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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빈 의자

| 조회수 : 2,174 | 추천수 : 146
작성일 : 2009-12-02 06:46:18
심리 치료의 한가지 방법으로 알려진 'Empty Chair(빈 의자)' 요법은 말 그대로 빈 의자를 마주보고 앉아 그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고 가정하여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빈 의자에 앉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나에게 변명도 하면서 상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몇 번의 순서가 돌아가게 되는 방법이다.

대개의 경우 자신과 갈등이 심했던 사람을 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대상으로 부모를 정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다고 한다. 부모 중 한사람을 대상으로 정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부모와의 갈등에 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빈 의자에 앉아 자신에게 한때 상처를 주었던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그 과정에서 오랜동안 치료의 범주에 들어서지 못했던 상처가 드러나게 된다는 원리이다. 이 요법은 실제로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치료방법이다.

내가 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에 이 요법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한사람씩 돌아가며 순서를 정해 한가운에에 놓여진 빈 의자 앞에 앉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순서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나 이성적으로 학업에 열중하던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 앞에 놓여진 빈 의자 앞에서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하는 것을 보며 참 많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 경우에는 비록 문화가 다른 수많은 다른 학생들 앞이라 부끄럽기도 했지만 빈 의자에 친정엄마가 앉아 계시다고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하찮은 어린 시절의 불만에 관해 얘기를 시작했는데 얘기가 점점 발전해서 심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흥미롭게 듣고 있던 교수님은 나의 언어장벽을 고려해서인지 그 부분부터는 모국어로 진행해도 좋겠다고 허락해 주었고 나는 그 날 일생동안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을 흘렸다.

엄마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가 엄마의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니 한없이 가슴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 나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자식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자식을 위로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서럽기도 하고 눈물이 솟구쳤다. 내 아이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을 하면 내 맘이 어떨까 라는 생각까지 합쳐지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엄마 편에서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누구나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때로는 알면서도 때로는 몰라서 주는 수많은 상처들 속에서 아이들은 어떤 것을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 어떤 것을 잠재 의식 속에 꽁꽁 묻어 둘지를 정하며 자라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빈 의자에 엄마를 앉혀 놓고 한 맺힌 얘기를 펼쳐 놓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것이 숨겨진 분노가 되어 애꿎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에 대한 불만을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에 그래서 그것이 분노가 되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동시에 자라나게 된다. 분노와 죄책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죄책감이 쌓이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도 함께 자란다. 잠재의식 속에 묻혀있던 죄책감과 분노는 대부분의 경우 본래의 대상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화살이 되어 꽂히게 되고 그때마다 그 감정들은 나날이 가중되기만 한다.

아이들과 교환일기를 쓰며 교환하는 사이 사이에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가 엄마 아빠에게 불만이 있다면 한달에 한번 정도라도 종이에 일일히 나열해 적어 오라고 한다. 아이들이 적어오는 불만이라고 해봐야 놀이 공원에 좀 더 자주 가고 싶다, 스케이트장에 더 자주 가자, 스키장에 가고 싶다, 외식을 더 자주 하고 싶다, 옷을 더 많이 사달라, 장난감을 더 사달라 등이지만 혹시라도 그것을 읽으면서 언짢아질 항목이 있을지라도 일체 내색을 하지 않는다. '동의'를 해줄 수는 없어도 '공감'을 표시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서운할 수도 있겠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 라고 일단은 아이들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필요하다면 사과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덧붙여야 할 것은 그 모든 불만과 부족함 속에도 불고하고 엄마와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엄마 아빠는 인간이기에 부모로서의 모든 것을 언제나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때가 사실은 더 많을 거고 그럴 때에 너는 엄마 아빠가 더 좋은 부모가 되게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고백한다면 더욱 좋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용기있는 일이다. 나의 약함을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하고 인격이 성숙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부모의 모습을 잘 보면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자라서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받는다 해도 자존심에 휩쓸려 무조건 부인한다거나 자신을 지적한 사람을 원수로 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능력이 생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하늘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모가 흔들릴 때에는 하늘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하늘이 흔들릴 때에 아이들은 갈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늘이 흔들린다는 것은 부모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고 내 아이가 나로 인해 상처받고 있음을 보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부족하다.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부모는 이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어떻게 감당해내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아이마다 다르다. 같은 부모라도 각각의 자식들의 상처의 부위와 깊이가 다르고 극복하는 방법도 다르게 마련이다. 결국 상처를 하나도 안주려고 애를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부지불식 간에 주는 상처들이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진심어린 부모의 사과만큼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그 속에서 새로운 신뢰가 싹트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나 불만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강한 환경도 필수 조건이다. 아이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고까워지는 부모라면 그것은 마음 속에 내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앉아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허심탄회하게 거리낌없이 불만을 얘기할 수 있고 그것을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있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의 하늘은 무너질 일이 없다. 내 나이만큼 자라난 내 아이들이 어디에선가 나처럼 빈 의자를 앞에 두고 엄마에게 할 말들 때문에 대성통곡을 할 일들을 조금이라도 덜 만들어 보려고 오늘도 나는 내 아이들의 빈 의자가 되어주려고 안간힘을 써 본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ugar
    '09.12.2 8:51 AM

    빈 의자 요법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요.
    그러니까 일단 상대를 설정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다음에 이번에는 그 의자에 앉아 직접 상대가 되어 대답을 하는 건가요?
    만일 길어지게 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다 안나지 않을까 싶어서요.
    혼자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가요?
    아니면 여러사람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가요?

    저도 오늘은 하루종일 '내 안의 어린 아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졌었거든요. 데이빗, 시맨즈의 책을 읽다가요.
    아마, 시험봐서 결혼이나 아기 낳는 거였으면 저는 아직까지 통과못했을 거예요.ㅠㅠ

  • 2. 동경미
    '09.12.2 9:12 AM

    Sugar님,
    빈의자 요법은 내 앞에 빈 의자를 하나 놓고 내가 정한 상대가 거기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우선 할 말을 하고 순서를 바꿔서 이번에는 내가 그 사람이 되어 나에게 얘기를 하는 거에요.
    질문이 있는 경우라면 너무 길어지면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순서를 자꾸 바꿀 수도 있겠지요.
    안전한 환경이라면 여럿이 해도 좋겠지만 그럴 때에는 전문적인 인도자가 있는 편이 안전합니다. 왜 안전이라는 얘길 쓰냐 하면 떄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정들이 갑자기 쏟아져나오게 될 수도 있고 그 경우 수숩해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인도자이면 좋기 때문이에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오래 전에 어린 시절의 저와 대화를 해본 일이 있었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엄마 시험...통과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 3. 안개꽃
    '09.12.2 9:36 AM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깨닫고 갑니다.

  • 4. 토요
    '09.12.4 1:26 AM

    오늘 처음 동경미님의 글을 보고는 눈을 번쩍이며 읽고 있습니다.감사하는 마음 전합니다.

  • 5. 햇님한나
    '09.12.4 2:26 AM

    저도 오늘 동경미님 글을 처음 읽고 마음이 뭐랄까...마음이 열리는듯한 느낌이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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