시간이 하루에 5시간, 제가 좋아하는 독서시간이 3시간, 방학숙제하는 시간은 하루에 겨우 1시간 뿐인 너뮤나 정작한 계획표를 짜서 서슴없이 내 앞에 내놓았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방학 때마다 동그란 원으로 시계를 그리고 거창하게 계획을 짜서 그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비현실적인 계획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곤 했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계획표와는 정반대의 계획표였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토록 자유분방한 계획표를 거리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어쩌면 나의 강박적 어린시절보다는 훨씬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에는 아무래도 한국에서보다는 느슨한 일과를 보냈던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중고등학생이라서 어느덧 마냥 놀기에는 공부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시기가 되어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일주일에 사나흘을 새벽까지 앉아있는 큰 아이의 방문을 지나면서 얼마나 자주 후회를 하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하게 놀려주지 못하고 아이가 책을 내려놓늘 때마다 얼마나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던지 그 때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한동안 새로 시작한 눈화장에 재미를 붙이는 듯 싶더니 요새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해 보이는 눈에 머리도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나가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에 세 시간이 아니라 다섯 시간도 놀려줄 걸 그랬나 보라는 늦은 후회를 발판으로 밑의 아이들에게는 좀 더 너그러워지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지난 주부터 Thanksgiving Holidays 라서 지난 목요일부터 초중고등학교가 휴교를 했다. 연휴를 지나면서 4학년 막내를 붙들고 이제 1학기가 거의 다 지나가는데 12월이 다 가기 전에 나눗셈을 완전히 다 마스터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학습계획을 짜서 가져와보라고 하니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을 1시간으로 해서 가져왔다. 가뜩이나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인지라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슬그머니 화도 나서 이렇게 해서 어떻게 부족한 것을 메꿀 수가 있냐고 했더니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되고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잠자기 전까지 6시간 밖에 없는데 숙제 1시간에 독서 1시간 그리고 따로 공부하는 시간 1시간이면 되지 공부 시간을 더 늘린다면 자기의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대번에 불평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많이 놀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기는 어린이 (child)이기 때문이라고 해서 야단을 치다가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고 애를 써야 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어린이는 많이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하랴. 잘 놀아야 공부도 잘한다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는 막내에게 도저히 말로는 이길 도리가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수많은 아동학자들의 말대로, 또 우리집 막내의 말대로 잘 놀 줄 아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 그리고 인생도 폭넓게 살아간다. 어려서 충분히 놀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일수록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된 놀이 문화에 휩쓸리거나 여가 선용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수학은 싫어하지만 노는 것은 둘째 가라면 서럽게 잘 놀 줄 아는 우리집 막내가 놀이를 마스터하는 속도로 수학도 언젠가는 잘 익힐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레이크 뷰
    '09.12.4 2:56 AM

    제 주위에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을 봐도 공부 잘하는 만큼 노는 것도 잘하더라구요.
    (저는 노는건 잘하는데 공부는 하기 싫어죽겠습니다. 지금도 공부하다가 하기 싫어서 이러고 있네요.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진도 좀 많이 나가야 하는데 말이에요. ㅋㅋㅋ)
    킨더 다니는 아들녀석, 맘같아선 매일 적어도 한시간씩 놀이터에서 놀리고 싶은데,
    학교 놀이터 아니면 놀 곳도 마땅치 않고, 날은 추워지고.....
    어떻게 놀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 있으면 혼자 그림은 수십장도 더 그리고, 엄마가 여기저기 숨겨놓은 종이랑 박스들 다 끄집어 내어 이것저것 뚝딱뚝딱 순식간에 만들면, 어느새 집은 난장판이 됩니다.
    이런것도 좋지만, 남자아이라는 저의 강박관념 때문에 밖에서 몸으로 뛰어놀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네요.
    경미님, 혹시 저에게 좋은 아이디어 좀 주실 수 없나요??

    참, 저도 아이가 연산책 안하려고 해서 계속 싸우고(?) 있는 중이에요.

