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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엄마의 할 일

| 조회수 : 2,765 | 추천수 : 233
작성일 : 2009-10-08 22:38:25
어제 어느 모임에서 얘기 끝에 아이들 얘기가 나왔다. 유럽이 아무도 총을 들이대지 않았는데도 인구 감소로 인해서 서서히 기운을 잃어간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아이 숫자 얘기로 흘러갔다. 세째를 낳으면서부터 이미 아이 많이 낳은 여자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에 이제 아이 수에 관한 얘기들에는 그다지 상처를 받지도 않고 고깝게 들리지도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에게 아마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걸까.

우리 테이블에 앉으셨던 어느 분이 아이가 넷이나 되면 그 많은 집안 일이며 부엌 일은 누가 다하냐고 궁금해하자, 곁에 앉았던 사람이 이 집 딸들은 어려서부터 일하는 엄마에게 훈련이 되어 있어서 웬만한 새댁보다도 더 일을 잘한다고 추켜세워주었다. 그러자 모임에 새로 나온 사람이 정색을 하고 혀를 차면서 그렇게 키우면 나중에 틀림없이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는 해 준 게 하나도 없다는 소리를 듣고 말 거라고 했다. 농담이 아닌 소리라서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지면서 내 곁에 앉았던 친구가 오히려 머쓱해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했다.그러나 그 사람은 멈추지 않고 밥해주고 빨래하주고 하는 게 엄마인데 엄마의 본분을 안한다면 그게 무슨 엄마냐고 잘라 말하면서 자기는 아이들 뒷바라지 해주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들 보면 너무나 걱정스럽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더 이상 대꾸하기도 뭣해서 그러냐고 하고 지나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공격을 받은 기분이 아주 씁쓸했다.

내 성격에서 가장 나쁜 부분 중의 하나는 언짢은 일이 생기면 그 순간에 표현하지를 못하고 지나갔다가 돌아서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뭐라 방어를 하기에는 늦은 시기이니 그저 내 속에서 삭이는 수 밖에 없기에 가슴앓이를 자주 하곤 한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왔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그 사람도 무언가 그렇게 분위기에 안 맞는 얘기를 토해낼만큼 힘든 부분이 있었나 보다 하면서 삭여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회사 일을 보면서도 내 머리 속에는 나는 과연 어떤 엄마인가 하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딴에는 머리를 쓰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보려고 애를 쓴다지만 과연 내 방식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든 게 다 자신이 없어졌다. 몇 달에 한 번은 꼭 겪는 나만의 '엄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잘 지내다가도 나 이래도 되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나 하는 생각에 온 몸에 맥이 빠지고 두려움이 밀려들면서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걱정스럽게 보이는 것이 주증상이다.  

방과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도 머릿속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지 세째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영은아, 엄마가 이런 저런 집안 일들도 많이 시키고 집에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많이 시간을 내지도 못하니까 힘들지? 엄마가 미울 때는 없었어?"
세째와 막내가 서로 마주보며 갸우뚱거리더니 아니라고 합창을 한다.
"그래도 엄마가 일을 하는 엄마가 아니거나 우리 집에 아이들이 조금 덜 있었으면 더 관심도 많이 받고 엄마가 시간도 많이 보내주고 할 것 아냐. 그런 것 생각하면 속상할 때 없었어?"
"엄마, 왜 자꾸 그런 거 물어봐요? 무슨 일 있었어요?"
눈치 빠른 세째가 정곡을 찌른다.
"아니, 어떤 아줌마가 엄마더러 너희들한테 집안 일을 많이 시키고 엄마가 많이 해주는 게 없다고 이 다음에 크면 우리 딸들이 엄마가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셔서 엄마 지금 반성 중이야."
"엄마, 그 아줌마가 뭘 잘못 알고 계신 거에요. 엄마는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그냥 듣고 있었어요? 얘기를 좀 해주지 그랬어요?"
세째가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뭐라고 얘기를 해 주니? 맞는 말도 있는데..."
"엄마, 엄마가 왜 밥하고 빨래만 하는 사람이에요? 그건 도우미 아줌마들도 해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치만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들을 교육시키고 권위를 보여주는 사람이잖아요. 그건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열변을 토하는 세째에 질세라 막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았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지만 아이에게 어른이 배워야 할 지혜는 또 얼마나 많은가. 엄마를 위로하려는 얘기였지만 세째의 논리적이고도 정확한 얘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우리 일부러 힘들게 하고 엄마 혼자서만 쉬려고 가사일 시키는 것 아니잖아요. 가족끼리 서로 돕자는 건데, 그 아줌마가 뭘 몰라서 그러나 봐요. 왜 엄마 혼자만 힘들게 다 해야 되요.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아니면 그 아줌마가 자기 아이들은 하나도 안 도와주니까 질투가 났나 봐요."
듣고만 있던 둘째도 한 마디 거들면서 눈을 찡긋 해보인다.

