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을 키우면서 가지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얘기는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날마다 실감한다. 오늘은 이 아이, 내일은 저 아이로 잠을 못 이루고 밤을 지새운 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사소한 문제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몇 날 며칠을 가슴앓이를 해야했던 시간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특별히 이민자로서의 삶이기 때문에 문화의 차이로 인한 육아법의 차이도 나에게는 넘어야 할 큰 장벽이었다. 물론 현대인은 각자의 문화가 있다고 할만큼 문화는 더이상 지리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한 엄마가 새로운 땅에서 배워야 하는 육아는 내 부모의 유산과는 영 다른 것일 때가 많으니 배우고 배워도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세째는 아이들 중 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아서 나와 생각도 잘 통하고 대체로 이해가 잘 되는 아이이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이고 말도 잘했고 무엇이든 딱 부러지는 면이 고슴도치 엄마에게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반면에 나의 단점도 그대로 닮아서 타협이 잘 안되고 한번 옳다고 믿으면 손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지나친 우직함이 아이에게 손해가 될 때도 많은 것을 본다. 저런 것은 안 닮으면 좋으련만 하며 안타까워하지만 따로 불러앉혀놓고 가르친 것이 아닌데도 꼭같이 따라하는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다.
세째가 3학년 때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만 네 살 때 한국으로 나갔다가 4년 후에 미국으로 돌아왔으니 어려서 배운 영어도 잘했지만 아이에게는 한국말이 더 편한 말이었고 급하면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하루는 방과 후 시무룩하게 나오길래 물어봤더니 반 아이 중 하나가 자기를 자꾸만 원숭이라고 약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네가 원숭이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했더니 그게 아니라 그 아이가 동양 애들을 모두 원숭이라고 비하해서 부른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특별히 갖가지 인종이 다 모여있는 샌호세에서는 인종차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극히 위험하고 드문 일이었기에 반신반의하며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이의 표정은 밝아지질 않았고 나중에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요청했다. 담임 선생님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고 다만 상대 아이가 그동안 여러 번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라서 이번에 또 문제가 되면 학교에서 내보내서 다른 학군으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다 이 아이의 행동으로 불만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아이의 가정이 너무나 문제 가정이고 다른 학군으로 쫓아내게 되면 더 심해질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일이 커지지 않게 단도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의 엄마는 미혼모인듯 했는데 하고 다니는 행색은 아무리 미국 땅이라 해도 시선을 두기 어렵게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짙은 화장을 하고 아이를 데리러 오기도 하고, 아이가 결석도 잦은데 그 이유를 그 다음날 아이에게 물어보면 엄마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 술이 덜 깨서 그랬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아이가 생뚱맞게 우리 엄마는 남자 친구가 수 십 명이라고 자랑도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반 아이들도 그 아이를 자꾸 외면을 하고, 그게 못마땅한 아이가 일부러 다른 아이들을 놀리고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학교에서 담임과는 애착관계가 이루어져서 많이 의지를 하는데 다른 곳으로 보내면 아이가 어떻게 비뚤어질지 난감하다고도 했다.
결국 내 아이 문제로 화가 나서 갔다가 오히려 가해 아동에게 연민을 느끼며 담임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얘기를 하고 아무 대책도 못 세우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세째를 불러서 그 아이와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아이는 아이대로 동양인이라는 자기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자기를 밀치고 괴롭히기에 무심코 '하지마' 라고 한국말이 튀어나왔는데 그 아이가 당장에 체육 선생님에게 가서 우리 아이가 자기를 돼지라고 불렀다고 일러바쳤다고 했다. 아무리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은 체육 선생님에 대한 원망으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아이를 보니 아까까지 상대 아이가 측은했던 마음이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꾹 참으며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영은아, 이 세상에는 너를 싫어하고 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거란다. 그래도 너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꼭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러면 된 거야. 그러면 너는 성공한 삶을 산 거야. 엄마도 회사에 다니고 아빠도 그렇지만 회사에도 엄마 아빠가 싫어하고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꼭 하나 이상씩 있단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일을 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격의 미성숙이야. 나이는 어른이라도 사고는 아직도 아이인거지. 우리 영은이도 지금 3학년에 이렇게 싫은 아이가 있는 교실에서도 자기 할 일에 지장 받지 않고 잘 해나갈 수 있는 것을 배운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 보다 더 큰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그 친구 얘기를 오늘 엄마가 들었는데, 정말 어려운 게 많은 아이더라구. 아빠도 안 계시고 엄마도 문제가 좀 있나 봐. 그래서 아마도 친구가 더 필요했을텐데, 영은이가 전학 오기 전에는 아이들이 그래도 자기랑 많이 놀아주는 것같았는데 영은이가 온 다음에는 아이들이 모두 영은이에게 관심이 가니까 화가 났나 봐. 그래서 아마 더 괴롭히고 놀리고 했나 봐. 오히려 영은이가 큰 마음을 가지고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 아이도 바뀌지 않을까? 동양 사람의 명예를 걸고 말이야!"
