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내 어깨 두드려 주기
평소 아이들을 예뻐하고 아끼던 선생님이었던지라 자신의 손길로 아이들 하나 하나를 두드려주는 일을 아끼려했다기보다는 아마도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자긍심을 느끼게 하려는 마음이 숨어있었던 것같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자기 어깨를 자기가 두드려주는 일에 재미를 붙인 큰 아이는 집에 와서 동생들에게도 아이디어(?)를 주어 아이들 모두가 그 뒤로 뭐든지 자기가 잘했다 생각되어 기분이 좋을 때면 저마다 자기 어깨를 두드려주곤 했다. 엄마가 미처 칭찬을 못해주어도 아빠가 미처 알지 못할 때에도 제가 제 어깨를 두드려주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게 보이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어른인 나도 아이들 마음이 되어 내 딴에 열심히 해왔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에 나 스스로 어깨를 두드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아무리 힘이 되어주고 싶어도 힘이 부치는 부분은 외부에서 받는 여러가지 상처와 충격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24시간을 함께 있어줄 수 없기에 어떤 일들은 부모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전개가 되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지나기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나 너를 지켜줄께'라는 말은 아무 의미없는 약속이 되고, 그럴 때마다 부모로서의 무력감을 느끼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있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 아이가 자기가 쓴 소설이라며 슬그머니 수줍어하며 보여준 글을 읽게 되었다. 어느 새 한국어 실력이 그렇게 늘었는지 제 나름대로 줄거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꾸며놓은 것이 대견스러웠다. 이야기에는 필리핀에서 전학을 온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그 아이의 부모님은 함께 중국으로 출장을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시어 주인공과 여동생은 할아버지와 산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아이는 한국말이 서툴어서 학교에서 늘 왕따를 당하지만 엄마 아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동생을 잘 보살피며 기죽지 않고 잘 지낸다는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데 언제 이런 생각을 다 해보았나 신기할 정도였다.
"은선아, 은선이도 엄마 아빠가 함께 출장을 가면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어쩌나 걱정을 해봤니?"
"네, 꿈도 꾼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네가 미국에서 왔다고 왕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니?"
"많지는 않은데요, 가끔 그런 애들도 있었어요."
"왜 엄마한테 말을 안 했어? 엄마가 항상 물어봤잖아."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가 걱정하고 속상해하잖아요. 엄마가 걱정한다고 그애들이 그만할 것도 아닌데, 뭐..."
가슴이 뭉클하면서 아이한테 한없이 미안했다. 엄마와 아이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를 하는 것이다.
"엄마, 괜찮아요. 그렇게 약올리던 아이들도 이제는 다 다른 반이 되었고 나는 그 애들이 아무리 약올려도 그렇게 많이 속상하지 않았어요. 내가 조금씩 노력해서 이제는 한국말을 잘하게 되었는데요. 지난 번에 동시 대회에서 상도 받았잖아요. 그럼 된 거잖아요."
그러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습관마냥 제 어깨를 제가 두드려주는 시늉을 한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나서도 며칠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의 회사가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절반은 엄마를 못 보면서 외할머니와 일하는 아줌마의 손길에서 지내는 사이에 아이는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상상의 걱정을 하기도 했구나. 이대로 엄마 아빠가 안 돌아오면 어쩌나, 동생들은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에 불안했을 때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그저 웃는 얼굴로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고,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니 내 일에 쫓기어 살다 보면 큰 탈이 없나 보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가게 된다.
학교에 다녀 온 아이에게 그날 하루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해도 아이들은 자기가 밝히고 싶은 부분만 이야기한다. 아무리 어린 아이도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숨기게 마련이다. 물론 후에 선생님을 통해 얘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문제화되지 않은 일들은 결국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게 된다. 특히 그것이 가시화된 어떤 문제가 아니고 아이가 자기 마음 속으로만 느낀 것일 경우에는 많은 경우에 먼 후일 어른이 되어 그것을 어느 정도 소화해서 얘기할 능력이 될 때까지 가슴에 묻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지에는 많은 경우 오해가 더해지게 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상처로 남게 되기가 일쑤이다.
언제나 곁에 따라다니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해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일하는 엄마나 일하지 않는 엄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 스스로가 그때 그때 상처받을 일에 대한 내성이 생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때때로 억울한 일이 생겨도, 모욕을 당해도, 따돌림을 받아도 그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라는 좌절감 대신 '괜찮아.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잖아. 이런 일로 하늘이 무너지진 않아' 라는 자기위안의 능력이 개발되어있다면 부모의 방패막 못지않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둘째 아이가 쓴 소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며 이런 저런 반성을 하다가 아이와 나눠쓰는 교환일기에 편지를 썼다.
"은선아. 어려운 일이 생기고 마음이 아플 때에도 스스로 잘해가고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날마다 발전해가는 은선이의 모습에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운 마음이야. 앞으로 은선이가 더 많이 자라고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란다. 마음 아픈 일은 언제나 생기는 법이거든. 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네 어께를 두드려주는 일로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오렴. 은선이의 예쁜 어께를 두드려줄 손이 엄마 아빠의 손에다가 언니와 동생들까지 합하면 모두 10개가 더 있단다. 소설가 은선이 화이팅!"
언니 하나에 동생이 둘이나 되는 은선이가 엄마의 관심을 언제나 독차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언제나 엄마와 둘만의 대화를 나누는 통로인 교환일기가 있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써나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손을 잃지 않는다면 험한 세상이 주는 상처나 질타로부터 다소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 [키친토크] 엄마보다 훨씬 더 나은.. 32 2013-12-28
- [줌인줌아웃] 어두운 터널에는 반드시.. 20 2013-01-03
- [줌인줌아웃] 뜻이 있으면 반드시 길.. 24 2012-06-12
- [줌인줌아웃] 아줌마 로스쿨 장학생 .. 56 2012-04-03
1. 델몬트
'09.10.30 4:24 PM큰아이 마음이 참 넓은것 같아요.
엄마 마음 쓸까봐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던 거잖아요.
아이 셋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ㅎㅎㅎ
세명으로부터 얻는 기쁨을 고생이란 표현은 안어울리겠죠?2. 션와이프
'09.10.30 8:31 PM그동안 출장을 간다고 알려줄 때마다 쓸쓸하고 어두워지는 큰 아이의 표정이 떠오르네요..ㅠ.ㅠ
엄마 속상해 할까봐 아이가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아..동경미님의 둘째따님과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생각하니 맘이 아픕니다. 아이의 맘을 헤아려주고, 또 그 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몫이구나..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3. 동경미
'09.10.30 10:22 PM델몬트님,
아이가 순하고 여려요. 어려서는 그런 기질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을까봐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자라면서 좀 달라지는 것도 있고, 그래도 기본 기질은 남즐 먼저 배려해주네요.
아이가...넷이에요^^
고생도 정말 많은데, 님의 말씀대로 아이들이 주는 사랑과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션와이프님,
그렇지요. 저도 예전에 해외출장이다 지방출장이다 늘 분주할 때 우리 아이들이 늘 싫어했어요. 가서 전화비만 엄청 많이 쓰면서도 연결되어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려고 애를 쓰느라고 썼는데도 저희들 마음에는 구멍이 있는 게지요. 이제는 제가 재택근무를 하느라고 늘 집에 있고, 또 아이들이 사춘기니까 아이들이 엄마가 가끔 나가주면 좋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