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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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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사랑

| 조회수 : 2,693 | 추천수 : 223
작성일 : 2009-10-05 22:30:23
몇 년 전 전남의 모대학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들을 위한 특강에 강사로 갈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내가 일하던 분야인 광통신 분야의 시장동향이나 취업 전망 등에 관한 주제로 강의해주기를 원했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고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각종 입사시헙과 면접을 겪으며 실패도 맞보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는 경험담들을 들으며 각자의 마음 속 깊이 박혀있는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에게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이 두려움의 극복은 우리의 모든 행동의 성과와도 연결이 되는데, 가장 가시적인 것은 우선 발표력이다.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수록 남 앞에 서서 말하고 발표하는 일이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감의 결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자신감은 과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과 비례하는 것일까. 실제로 일류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많은 연구 조사들에 의하면 개인의 실력과 자신감이 반비례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하니 나름대로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자신감이 팽배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많은 심리학자들과 아동교육학자들은 자신감의 근원을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본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부모의 사랑은 당연히 무조건적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부모의 입장이 되고 보면 아무 조건 없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말썽을 피워도, 성적이 나빠도, 이유없이 심통을 부리고 무례하게 굴어도,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도 사심없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 것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부모는 무엇이든지 잘하고 남에게 칭찬을 받는 자식만을 사랑한다고 생각되어질 것이다.

미국의 엄마들은 종종 "I love you dearly, but I don't like your behavior (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네 행동은 싫어해)" 라는 말을 한다. 아이 자체와 아이의 행동을 분리해서 생각하겠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인 이상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늘 변함이 없는 것이 기정 사실이고, 다만 때때로 아이가 보이는 잘못된 행동은 늘 좋아해줄 수 없다는 매우 논리적인 표현이다.

욱 하는 마음에 밉다는 말부터 뱉어버리기 쉬운 한국적 사고에서는 어쩌면 수용되기 어려운 표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우선 사랑한다는 말부터 하고 시작하는 엄마의 마음의 여유는 배워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나도 억지로라도 그렇게 말해보려는 노력을 한다. 때때로 감정이 앞서 화부터 냈을 때에는 반드시 아이를 다시 불러 앉혀놓고 "엄마가 깜빡 잊고 말을 못했는데, 네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요만큼도 변함이 없다" 라고 덧붙인다.

이십 대 중반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내게 돌을 던져도 단 한 사람 나를 믿어주고 나를 대신해서 돌을 맞아 줄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삼십여명 중에 너 댓 학생만 주저하며 손을 들었다. 그들을 대신해줄 방패는 모두 어머니라고들 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왜 어머니가 자신들을 믿어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으랴만은 그 사랑을 온전히 전달되어 아이의 마음 속에 남기까지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십 대를 지나 보내며 취업이 쉽지 않은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이 처음으로 맞보는 사회는 캠퍼스 벚꽃 그늘 아래에 비하면 얼마나 차갑고 냉혹한지 모른다. 하지만 취업이 어려운 사회보다 더 이들의 마음을 다치는 것은 입사를 허락하지 않는 회사들보다는 취업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루만져 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가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있을 때 초등학교 이학년이던 세째의 일기장을 보고 남편과 박장대소를 했었다.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는 일기를 몇 번이나 연거퍼 안 써가서 야단을 맞았다기에 집에서도 야단을 쳤더니 야단을 맞은 유감을 일기에 적어 놓은 것이다.
"일기를 안 써가서 선생님에게 야단 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까지 야단을 치니 너무 속이 상한다. 우리 엄마와 선생님은 일기를 잘 쓰는 아이만 사랑하나 보다. 나는 일기를 쓰는 일이 정말 피곤하다"

학교에 가져가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면 분명히 선생님이 읽어 볼텐데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썼다는 것이 대담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다시 고쳐 쓰라고 하려다가 연거퍼 야단을 맞으니 속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고 그래도 제 생각을 솔직히 표현한 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여덟 살, 철자법도 제대로 모르면서도 부당하다는 생각과 마음이 상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새로이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과소평가하기 쉬운가를 느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세째를 따로 불러 일기장 얘기를 하며 엄마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지만 숙제를 안해가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일러주었더니 " 알아요. 'love' 와 'like' 의 차이 얘기잖아요"  라며 제가 결론을 내린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는데 싫을 때도 있거든요"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붙이고 오는 마음이 되어 언제 엄마가 싫으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그래? 엄마는 영은이가 싫을 때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람 사이인데 어떻게 늘 좋기만 하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위해 항상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한다. 그 마음이 잘 전달이 된다면 아이는 자신의 평생을 지탱해 줄 버팀목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19470428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또빈
    '09.10.6 5:19 PM

    딸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반성해봅니다

    과연 아이들에게 내 사랑이 얼마나 전달이 되고있는것일까..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숙제로 다가오네요....

  • 2. 메이플우드
    '09.10.6 5:23 PM

    항상 많은 깨달음 얻고 갑니다..

    보석 같은 글들 감사드립니다.

  • 3. 동경미
    '09.10.7 1:20 AM

    또빈 님, 저에게도 언제나 큰 숙제지요. 부모는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때로는 아이들은 그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때가 많으니 말이에요.

    메이플우드 님, 감사합니다.

  • 4. jenna
    '09.10.8 9:37 PM

    아이를 혼내고 제가 안아주며 꼭 하는 말이죠.
    "--가 아무리 잘못된 행동을 해도 엄마는 --를 변함없이 너무 사랑해"

    아이가 그 말에 참 큰 위로를 받나 보더군요.
    이제는 자기가 자진해서

    "엄마,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엄마 나 사랑하지?"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엄마가 날 혼낼때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거 같은 맘이 들어."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저는 그 말을 아침 저녁으로 반복합니다..^^;;;
    언제쯤이면 믿을까요.

  • 5. 동경미
    '09.10.9 12:32 PM

    커피중독님,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아요. 볼 때마다 안아주고 말해주고 스킨쉽도 많이 해주세요. 특히 남자아이들은 그렇게 부비고 해줄 시간이 더 짧답니다.

    jenna 님, 말로는 안 믿는 것같아도 자꾸 반복해주면 그게 아이들 마음에 저축처럼 쌓인답니다. 어른이 되면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그 저축통장에서 그 저축통장에서 조금씩 부모의 사랑을 빼어가면서 위로를 받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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