동양 사람의 명예라고 거창하게 표현을 하니 아이의 얼굴색이 조금은 밝아지며 한번 해보겠다고 한다.
다음 날 나도 다시 학교에 가서 학급에서 자원봉사하는 엄마들 목록에 내 이름을 적어넣고 매 주 하루씩 반에 가서 공부가 떨어지는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일을 자원했다. 당연히(!) 내 담당은 그 아이가 되었고, 처음에는 거부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시간이 가면서 자기 고민도 얘기를 하고 그렇게 싫어하던 산수도 성의껏 따라하는 발전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왜 자기를 싫어하지 않냐고 대뜸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자기가 내 딸을 괴롭혔는데 왜 다른 엄마들같으면 자기를 싫어하고 뒤에서 수근거릴텐데 나는 자기에게 오히려 더 잘해주냐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제 겨우 만 8 살 한없이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부족함이 아이의 마음을 한없이 상하고 찢기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돌았다. 내 딸하고의 문제는 너희 둘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고 나는 너하고 잘 지내보고 싶다고 하자 자기가 뚱뚱한데도 괜찮냐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묻자 자기 엄마는 늘 자기더러 돼지같은 X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양 볼에 젖살이 아직 남아있는 아이가 듣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언어학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그 엄마의 상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절대로 돼지가 아니고 내 눈에는 천사처럼 이쁘고 착한 아이로밖에 안보인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내 딸보다 자기가 더 좋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건 아니라고 했다. 너희 엄마에게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듯이 내게는 우리 딸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너는 두 번째라고 했더니 그래도 좋은지 활짝 웃어보였다.
그 뒤부터 아이가 우리 아이와도 사이 좋게 지내고 왠일인지 수업시간에도 떠들고 말썽부리는 일이 줄어들었고 나와 만나면 저멀리에서도 뛰어와서 안기곤 했다. 아쉽게도 몇 달 뒤 엄마가 직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학급에서 봉사를 할 때마다 비어있는 그 아이의 자리를 보면 활짝 웃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곤 했다. 전학가기 전 날에 그 아이가 나에게 해 준 말도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내 말을 듣고 가서 자기 엄마에게 자기가 엄마의 보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엄마가 막 울더라는 얘기를 수줍게 전해주고 자기는 이제 돼지가 아니라 보물이라고 하고 떠나갔다. 어디선가 그 말을 오래 오래 잊지 않고 또다시 있을지도 모를 엄마의 학대에도 넘어지지 않고 자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중학교에 입학해 아이 티를 벗어가는 세째와 지금도 가끔 그 아이 얘기를 한다.
"엄마, 사브리나 생각나요? 나 그때 참 많이 배웠어요."
"그래? 너 그 때 속 많이 상했었지?"
"첫째, 내 스스로 내가 동양 사람이라고 움추러들면 오히려 더 놀림을 받는다는 것, 둘째,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도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 세째,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 일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적군도 아군도 다 나 하기 나름이라는 것! 맞지요?"
제가 말하고도 스스로 대견한지 활짝 웃는 아이가 갑자기 훌쩍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하고 속상한 건 아니니?"
"아니에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훨씬 좋은 상황이었는데 좀 잘해줄 걸 괜히 싸우고 그랬어요."
부모가 아이의 평생 동안 아이의 곁에서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의 해답을 언제나 명쾌하게 제시해줄 수 있고, 문제가 될만한 것들은 아예 싹을 잘라버려주고, 아이의 적군들은 다 대신 물리쳐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그런데 부모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아이 곁에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한정된 시간 동안 인생의 기술을 최대한 많이 가르쳐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수 백억의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돈으로 절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결국 아이 스스로가 최소한의 상처를 받으며 하루 하루 담대하게 세상을 헤쳐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길이 가장 유용한 유산이 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적군은 아마도 수 천 수 만명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군이라 이름 붙여진 그들 중에 용케 아군으로 돌이킬 사람들을 찾아낼 기술이 있다면 아이의 삶이 조금이라도 덜 고단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엄마의 바램이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7081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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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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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0-06 22: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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