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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명백한 분노와 왜곡된 분노

| 조회수 : 2,551 | 추천수 : 231
작성일 : 2009-10-07 22:42:03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아이를 향한 인내심이 아닐까 싶다. 아이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수많은 실수들을 대할 때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에서는 머리의 속도만큼의 이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어른의 논리와 이성이 적용될 수 없는 만큼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이들에게 충분한 인내심을 부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10여년 아이를 키워가면서 가장 많은 도전을 받았던 부분도 인내심에 관한 부분이었던 같다. 아무리 옆에서 떼를 쓰고 애를 먹여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때로는 미소까지 지으면서) 차근차근 아이에게 설명을 하고 그래도 먹히지 않으면 가벼운 벌을 주고 더 심해지면 얼굴은 부드럽고 말은 단호하게 정해진 벌을 주는 그네들의 합리적인 육아방식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나로 하여금 뱁새다리를 연상하게 만들곤 했다.

몇년 전 아이의 유치원에서 엄마들끼리 모이는 모임이 있었다. 주최하는 엄마가 큰 마음을 먹고 점심까지 지어서 다른 엄마들을 초대하게 되었다.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지 못한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는데, 엄마들의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이들이 식탁 위의 양념통을 쏟고 말았다. 워낙에 신경을 많이 쓴 상차림이었기에 주인장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그렇지 않아도 그 양념통을 닦아놓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단다. 그러던 차에 아이들이 쏟았으니 꼼짝없이 양념통을 닦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게다가 식탁보로 가려놓기는 했지만 식탁도 어차피 청소를 해야 했는데 정말 잘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심에 어린 말들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었다.

자리가 대충 정돈되었을 때 다른 엄마도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며 아이들의 실수에 관대해지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수를 막는 것은 지금 시기에 중요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시행착오릉 경험하게 안전하고 사랑에 찬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아들이 네살이 되었을 때,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부엌 바닥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부엌과 맞닿은 거실의 카페트에도 물이 흘러가고 있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려 했지만 돌아서서 심호흡을 두 번 하고 숫자도 오십까지 세고 아이에게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엄마의 설겆이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싱크에서 하고 있었지만 키가 닿지 않아 의자를 놓고 하다가 그것도 불편해서 아예 더러운 그릇들을 통째로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싱크에서 물을 퍼서 끼얹으며 그릇을 닦고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야단 맞을까봐 걱정하는 기색은 요만큼도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얼굴로 엄마에게 칭찬을 듣고자 열심히 얘기하는 아이를 그녀는 도저히 야단칠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래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그런데 이 바닥이 너무 엉망이 되었으니까 함께 물을 좀 치우자고 설득을 해서 오후 내내 모자가 함께 부엌 바닥을 닦았다고 했다. 다 마치고 나더니 아이가 큰 결론을 얻었다는 듯이 이 방법은 아무래도 손이 너무 많이 가니 다음부터는 좀 힘이 들더라도 싱크에서 설겆이를 해야겠다고 하더란다.

엄마의 현명한 문제해결능력으로 인해 아이는 엄마를 도와주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고 엄마는 아이의 호의를 무시하지 않아도 되었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화를 내며 다음부터 하지 못하게 금지를 시켜버렸다면 엄마는 엄마 대로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남아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아이는 엄마에 대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데에 대한 억울함과 무력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아이의 실수에 여유롭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엄마의 감정통제능력의 미숙에서 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에 자기 속에 숨어있는 분노의 모양과 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의 실수로 인해 분노의 파편이 분출되고 나면 당황스러움과 죄의식, 후회 등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평상 시에는 멀쩡하다가도 아이와 연관된 문제에 부딪치면 순식간에 이성을 잃게 되고 정도 이상의 화를 내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믿기지가 않을 때가 많다.

분노에는 명백한 분노와 왜곡된 분노가 있다고 한다. 명백한 분노란 잘못한 사람이 분명히 있으며 충분히 화가 날 상황에 처해서 당연하게 표현되는 감정이다. 왜곡된 분노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분노이며 그 원인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있다. 예를 들어 교통규칙을 무시하고 느닷없이 차선에 뛰어들어 운전자를 놀라게 한 사람을 보고 느끼는 분노는 명백한 분노이다. 하지만 펑크난 타이어때문에 회의에 늦게 되어 화가 나서 자동차를 발로 차고 같이 가던 사람에게 공연히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면 이것은 왜곡된 분노에 속한다. 타이어가 펑크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같이 가던 사람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실수로 인한 엄마들의 분노는 대부분의 경우 왜곡된 분노에 속한다. 아이가 고의로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벌린 일이 아니고 아이 자체의 미숙함으로 인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화가 나게 된 원인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았을 때에는 의외로 아이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건들이 깊숙히 숨겨져 있는 경우도 많다. 참고 또 참고 있던 감정이 아이의 실수로 인해 분출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쨌든 분출을 시켰으니 후련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그 화를 다 받아야했던 아이로서는 억울한 마음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엄마에게 받은 양만큼의 분노가 심어진다. 부당한 대우에서 비롯된 명백한 분노인 것이다.

아이를 다루면서 감정을 잘 절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내 감정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 감정의 표현대상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화난 것은 남편과 해결해야 하고 친구와 화난 것이 있다면 친구와 풀어야 한다. 아이의 작은 실수 그 자체만으로 이성을 잃을 만큼의 화가 나는 일은 거의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른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없고 감정적으로도 덜 발달된 아이가 쉽게 어른들의 감정해소대상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억울하게도 아이에게 잘못 표현했을 때에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조건 "네가 잘못했으니 그랬지"라는 합리화보다는 "엄마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19463180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또미
    '09.10.8 9:27 AM

    흑.. 오늘도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정말이지 제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안 좋으면 모든 화가 죄 없는 아이에게로 가더군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 동경미
    '09.10.8 3:41 PM

    또미님, 감사해요. 엄마가 지치고 힘들면 당연히 그렇게 되지요. 그래서 엄마가 행복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생활이 참 중요해요. 아이를 살리려고 엄마가 죽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산답니다.
    커피중독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3. 찌우맘
    '09.10.8 10:02 PM

    항상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주위 엄마들한테 꼭 읽어보라고 프린트까지 해 줄 정도로 광팬(?)이랍니다~^^
    오늘 글 특히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하는것 같습니다...

  • 4. 동경미
    '09.10.9 5:30 AM

    찌우맘님, 감사합니다. 프린트까지 하신다니 쑥스럽네요 ^^

  • 5. 천우맘
    '09.10.9 12:16 PM

    저도 잘 읽었어요... 저번에 저두 "그건 하늘이 무너질 일이 아니야" 이말은 제가
    냉장고에 붙여놔서 울집식구들은 늘 보는 말이네요..특히 제가 자주 생각하는 말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 6. 동경미
    '09.10.10 8:57 AM

    천우맘님, 저희 냉장고에도 꼭같이 붙어있답니다. 그런데 저희 집도 제가 제일 많이 봐야 할 사람이에요^^ 남편과 아이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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