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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엄마 인생 아이 인생

| 조회수 : 2,551 | 추천수 : 155
작성일 : 2009-11-03 15:44:30
나의 아침 일과는 보통 5시부터 시작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있는 시간에 혼자 일어나서 커피부터 한 잔 내려서 마시면서 성경을 읽고 잠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는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검토한다. 우리 집이 언덕에 있기 때문에 새벽 하늘이 발갛게 물들면서 해가 떠올 무렵 일출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해가 뜨고 밖이 조금씩 밝아올 무렵 쯤 되면 아이들이 서서히 일어나고 고요하던 집안이 시끌벅석해진다. 한바탕 소란함이 지나가고 남편도 출근하고 나면 나는 집안의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오늘 하루도 나의 일이 시작된다.

두어 주 전부터 절친한 친구와 동네 한바퀴를 걸으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분주한 아침 시간을 어찌하지 못해서 늘 미뤄두고 있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서 큰 맘을 먹고 할 일들을 제쳐놓고 친구와 만나 동네 곳곳의 산책로를 찾아다니면서 걷는다. 오늘은 집 동네를 조금 벗어나서 우리 동네에 있는 알마덴 레이크라는 곳에 갔다. 기껏해야 동네를 한 바퀴씩 걷고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다가 오늘은 제대로 한번 운동을 해보자고 간 곳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를 둘러싸고 산책로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데 오늘은 지나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들고있던 아이폰으로 우선 사진을 찍어놓았다. 전공은 아니라서 서툴지만 유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이렇게 하나 둘씩 모아두는 사진들이 나중에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릴 때에는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웬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모처럼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맑은 공기를 즐겼다. 동갑내기인 친구는 아들만 둘, 나는 딸만 넷, 큰 아이와 둘째가 같은 나이들이라서 늘 비슷한 고민들이 있다. 게다가 친구의 큰 아이와 우리 큰 아이가 꼭같이 의대를 가고 싶어하는지라 관심사도 비슷하다. 두 아이 모두 이과 지망생들이니 지나가는 과목들도 비슷하고 준비하는 시험까지도 비슷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의지하고 지낸다.  

친구의 아들이나 우리 딸이나 모두 올해부터는 대학 입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어 눈 코 뜰 새 없이 시간이 가고 있다. 한국 고등학생들이 입시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대학 입시 준비는 미국이라고 그다지 쉽지도 않다. 10학년부터는 AP (Advance Placement)라고 해서 나름대로 그동안 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들이 대학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과목들을 선택해서 공부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말 그대로 대학에서도 인정을 받는 과목들이니 과제의 양이 엄청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제대로 된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과 준비를 위해서도 거의 날마다 밤 늦도록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한국은 시험 공부를 한다고 한다면 여기서는 그 날 그 날의 수업 준비를 위해서 밤을 밝혀가며 공부를 해야만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우리 아이도 8월 말 학기가 시작된 이후로 매일 2,3시가 넘어야 잠이 들어서 아침 6시에 일어나니 늘 잠이 모자르다고 힘들어한다. 어떤 집들은 그만 자고 일어나 공부를 하라고 성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지만, 친구와 나는 성적이 좀 덜 나와도 좋으니 몸 생각해서 그만 자라고 사정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배부른 고민인지도 모른다.  잘못 얘기를 하면 아이 자랑으로 여겨지기 쉬우니 오늘처럼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나누는 것이 안전하다.  

어제도 내가 아이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은 좀 일찍 자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엄마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안 다녀봐서 그러는 거라고 눈을 흘겼다. 아직 잘 채비가 안 된 남편에게 드나들면서 아이가 잘 있나를 좀 살피고 너무 피곤한 것같으면 억지로라도 좀 재우라고 하기는 했지만 남편도 아마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은 것같았다. 학교 공부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졸업을 위해서 누구나 시간을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까지 일정에 들어있으니 아이의 매일 일과는 그야말로 포화 상태이다. 엄마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하고 자라는 덧없는 소리만 하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친구와 나누면서 아이들의 인생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그저 좀 편하게 공부하고 아주 못하는 정도만 아니면 되니까 조금은 수월하게 살아주면 좋으련만 욕심이 많은 우리 딸과 친구의 아들은 고삐를 늦출 줄을 모른다. 친구는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응급 환자들에게 불려나갈 것이 뻔한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아들을 좀 말려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가정과 일 사이에서 초죽음이 되도록 힘들 것이 뻔한 우리 딸을 좀 말려서 쉬운 인생을 살게 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 마음과는 다르게 앞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분명 엄마들의 인생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여름, 큰 아이와 진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의사가 된다고 해도 좀 수월한 분야, 이를테면 가정의학의나 안과, 소아과 등의 비교적 응급 환자들이 적은 과를 하면 좋겠다고 해주었다. 의사이기 이전에 엄마이고 아내인데 아무래도 일의 양이 너무 많은 의사는 가정생활에 지장이 많을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공중보건의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하고 싶고 무엇보다도 형편이 여의치 못한 환자들에게 편한 마음을 가지고 병원에 오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기특한 이유를 얘기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들었냐고 했더니 자기 경험에서 나왔다고 했다.  

