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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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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듣고 싶은 얘기

| 조회수 : 1,844 | 추천수 : 121
작성일 : 2009-11-10 02:17:59
며칠 전 막내 학교에서 정기 학부모 면담이 있어서 갔더니 선생님이 막내가 적어서 냈다는 자기 인생의 목표를 보여주셨다. 몇 가지 질문들이 있었는데,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막내는 대학에 꼭 가는 것이라고 적었고, 가고 싶은 대학이 명문대라고 괄호 안에 덧붙였다. 하루 중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는 곱셈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곱셈을 잘 모르겠는 것이라고 적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곱셈 공부라고 적었다. 너무나도 엉뚱하기만 한 막내인 줄은 알지만 답들이 하도 우스워서 선생님과 마주보고 웃었다. 아직 4학년인데 사각모를 쓴 그림까지 곁들여서 이렇게 대학가는 게 목표라고 적은 애는 처음 보셨다고 집에서 대학 얘기를 많이 하냐고 하시는데 얼굴이 달아올랐다. 언니들이 중고등학생이라서 옆에서 들은 풍월인가 보라고 하면서도 선생님 생각에 그렇지 않아도 동양 엄마들의 극성에 눈을 찌푸리는데 혹시라도 나를 이렇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대학 얘기만 하는 불량엄마로 볼 것이 심히 걱정이 되었다.

방과 후 막내를 불러서 얘기를 해주면서 왜 집에서는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하더니 학교에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대학 걱정을 하는 애처럼 답을 썼냐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그렇게 적으면 엄마가 좋아할 것같아서 그랬다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엄마가 언제 그런 대답을 좋아한다고 했어?"
"엄마 대학교에 관심 많잖아요! 그리고 나하고는 맨날 맨날 곱셈 얘기만 하잖아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더니 저도 깔깔거린다.
"그럼 엄마가 듣고 싶은 얘기말고 너의 인생의 진짜 목표가 뭐야?
"비밀이에요."
"말해봐!"
"엄마가 싫어할 거에요."
"안 혼낼께."
"대학교 가는 거에요!"
혀를 쏙 내밀면서 메롱을 하고 도망을 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참을 웃었다.  

대학입시 준비를 한다고 정신이 없는 큰 언니와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가기 때문에 중학교 마지막 성적 관리로 분주한 둘째 언니, 그리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해서 새로운 공부에 적응하느라고 한 눈 팔 겨를도 없는 셋째 언니를 보면서 막내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대학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 보다. 큰 아이가 내년 초면 SAT II 과목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언니들과 주로 하는 대화의 주제가 대학 입시에 관한 것이었다. 그 사이에서 막내는 사실 그다지 얘기 자체에 끼지 못할 때도 많았는데 어린 마음에도 입시의 압박을 느꼈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한참 노는 것 좋아할 초등학생인데 언니들이 많으니 집안 이 방 저 방에서 늘 언니들이 조용하라는 소리만 하니 사실 스트레스가 될 것도 같다.
"우리 은영이가 언니들이 많아서 맨날 대학 얘기만 하니까 좀 싫겠다. 그치?"
"아니에요. 내 친구들이 다 나를 부러워해요."
"왜?"
"내가 언니들때문에 노래들도 제일 많이 알고,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도 다 알고...애들한테 SAT II가 뭐냐고 하면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알아요! Calculus, Anatomy...이런 거 내 친구들은 하나도 몰라요!"
아직도 젖살이 가득한 양 볼에 흐믓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한다.

