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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우리는 서로 달라요

| 조회수 : 1,806 | 추천수 : 175
작성일 : 2009-10-21 22:41:02
여름방학이 되어 네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시끌벅적한 우리 집은 그야말로 어린이 하계 캠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해 고 있다. 날씨마저 덥다보니 저마다 불쾌지수가 높고 작은 일에도
부딪치기가 일쑤이다. 식사 때마다 저마다 먹고 싶은 것도 다르고 낮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도 다르고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도 다르고...무엇이든 일치를 보기가 어렵기만 한가 보다. 아이들끼리의 잦은 갈등을 겪다보면 곁에 있는 어른들도 함께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 것이 무더운 계절의 고충이다.

"엄마, 나는 언니들 없고 동생도 없고 혼자만 있으면 좋겠어요." 참다 못한 세째가 불만을 쏟아낸다.
"네 맘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벌써 나와있는 언니들이나 동생이 어디로 가겠어?"
"나하고 맘이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내가 인형놀이 하려고 하면 소꼽놀이 하자고 하고 내가 컴퓨터 하려고 하면 책 읽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하고...다들 정말 싫어요"
"야, 너는 안 그러는 줄 알아?" 큰 아이와 둘째가 질세라 방어를 한다.
"우리도 너 땜에 힘들다구!"
"엄마, 언니들이 같이 안놀아줘요" 막내도 함께 가담을 한다.

일주일을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더니 엄마 아빠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고 저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고자 하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의 불쾌지수는 이미 적정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이럴 때에 내가 휴전(?)을 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소가 허용하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아이들을 서로 떼어놓는 일이다. 큰 아이는 안방에서 책을 읽게 하고, 둘째는 제 방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세째는 제 방에서 인형놀이를 혼자서 하게 하고, 막내는 소꼽장을 가지고 거실에서 혼자 놀게 한다. 각자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누구든지 혼자서만 놀아야 한다는 점은 같다. 아무도 함께 놀 수 없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아이들의 감정도 가라앉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갈등을 지켜보느라고 같이 격해지기 쉬운 엄마의 마음도 정돈될 시간이 생긴다.

"엄마, 영은이랑 놀아도 돼요?" 한시간도 채 안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이다.
"엄마, 심심해요."
"같이 놀다보면 마음이 안 맞아서 네가 하고 싶은 걸 못할텐데, 괜찮을까?"
"그래도 조금만 같이 놀아볼래요."
"그러다 또 싸우고 울고 하려고? 오늘은 그냥 각자 놀아."
"아니에요. 인제 안싸울 거에요. 아니, 싸워도 금방 화해할께요."
엄마의 강경책에 넷이 합창을 하며 매달린다.

아쉬운 마음에 함께 놀다가 얼마 지나면 또 다시 다투고 격리(?)되는 일정의 연속이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이 되면서도 아이들은 어김없이 함께 노는 일에 재도전을 하게 마련이다. 조금만 마음이 어긋나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등을 돌리는 어른들보다는 부딪침 속에서도 끊임없이 수용을 위한 노력을 하는 아이들이 훨씬 인간관계의 달인들이라고 해야 할까.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네 아이를 키우면서 날마다 느끼는 것은 차이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날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기호가
다른 수많은 차이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부모, 형제, 남편, 친구, 직장동료...이 세상에 누구하나 나와 꼭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때때로 '세상에 내 맘같은 사람은 없다'며 가슴을 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으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내 맘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나와 생각과 기질과 성격이 꼭같은 사람이 있다면 반갑다기보다는 불편스럽고 신경쓰이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그사람이 아주 작은 일들까지도 나와 복제인간처럼 같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인연이 되지 않을까. 그사람과의 만남에는 아무런 기대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아무런 실망도 없는 무미건조함만이 가득할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꼭같은 메뉴를 시키는 일이 보통이다. 혼자서만 다른 걸 먹으려 하면 혼자 유난을 떠는 눈치없는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대다수가 찬성하는 일에 소수의 인원이 반대를 하면 오히려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되기가 쉽다. 인터넷 상에서도 각 사이트마다 거론되는 사이버 테러의 대부분이 생각의 차이를 수용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흥미롭게 생각하고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에 어떤 면이 좋은 점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본 뒤에 마음을 정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무조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적이라고 인식하는 사고체계야말로 요즘처럼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는 시대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나온 아이들이라도 각각 개성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다는 것은 아이들을 키워본 부모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들도 저마다 기호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차이야말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표현이고 증거가 아닐까. 획일화되기 쉬운 사회에 살면서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자라나게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엄마와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것들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 어느 선생님 한 분이 참 인상적으로 차이를 수용하는 방법을 가르치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어떤 질문이든지 아이들이 옆 친구가 하는 그대로 따라서 "Me, too" 라고 대답을 하면 인정하지 않으셨다. 단어 하나를 바꾸더라도 창의적으로 자신만의 표현으로 대답을 해야 노력한 것을 인정해주시곤 했다. 세상에 절대진리란 몇 개 되지 않으며, 내 생각이 옳은 것만큼 남의 생각도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의 마음에 새겨놓으시고자 애쓰시는 모습에 마음이 흐믓해지곤 했다. 그분이 세뇌처럼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던 말씀이 지금도 내가 아이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곧잘 인용이 된다.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옳다는 것이 옳은 얘기라는 거야 (You have a point and I have a point, too. Above all, it's right that we both have points.). 서로 달라도 괜찮은 거란다 (It's okay to be different!)."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kleome
    '09.10.22 6:59 AM

    귀한글 감사합니다
    모두 다른모습 다른생각과 방법으로 사는 것을 존중해주고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웁니다

    내기준이 아닌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옳다는 것이 옳은 얘기라는 거야 (You have a point and I have a point, too. Above all, it's right that we both have points.). 서로 달라도 괜찮은 거란다 (It's okay to be different!)."

    서로 달라도 괜찮은 거란다
    저와는 많이 다른 남편을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

  • 2. 초콜릿
    '09.10.22 9:19 AM

    좋은 글 감사해요..
    아침부터 5살난 딸아이를 혼내고 어린이집 보내고선...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으로 82에 들어왔는데..글을 보니..반성도 되고.도움도 되네요..

  • 3. 동경미
    '09.10.22 11:02 AM

    kleome님,
    신청하신 서로이웃 방금 ok 하고 오니 댓글이 있네요^^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외로움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말을 저도 늘 새기며 살려고 합니다.

    초콜릿님,
    아침에 아이들 혼내고 나면 엄마들 마음이 많이 상하지요.
    막상 야단 맞은 아이보다 엄마 마음이 더 아픈 걸 아이들은 알려나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안아주고 잘해주시면 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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