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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역할모델

| 조회수 : 1,944 | 추천수 : 175
작성일 : 2009-11-16 11:37:29
어느 날 우리 막내와 아이의 친구들을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는 차가 빨리 가라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댔다. 어이가 없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한껏 언짢아진 마음으로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 있던 아이의 친구가 나의 마음을 읽는 듯이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사람이 안 건너면 빨간 불이라도 그냥 가요. 바쁠 때는 그래도 괜찮은 거래요."
그 아이의 눈에는 자신의 부모와 다르게 운전을 하는 내가 이상하게만 보였던 것이다.
나중에 파란 불이 되어 차를 출발시키니까뒷 차의 운전자가 차선을 바꾸기까지 하며 내 옆 차선으로 와서 내 얼굴을 쳐다 보면서 불쾌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하도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 아이가 내게 훈계를 했다.
"엄마, 어제 엄마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왜 저사람한테 나쁜 말을 하세요?"
얼마나 계면쩍었는지 변명도 못하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게 되는 문제 중 하나가 아이들 앞에 그대로 여과없이 보여지는 부모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노력의 여부에도 상관없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내용과 상반되는 행동들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야말로 몰래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처럼 당혹스러워진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옛말처럼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하는데 때때로 우리는 본이 되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일인지를 실감하며 산다.

"엄마, 집에 계시면서 왜 안 계시다고 하라고 하세요?"
"아까 쇼핑 갔다왔는데 아빠에게는 왜 아니라고 하세요?"
"안 바쁘면서 옆집 아줌마에게 왜 바쁘다고 하세요?"
"난 9살인데 왜 7살이라고 하세요?"
"왜 경찰차만 보면 속도를 줄이세요?"
안 보는 것같으면서도 아이들의 눈은 사실 몰래 카메라보다 더 깊숙히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다. 차라리 말로 물어올 때에는 합리화라도 하지만 스펀지처럼 말없이 우리의 삶을 흡수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뒷통수가 가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정 밖의 다른 어른들을 보기 훨씬 이전에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평소의 말과 달리 순식간에 'B급 어른'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목격한다. 행동과 상관없는 어른들만의 논리로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할 때 아이들은 어른들의 양면적인 모습에 혼란스러워진다. 아이들에게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부모들이 더 먼저 하고 있는지...원칙이 있긴 하지만 그 원칙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낙오자의 인생이라는 어른들만의 합리화를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상담의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아동상담의 1차적 작업은 부모상담부터라는 기본원칙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혹자는 유전적 요소라고도 했지만 유전인자에 의한 유전이라기 보다는 부모들 고유의 생활방식과 습관에서 학습된 대물림이 더 옳다고 보는 추세이다. 부모들의 문제만 반영된다면 그래도 성공적이지만 꼭같은 문제가 몇 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할 때에는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부정적인 요소들은 결코 한 두 세대만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부부 사이에 관해 말할 때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올바른 역할모델이 되어주지 못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서의 역할의 혼란으로 갈등한다. 아무리 가정 외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아도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의 모습을 닮게 마련이다.아버지와 닮은 남편이 되고 어머니를 닮은 아내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 가정의 남편으로서의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남자 아이들에게는 결혼 후 남편의 역할이 수월하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리 달라지고 싶어도 마음 속에 저장된 데이터의 부재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여자 아이들은 남편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느낀다. 마땅히 구해야 하는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겠지만, 정작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버지와 유사한 문제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꼭같은 문제를 끌어안고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런 유형의 사람에게 익숙함을 느끼고 더불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혹은 겉으로는 부모와 다르게 보이지만 내면은 부모와 동일한 문제를 지닌 사람들을 만자게 되곤 한다.

불화가 심한 가정의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남자 아이들은 양 갈래로 갈라진다. 어머니를 측은히 여기며 비슷한 유형을 만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불협화음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고, 절대로 어머니와 같은 여자는 만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유형을 만나게 되는 경우이다. 어떤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건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불화가 잦은 가정의 여자 아이들은 남편을 신뢰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존중하고 연합을 이루는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하는 일이 그야말로 큰 도전이 된다.

모두가 부모들이, 아니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들이 올바른 역할모델을 제시해주지 못했기에 대를 이어 계속되는 문제들이다.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 들이 모두 톱니바퀴처럼 맛물려서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대로 정지되고 마는 것이 가정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점치려면 그 나라의 가정을 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수많은 가정들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는 가운데 몸살을 앓다가 허무하게 깨져가는 요즈음, 한국의 이혼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아프게만 다가온다. 아버지다운 아버지, 어머니다운 어머니, 남편다운 남편, 아내다운 아내가 있어야만 아이다운 아이로 자라날 수 있다. 네 가지 중 한가지만 결핍이 되어도 아무런 내색은 하지 못하면서 아이는 아이답게 자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올바른 역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 아이는 때때로 부족한 역할을 억지로 떠맡게 되기도 한다. 아이가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또 남편이 되거나 아내가 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조숙하고 어른스럽다고 칭찬까지 들으면서 아이는 더욱 짐을 지게 되고 그러면서 아이가 될 기회를 영영 잃게 된다.

날마다 신문 한쪽에는 깨어지는 수많은 가정에 관한 기사가 있다.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체되는 가정들을 대할 때마다 부모들이 벗어던지는 역할의 무게에 눌려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서게 된다.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가정의 화목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성격도 원만하고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성실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미운 남편, 미운 아내가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편과, 혹은 아내와의 사이를 좁혀본다면 우리의 아이들의 삶에 성공과 행복의 요소를 더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좋은 학원 한 군데를 더 보내는 것보다 아이를 더 사랑해주는 일은 남편과 아내가 건강한 웃음으로 가정을 채우는 일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ugar
    '09.11.17 8:46 AM

    아이는 부모의 입을 보며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뒷 모습을 보며 자란다고 하는 글을 읽으며 저의 뒷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보다도 제가 감추려 하는 부분에 아이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학습되는 것을 보니 한 대를 먼저 산 저희의 모습이 어때야 할까 다시 한번 반추하게 됩니다.
    성숙한 개인, 성숙한 부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2. 델몬트
    '09.11.17 10:26 AM

    아이가 하는 말을 보고 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엄마가 주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이지.....
    제 모습이 동경미님 모습이구나를 발견했답니다.
    우리 엄마들 정말 바뀌어야 해요.
    날마다 제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시네요.
    좋은글 감사해요.

  • 3. 동경미
    '09.11.17 1:17 PM

    sugar님,
    저도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아이들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까지 모두 다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것이 때때로 두렵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러나 세상의 그 어느 부모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보려고요^^
    좋은 모습만을 보여줄 수는 없다 해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큰 선물이다 싶어요.

    델몬트님,
    아이들은 참 투명해서 무엇이든지 보는 대로 다 나오지요^^
    부모로서의 행동 기준은 내 아이가 이렇게 살면 좋겠다 하는 것을 뵤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아이에게 가르치는 기준과 내 삶의 갭이 크면 클수록 아이도 부모도 힘이 드니 말이에요.
    엄마가 바뀌면 가정이 다 바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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