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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착각의 대물림

| 조회수 : 2,465 | 추천수 : 184
작성일 : 2009-11-30 14:15:26
얼마 전 사촌 시동생의 결혼식에서 모인 친척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우는 이야기가 나왔다. 햄스터는 아무리 새끼를 낳아도 자기 새끼를 그다지 살뜰하게 보살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외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조카들이 키우던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마리가 뒷다리를 제대로 못쓰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어미가 보통 한달 정도 젖을 먹이는데 젖을 떼고나니까 새끼들을 일체 더 이상 보살펴주는 일이 없더란다. 그런데 뒷다리가 불편해 늘 엎드려있고 움직이지 못하는 새끼에게는 어미가 해바라기 씨를 물어다가 껍질을 까서 입에 닿게 밀어놓아 주기도 하고 하루종일 곁에서 안절부절하더라고 한다. 자립할 능력이 될 때까지만 보살펴주고 어느 정도 자라면 새끼와도 먹이를 가지고 싸우는 동물의 본능에 비추어보면 의아한 일이었다.

미물이지만 아마도 어미가 보기에도 뒷다리를 못쓰는 아이는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어미가 가져다 준 먹이를 다른 새끼들이 뺏으려고 하면 저쪽에 있다가도 달려와서 저지하곤 했다고 한다. 젖을 떼고 몇 달이 지나도 변함없이 다리가 불편한 새끼 곁에서 살뜰하게 보살피더라는 얘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햄스터가 아픈 새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얼핏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느 동물이건 모성애에 관한 이야기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실험용 쥐의 경우 새끼 쥐들 주위에 약한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놓아두면 아빠 쥐는 한번 감전되면 두번 다시 그 주위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미 쥐는 아무리 감전이 되어도 수십번 씩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나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미 쥐가 찌릿하고 감전이 되면서도 안간힘을 쓰고 새끼들에게 가는 모습은 눈물이 나게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동물이나 사람이나 엄마의 사랑은 모든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게 마련이고 시공의 차이도 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엄마라는 역할을 맡으면 누구나 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변질되지 않는 모성애 속에도 사실은 숨겨진 모순들이 많이 있다. 엄마 자신은 모성애라고 생각하는 하나 하나를 분석해보면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엄마의 이기심과 연관이 되는지 모른다. 네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이것이 아이를 위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마음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애써본다. 대부분의 경우에 안타깝게도 수양이 부족한 나는 아이보다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성적에 관심을 가지는 마음도 오직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만 있다기 보다는 아이가 성적이 낮아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내가 얼마나 힘들 것인지를 미리 걱정하는 잠재의식 속의 욕심이 더 크다는 걸 느꼈다. 비단 공부 뿐이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 하게 되는 그 희생이 늘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때로는 벗어버리고 싶은 무게로 나를 누르기도 하는 것을 느끼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 자질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어김없이 좌절감이 들었다.  

어느 강연회에선가  연사가 '상처가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부모보다 더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자라난다'고 했다. 많은 경우에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것이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보호적 사고라고나 할까. 나자신도 험난하게 살았는데 내 자식들까지도 나보다 못하게 살고 있다고 하면 그 사실을 감당하기가 어려우니까 내 자식들은 나보다 낫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 부모의 본능이라고 한다. 혹은 아이의 물리적인 환경은 물론 예전에 부모가 자라나던 환경보다 더 나은 환경이지만 아이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양은 훨씬 더 늘어나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건지도 모른다. 물질적으로 풍부하다고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누구나 할머니의 할머니 대부터 줄곧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얘기들 중에는 '너희들이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거지.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에는...' 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변하고 문명이 발달하니 겉으로 보기에야 자식들이 사는 세상은 엄마가 자라던 세상보다 나아졌고, 막연하게나마 엄마보다 좋은 세상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자랄 때 지녔던 걱정이나 고민은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싶어진다.

나도 어렸을 때 친정어머니가가 '너는 좋은 세상에 사는 거란다.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이라고 얘기가 시작되면 그렇게도 듣기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도 요즘 아이들이 이것 저것 불평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친정어머니의 그것과 토시하나 안 틀리는 얘기를 하다가 아차 하고 혀를 깨무는 것을 보면 이게 대물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자라날 때보다도 더 많은 걱정과 근심을 안고 자라나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내가 자라날 때만 해도 동네 길목에서 삼삼 오오 아이들끼리만 모여 놀다가 저녁에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무렵에야 집에 돌아가곤 했지만 큰 사고가 없었다. 아이들끼리만 집에 있어도 크게 사고를 낼 물건도 많지 않았다. TV 가 있는 집도 많지 않았지만 있다 해도 낮 시간에는 별 프로그램이 없었으니 TV 좀 그만 보라고 야단 칠 일도 없었다. 요즘처럼 인터넷도 없었으니 성인용 음란물들이 범람하는 것에 아이들이 노출될까 걱정할 일도 없었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물론 그 때에도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모든 엄마들이 다 과열된 교육열에 희생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요즘보다는 그래도 공부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조금은 더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면 괴변일까.