오후 늦게 돌아온 큰 아이도 동생들에게 들었는지 내 방으로 슬며시 들어와 포옹을 해주었다.
"엄마, 애들 많다고 누가 뭐라 그랬어요? 누구야? 내가 대신 혼내줄께! 누가 울 엄마를 화나게 했어, 도대체?"
익살을 부리는 큰 아이에게도 물었다.
"선영아, 동생들 많아서 힘들지? 큰 언니 노릇 하는 것 때로는 싫지?"
"그럴 때도 있지만 또 동생들이 있어서 좋을 때도 있어요. 아이, 엄마는 왜 우리한테 다 가르쳐주고 자기만 또 몰라요? 사람이 어떻게 다 자기 좋은 대로만 살아요. 싫은 것도 있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도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하느냐에 달린 거라고 엄마가 나 세 살 때부터 얘기했잖아요."
십 여년이 넘도록 아이에게 세뇌를 한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은가 보다.
나의 부족함이 미안하고 자질이 부족한 엄마에게 많이 받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운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번 주에 도착한 아이들의 성적표에 우리 부부는 얼마나 감사를 했는지 모른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과외 한 번 안시키고 있는데 중고생 세 아이 모두가 전과목 A를 받아왔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받는 상이라고 해봤자 그동안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금붕어인데도 금붕어 세 마리를 벌고자 열심히들 한 모양이었다. 학업이 전부는 아니지만 마음까지도 예쁜 우리 딸들이기에 성적이 좋은 것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남들은 모두 방과 후 SAT 학원이다, 과목 과외다 바쁜 일정인데 우리 아이들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그날 그날 배운 것 복습하고, 함께 토의하면서 숙제하고 엄마가 사다 준 문제집들을 푸는 것 외에는 바쁜 일정이 없다. 그 날 숙제할 것과 공부할 것만 다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놀아도 대체로 봐주는 참으로 느슨한 학습환경이다. 주말에는 아빠가 아이 넷을 모아놓고 수학을 가르쳐주고, 매일 밤 8시면 엄마 아빠 방에 책 한권씩 가지고 모여 한 시간씩 같이 책을 읽는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모두들 공부들을 잘해주고 있지만 부모 마음은 항상 더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이렇게 해도 부족함이 없을까 하고 우리의 교육이 미진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모임에서 많이만 낳고 뒷바라지를 못하는 부모라는 얘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많이 상했었나 보다.

낳는다고 다 부모가 아니고 자식을 올바르게 키워야 제대로 된 부모라고도 하고, 부모의 도리와 희생도 얘기하고, 부모의 할 일은 넘치고 또 넘친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엄마의 역할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다 해내야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까. 우주에 있는 별처럼 답이 너무 많아보여서 또다시 우리집 똑순이 세째에게 물었다.
"우리 딸에게 또 좀 배워야겠다. 엄마가 너희들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무얼 주로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하니?"
"인생 살아가는 기술 (Life Skill) 이요! 그건 엄마 아빠 아니면 아무도 못 가르치는 거잖아요."
언니들도 숨을 죽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세째의 말에 동감을 한다.
"공부가 아니고?"
"공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고, 엄마 아빠는 우리가 나중에 커서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분들이에요."
한 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대답을 하는 세째의 밝은 미소에서 오늘도 또 다시 기운을 얻어본다.
내가 평생동안 배우고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순간 순간의 지혜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르는 신성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또 그 아이들을 통해서 새록새록 생겨나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71051825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굿럭
    '09.10.9 11:08 AM

    아이들이 너무 이쁩니다. 동경미님의 글을 읽으려고 매일 들어온답니다.
    소중한 지혜를 나눠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 2. 바람소리
    '09.10.9 11:40 AM

    저도 매일 들어옵니다. 주옥같은 글,잘 읽고 있습니다.
    40이 넘어 4살 7살 아이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직장다니면서..
    어제도 아이들한테 엄청화내고 자기전에 책읽어주면서 '엄마 오늘 화 많이 냇지? "예.. 왜 그렇게 화나셨어요? 하더라구요. 화내지 말고 잘 키워야지 하면서 잘 안됩니다. 암튼 하루하루 수행하며 살아야겠습니다.