어제 아침에 큰 언니가 짜증을 낸다고 혼이 나고 가는 걸 보고 가더니 방과 후에 슬며시 나에게 위로랍시고 말을 한다.
"엄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내가 곱셈 열심히 해서 혹시 언니가 좋은 대학 못가면 내가 꼭 갈께요."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데 꾹 참고 알겠다고 했더니 나를 꼭 안아준다. 언니들이 혼나는 걸 보면서 막내가 가장 빨리 습득한 기술은 아마도 엄마가 듣고 싶은 얘기를 잘 찾아내는 것인가 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라고 깨우면서 6시 30분이니 빨리 일어나라고 했다. 그랬더니 6시 32분에 일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깟 2 분 더 잔다고 뭐가 좋으냐고 빨리 일어나라고 했더니 2분이 127초이니 엄마가 127까지 세면 자기가 일어나겠다고 한다. 이층 침대 의 아래 층에서 자던 셋째가 벌떡 일어나면서 "엄마, 얜 곱셈만 못하는 게 아니라 분하고 초도 모르나 봐!"하고 깔깔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는지 얼른 일어나더니 그게 아니라 자기가 요새 반올림 반내림을 배우느라고 머리가 아파서 그렇다고 화를 버럭 낸다. 무안한지 얼른 내려오더니 화장실로 쏙 들어가서 문을 찰칵하고 잠그는 소리에 셋째와 함께 소리를 죽이면서 웃었다.  

엄마가 듣고 싶은 얘기만 찾아서 하고 싶은 막내의 마음이 참으로 예뻐서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 아이를 붙들어 세워 꼭 안아주었다. 한참 사춘기의 언니들과 달리 막내는 아직도 내가 안아주면 꼭 안기고 한참을 있는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얼마나 분주하기만 했을 삶인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약수터에서 방금 떠온 물처럼 신선하게 기쁨을 주는 우리집 막내가 고맙기만 하다.
"은영아, 엄마가 제일 듣고 싶은 얘기가 뭔지 알아?"
"곱셈 공부 열심히 하라고?"
"아니야, 은영이가 행복하다고 하는 얘기가 엄마는 제일 듣고 싶은 얘기야. 곱셈을 못 해도, 대학을 못 가도, 아무 것도 못해도 다 괜찮아. 엄만 은영이가 행복하면 좋겠어."
우유를 마셔서 찬 기가 남아있는 입술로 입맞춤까지 해주고 신바람이 나서 차에 오르는 아이를 보면서 또 결심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곱셈보다 더 중요한 건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는 거라고.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승리
    '09.11.10 4:48 AM

    엄마 사랑^^ 우리 모두의 맘인가봐요~~

  • 2. 델몬트
    '09.11.10 10:06 AM

    너무 행복해보여요.
    아이들이 많으니 항상 이야기가 끊이지 않지요.
    저희 언니집도 아이들이 셋이라서 시끄러울 정도더라구요.
    전 그당시 하나뿐이어서 그게 어찌나 부럽던지....
    이후로 늦둥이 하나 더 낳아서 저희도 좀 시끄럽지요.
    지난 금요일 큰딸 고2짜리가 생일이었어요.
    아빠가 해외출장 다녀오느라 바뻤다고 오만원을 줬나봐요.
    어제 제게 자기 낳느라고 고생했다며 핸드크림 좀 비싼걸 사왔어요.
    어떻게 엄마생각까지 했을까.... ㅎㅎㅎ.
    그래도 딸이라서 그런 생각 그런 마음 가진것 같아요.
    제게 딸둘은 정말 보물이며 재산이며 저의 모든것이에요.
    님은 더 부자시네요. 두명이나 더 있으니까요.
    큰따님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를 기도할께요.

  • 3. 동경미
    '09.11.10 12:03 PM

    승리님,
    엄마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없다 싶어요.

    델몬트님,
    아이들이 많으니 정말 언제나 시끌벅적합니다^^
    큰 따님이 대견하네요. 자기 생일에 엄마까지 챙기다니요. 뿌듯하셨겠어요^^
    나이가 들면서 저도 아이들이 재산이라는 것 새록새록 느낍니다.
    큰 아이가 아직 2년이 더 남아있는데 매년 시험이 두어 개씩 나눠져 있어요.
    저도 이젠 수험생 엄마네요^^

  • 4. 칼있으마
    '09.11.14 1:38 AM

    3살박이 아이들한테 맨날 소리만 지르는 엄마인지라.. 이 글을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도대체 전 어디서부터 잘못된 사람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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