세상이 변한 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힘겨운 삶으로 가는 짐이 커진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 힘겨운 삶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짐을 얹어주는 요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너는 나보다는 낫게 살고 있는 게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자신의 어린 시절과 미처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들이고 자식을 통해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이루려는 보상심리가 강하다고 한다. 결국 마음의 상처가 많은 부모가 자신의 눈에 잘못 씌워진 필터를 벗겨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자신의 경험 얘기를 해서 같이 공감했던 일이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결국 4년제 대학을 가지 못했던 자신의 자격지심에 사실 아이들 공부에 유난스러울만큼 예민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대입을 앞둔 큰 아들과의 오랜 갈등을 겪으면서 입버릇처럼 말하던 얘기가 너는 엄마 자랄 때에 비하면 훨씬 좋은 환경인데 왜 이렇게 공부를 안하느냐 였다고 한다. 실제로 가난한 환경에 그 마음에서 극복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래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비우기로 한 친구가 얼마나 대단해보였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엄마는 비록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나 너희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너무 마음에 부담을 갖고 공부하지 말라고 했더니 큰 아들의 얼굴이 그 뒤부터 눈에 띄게 환해지더라고 했다. 실제로 본인도 늘 자신의 학벌에 애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 문제가 해결되는 듯하고 그동안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던 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같이 잇던 친구들이 공감을 했다.

아이들 공부로 인해 아이들과 마찰이 잦은 엄마들의 대부분은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공부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이 이루어져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공부를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엄마들이 미국에 오면 자신들이 고3 시절에 공부를 하던 것에 비하면 아이들이 믿을 수 없을만큼 공부를 안한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밤 12시까지 자율학습과 각종 학원에 시달리던 엄마들의 고3 시절에 비하면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비교적 느슨한 일정인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편안하고 자유롭고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공급되는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안하냐는 질문은 그야말로 우문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부가 환경과 여건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들은 종종 잊는다. 공부하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선생님과 환경이 있다 해도 그림의 떡이 될 뿐이다.

자녀교육에서의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갈수록 희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부모의 무지와 무경험, 그리고 이기심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의 성인으로 자라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잘못 교육받았다거나 잘못된 체계 내에서 자라왔다는 것을 항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마련이다. 대체로 이런 자각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 보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뒤늦은 자각 속에서 혼란을 겪어가면서 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억지스러운 보상심리가 자리잡게 되고 부모에게 겪었던 것보다 더한 강도의 시행착오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는 잘못된 육아가 시작된다. 이러한 슬픈 대물림의 역사가 거듭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아이들의 탈선이나 비행 등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가 되어 네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언제나 새록새록 느끼는 것은 엄마라는 자리가 쉽지 않은 자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쉽사리 사표를 던질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덕목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는 것만 같다. 한동안 잠잠히 아이들이 잘 지내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고서 그래도 썩 잘하는 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인가 보다 하고 있으면 네 아이 중 하나가 꼭 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엄마로서의 나의 점수는 어쩌면 아이들의 학교 성적에도 못미치는 저조한 성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때로는 나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의 딸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간다는 외고에 들어가서 해외 유학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화를 했었다. 명문대가 목표인 아이라 밤낮 없이 코피를 쏟아가면서 공부를 한다는데 그래도 주변의 아이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많이 자고 공부도 너무 안하는 것같다고 하소연을 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동갑내기인 우리 집 큰 아이를 보니 불연듯 걱정이 생겨났다. 친구가 답답해하는 딸보다도 더 자고 더 쉬면서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어떡하나 하는 염려도 슬며시 올라왔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한다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불렀는데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의 잔소리 대사가 그대로 나오려는 나자신을 발견하고 혀를 물고 참았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소신껏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가 고3때에는...'라는 말로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말을 참으니 다음 말은 "엄마가 어릴 때에 비하면 지금은..."이라는 말이 꼭 찬정엄마와 관계가 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몇 번을 꿀꺽하고 나의 주요 어휘들을 삼키고 나서야 원래의 요지가 나오는 것을 보니 나도 갈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살아가고 아이들도 기른다 하니 결국은 꾸준한 반성과 학습 외에는 나의 뿌리깊은 착각을 버릴 방법이 없다는 마음이다. 내가 고쳐야 우리 아이들은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서 현실을 직시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ugar
    '09.11.30 6:58 PM

    제 아이도 아침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눈꼬리와 어깨를 축 늘어 뜨리더니만 50분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40분에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들어 가더라구요.
    3분을 기다리다 약간은 날이 선 목소리로 '다 했니?'라고 물어 보니 여전히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안쓰럽기도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 아직 유치원에 다닐 아이가 이곳에서는 2학년이라 호불호와 상관없이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가...
    아이 교복 입는 것을 도와주며 '그래, 엄마라도 가고 싶지 않겠다. 비는 와서 날은 어두컴컴하지,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놀지도 못하겠지, 오늘이 토요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니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나는 매일 매일이 금요일이었으면 좋겠어'하며 서둘러서 겉옷을 챙겨 있습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동감'이었나 봅니다.

    엄마라는 위치가 참 어렵습니다.
    어떤때는 당겨야 하고 어떤때는 풀어줘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하거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Thanksgiving Day 는 잘 보내셨는지요

  • 2. 동경미
    '09.12.2 9:08 AM

    Sugar님,
    휴가 동안 뭐가 그리 바쁜지 평상 시보다 더 분주했네요^^

    엄마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아이에게 힘이 되는 건 없지요.
    저도 둘째 아이까지만 해도 아침에 1분만 집에서 늦게 나가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조바심을 냈는데 막내에 오니까 요새는 천연덕스럽게 "너무 아프면 하루 쉬고 엄마랑 집에서 놀자!"합니다.
    물론 아이는 당연히 싫다고 하고 학교에 가지만요^^
    공감해주는 것과 역심리 (Reverse Psychology)를 잘 이용해야 아이와의 갈등이 조금은 줄어드나 봅니다.
    엄마 노릇 세대를 막론하고 힘들지요...

  • 3. 주평안
    '09.12.3 7:34 PM

    동경미님 .. 몇달전부터 올리신 글들 반갑게 보고 있어요.. 많은 깨달음과 감동으로요.. 여기는 홍콩입니다.. 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위안과 가르침을 받고 있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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