아이의 얘기인즉슨 우리 가정이 한참 어려웠던 재작년까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을 들고 있었는데 그때 진료를 해주던 병원 의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피보험자들이 정할 수 있는 개업의들이 몇 명 있었지만 편리함을 위해서 종합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곤 했는데 당시 담당 의사가 내가 보기에도 아주 친절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이니 대체로 환자들이 언어소통이 불편한 사람들이 더 많고 외관상으로만 보아도 형편이 어렵다는 게 드러날 만한 사람들 대부분이었다. 엄마 마음에는 우리 형편이 나빠져서 아이들에게 안보여줘도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병원에 다녔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려있었는데, 내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미래의 비젼을 심으면서 다녔나 보다. 담당 의사선생님이 자기와 동생들에게 얼마나 따뜻하게 잘해주었는지 자기는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그 분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이다음에 커서 자기처럼 뜻하지 않게 가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빈곤층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다치고 상처받아서 쭈삣쭈삣 진료실로 들어오면 환하게 웃으면서 진료를 해주고 희망을 주고 싶다고도 했다.

나의 마음에 항상 들어있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아이에 대한 대견함으로 바뀌면서 엄마의 짧은 이기심을 능가하는 아이의 넓은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엄마의 인생에는 장애물처럼 여겨졌던 수많은 고난과 힘겨운 기억들이 아이들에게는 선물이 되었음에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를 일이다.  

오늘 친구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책을 읽는데 인생의 도전에 관한 내용에 감동이 되었다. 인생을 60부터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지를 계획하지 않으면 노후가 후회로 얼룩진 세월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의술의 발달로 90까지는 가뿐하게 살게 될 우리 세대들이 60이 조금 넘어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그래도 남은 세월이 30 여년이나 될 것이라고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작자의 말에 용기를 내어 내 인생의 계획표를 새로 꺼내 본다.

내년 봄부터는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저 부담없이 공부를 마치고 설사 변호사가 안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면서 살면 나쁘지 않겠다는 소극적 계획에서 나날이 늘어가는 청소년 범죄와 아동학대 등에 관련된 각종 인권 변호에 쓰임받는 변호사가 되어서 나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나의 노후를 보내야겠다는 계획을 제대로 세워봐야겠다. 딸 아이의 당찬 꿈만큼이나 엄마도 더 늦기 전에 당찬 포부를 한번 재점검해보면서 50 대를 맞이하면 좋겠다. 사랑이 많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큰 아이의 앞 날이 오늘 산책한 호수처럼 깊어보이는 가을 날이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델몬트
    '09.11.3 5:19 PM

    엄마가 너무 멋있으시네요. ㅎㅎㅎ.
    아이가 넷이었군요. 키우실때 고생 많으셧겠어요.
    지금 사시는 곳이 미국인가요?
    대학입시 공부가 미국이라고 비켜가진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저도 고 2 딸아이가 있어 걱정이 많답니다.
    새벽 5시에 엄마의 기도는 분명 하늘나라에 상달될거에요.
    그리고 그 기도에 아이들이 건강하고 이쁘게 잘 자라는것이구요.
    저도 동경미 님처럼 기도하는 엄마랍니다.

  • 2. 동경미
    '09.11.4 12:52 AM

    델몬트님,
    네, 미국에 살고 있어요.
    대학입시가 미국도 큰 관건이네요.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거의 없고, 그저 기도밖에는 할 게 없어요.
    다행히 제 스스로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감사하고 있고요.
    기도하는 엄마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 3. 메이플우드
    '09.11.4 9:24 PM

    따님이 정말 대견하네요..
    글 항상 감사하게 보고 있어요..
    아들 하나뿐이지만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 4. 동경미
    '09.11.4 10:51 PM

    메이플우드님,
    이런 저런 고생도 좀 해보고 하면서 아이가 훌쩍 자란 것같아서 대견하면서도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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