  • 2. sugar
    '09.12.4 8:34 AM

    아이가 처음 nursery에 가고 6개월이 지난 뒤 학부모 면담이 있었어요.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아이가 그동안 유치원에서 한 것들을 모아 놓은 파일을 주고 부모들이 그것을 훑어 보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저의 아이의 파일은 그야말로 깨끗했어요.
    선생님과 마주 앉았는데 선생님이 저... 하고 주저하시길래 '제가 아이가 6개월동안 물 놀이와 모래 놀이만 했지요?' 하며 싱긋 웃었더니 선생님도 네... 하며 방긋 웃더라구요.
    항상 옷 소매가 젖어 있고 접어 올린 바지 단에는 모래가 떨어졌었거든요.
    6살이 된 지금도 따뜻한 욕조에 앉아 주전자 하나와 장난감 배, 스폰지를 가지고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쪼글거릴때까지 노는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요.
    태어나서 앉기, 기기, 이유식, 걷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평균보다 느린 아이였던지라 욕심의 싹이 절로 잘라지고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를 보면 행복했습니다만
    어제 'coffee morning'에 가서 선생님과 이야기 하던 중 '아이 공부를 하루에 몇 시간을 시켜야 할까요?' 라고 물었더니 1-2초간의 어색한 침묵뒤에 '책 읽기등으로 15분 정도요'라고 답하시네요. 거기에서 멈추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책 읽기 이외에 공부는 얼마나 시켜야 할까요?'라고 또 물었더니 그거면 된거라고 하는데 집에 와 생각하니 그 이외에 다른 질문도 그와 별다르지 않는 극성 엄마의 그것이었어요. 얼굴이 화끈거려요.
    저도 모르는 사이 슬금슬금 과욕이 자라고 있었나 봐요.
    동경미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요.
    감사합니다.

  • 3. 하트
    '09.12.4 9:55 AM

    항상 동경미님의 글 잘 읽고있어요.
    2살,5살 아이를 키우고있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항상 아이들한테 잘해야지 각오도 새롭게 하구요.

    우리 아이들도 실컷 놀게 하고싶어요~.
    커서 행복했던 유년생활이 기억에 남고 삶의 원동력이 될수있도록 말이에요..

    동경미님 앞으로도 글 많이 올려주세요.

  • 4. 동경미
    '09.12.4 3:17 PM

    레이크 뷰님,
    저도 오랜 미국 생활에서 만나는 성공한 사람들마다의 공통점이 잘 놀 줄 아는 사람들이란 걸 알았어요.
    한국에서 전형적인 입시지옥을 겪고 자란 저로서는 늘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지요.
    저도 정말 노는 걸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더라구요.

    아이들 놀리는 일, 참 쉽지 않죠.
    그런데 꼭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않아도 아이가 즐거워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놀이라면 괜찮다고 봅니다.
    물론 언제나 집안에서만 놀고 한번도 몸을 안 움직인다면 모를까 추운 겨울에는 당분간은 집안에서 하고 싶은 것, 창의력을 발휘하는 놀이라면 얼마든지 하게 해주시는 것도 좋은 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실내 놀이터 같은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같고요.
    연산 아주 싫어하는 저희 집 막내 이번 주부터 드디어 구몬 하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반복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서 제가 주저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따라하네요.
    킨더라면 연산은 아직은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흥미를 잃어요.

    Sugar님,
    아이가 아직 2학년이라고 하셨지요?
    책 열심히 읽고 학교 숙제 열심히 하는 정도면 사실 충분한 나이에요^^
    미국같은 경우에는 3학년부터 공부 내용이 한번 점프를 하기 때문에 3학년부터는 조금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 아이들처럼 하루에 몇 시간씩 시켜야 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지금 4학년인 저희 집 막내의 경우 학교 숙제가 보통 하루 1시간 정도 할 양이고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문제집 좀 풀고 저녁 먹고 1시간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일고 잠자리에 듭니다.
    나머지 시간은 다 노는 시간이고요^^
    저학년 때 이것 저것 다 놀아볼 수 있게 시키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하트님,
    많이 놀려주세요. 그게 재산이랍니다^^
    충분히 놀아본 아이들이 창의력도 강하고 성격도 원만합니다.

  • 5. 딸기댁
    '09.12.7 11:25 AM

    혼자 놀아도 될까요?
    놀이터에 나가봐도 아이들이 잘 없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고 지금은 유치원생이라서 종일반하면서 아이가 충분히 놀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후가 고민입니다.
    방과 후 시간들이요......외동이라서 같이 놀 동생이니 언니오빠도 없고
    놀이터에 아이들도 없고
    초등 입학까지 1년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방과 후 시간들이 걱정이랍니다.
    학원을 보내자니 아이도 지치고, 안보내자니 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와 둘이만 있기도 그렇고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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