  • 3. 동경미
    '09.10.9 12:20 PM

    굿럭님,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바람소리님, 일하는 엄마들 많이 힘들지요. 일하시고 들어와서 몸이 힘들면 화도 더 나고요. 그래도 시간 쪼개셔서 책도 읽어주시면서 아이와 대화하시는 모습이 참 귀하네요. 화내는 것이 아주 다 없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지나쳤던 부분은 사과하고 야단 칠 것은 야단치면서 엄마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면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니 너무 염려마세요.

  • 4. 소연
    '09.10.9 3:26 PM

    동경미님.........브라보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너무 잘크고 이쁜 아이들이네요..
    저는 이미 막내가 대학1학년인데요..
    어려선 엄마가 집에있엇음 햇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직장맘인게..정말 다행이었답니다
    작은아이 초등학교 6학년때 잠시 몇달 직장 쉬었는데..
    너무 자기만 따라 다니는 엄마가 부담스러웟다는..
    아무래도 출근안하면.. 애들한테 집중하게 되는데..
    그 집중이 별로 안반가웟다고 하드라구요..

    나이 50이 다되어가면서.. 제일 부러운분이..
    아이들이 많은집입니다..
    나름 노력했는데..딱 2명이 제 차지네요..

    부럽습니다.........동경미 님 ^^

  • 5. 대유맘
    '09.10.9 10:48 PM

    셋째딸 브라보.... 이쁜 아이들 브라보!
    life skill.... 확 와닫습니다.
    저도 5살 아들과 둘째를 임신중입니다.
    둘째를 가지니 셋째도 낳아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때가 있어요...
    형편이야 어쨌든... 자라면서 아이들은 나름 행복하게 나름 인생의 지혜를 공유하면서
    의지하고 살겠죠...제가 자라왔던것 처럼.... 동경미님의 글을 읽어보니 나름 삶의 기준이 있으신분같아요. 아이들이 넘 사랑스럽습니다. 부럽내요...

  • 6. 동경미
    '09.10.10 8:55 AM

    소연님, 님의 경험담을 들으니 정말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네요. 저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주면 좋겠네요. 님의 말대로 저도 휴가라도 받으면 아이들에게 잔소리 늘어나고 간섭 더 하게 되는 것 맞습니다. 아이가 많으니까 힘은 들어도 마음은 풍성하네요.

    대유맘, 둘째 임신 중이신데도 벌써 셌째를 계획하시는 여유라면 셌째 충분히 잘 기르실 수 있는 엄마네요 ^^ 아이는 엄마 아빠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키워지지 않아요. 거기에 어떤 신비로움을 느끼며 삽니다.

  • 7. 희짱
    '09.10.22 1:17 PM

    이 글을 읽고 나니 저두 엄마의 할일이 다시 생각하게 되엇어요...ㄳㄳ

  • 8. 퍼니맘
    '09.10.28 8:41 PM

    동경미님....요즘 말로 짱입니다요 정말 종합예술을 잘하고 계시군요.
    심리학을 전공하셨다니 부럽슴다**^^** 인생의 기본을 그리 돈독히
    해주시니 틀림없이 사회에 이바지할수 있는 아이들이 될 겁니다....
    자희도 자매가 많은데 부모님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이 기억에
    남더군요...성격이 모나지 않고 좋은 성품과 정서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합니다. 오늘도 감동이구요 .중년의 심리도
    좀 올려 주세요.......**^^**

  • 9. 해피심퀸
    '09.11.20 3:02 PM

    엄마 된지 8.5개월 되었어요.. 전부터 동경미님 글 읽어보고, 처음부터 쫙 다 읽어 봐야지 하고 마음만 먹었는데.. 오늘 우리 딸이 잘 자주어 그 틈에 실천하고 있어요

    글보고나니 첫아이가 늦어져 아이 넷에서 셋으로 하향조정했는데.. 넷째까지도 욕심이 생기네요ㅎㅎ
    앞으로 글들 잘읽겠습니다.
    어떤 육아서가 이리 진솔한 가운데 방향을 제시해 줄까요!
    너무 도움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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