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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엄마는 공사중

| 조회수 : 2,301 | 추천수 : 256
작성일 : 2009-10-01 22:34:04
우리 집 냉장고에 수많은 사진들과 각종 공지 사항들 틈에 오랜 세월 이사를 다니면서도 붙여놓은 메모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이고 또 하나는 "엄마는 아직도 공사중!!! 기다려주세요!!! (MOM is under construction!!! Please bear with her!!!" 이라는 말이다.

늦은 결혼으로 설흔에 첫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 씩 네 딸을 낳으며 나는 매번 엄마 노릇은 꽤 자신이 붙었다는 착각을 종종 하곤 했다. 첫 아이 때보다는 둘째가 조금 수월한 것같고 세째 때에는 또 둘째 때보다는 아는 것도 늘고 힘은 들어도 요령이 생기니 그래도 할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나의 엄마 노릇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식 교육만 받고 성장한 나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 교육에 뿌리를 내린 우리 아이들과는 엄청난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영어로 말을 해도 한국어로 말을 해도 우리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이임을 깨달으면서 난감함이 시작되었다. 의사소통이란 어차피 언어적 부분은 겨우 30% 만 차지하고 나머지 70%는 언어를 제외한 부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내 성에 차지 않는 나의 영어실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무엇이든 완벽해야 하고 빈틈없는 것을 좋아하고 남에게 책잡히기를 싫어하는 엄마에게 네 딸들은 실수의 미학을 가르쳐주었다. 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나도 같이 학생이 되어 미국의 인성교육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진 빚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행히 아이들이 공부도 행실도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지만,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늘 전전긍긍 조금이라도 잘못될까봐 안달을 하는 그 모습이었다.

어쩌다 공부시간에 주의라도 받았다고 하면 하늘이 무너진 듯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고 다음 날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담임 선생님의 안색을 수없이 살피는 엄마의 소심함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숨막히지 않고 자랐다면 남편의 영향으로 타고난 낙천적 성격인 것같다.  

아이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할 때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쿨쿨 잠이 든 남편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 적도 많았다. 나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만큼 애가 타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잠이 올까. 다음 날 볼멘 소리로 물으면 그때마다 남편은 꼭같은 말을 했다.
"난 우리 애들을 믿어. 다들 잘될 거야. 어떤 자질구레한 작은 일들을 겪더라도 끝은 해피엔딩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으라구."

큰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워낙에 어려서부터 착실하기도 했고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던 아이라서 유난히 기대를 많이 했었다. 당시에 집안 사정이 경제적으로 어수선할 때였기에 어쩌면 아이를 통해 근심을 잊어보고자 했던 나의 이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중학교 졸업식 때 상장을 전달하지 않고 졸업식 며칠 전에 상을 받는 아이들만 모아놓고 따로 시상식을 가진다. 자기가 무슨 상을 받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그저 상을 받는다는 것만 알고 가는 자리라 한껏 기대에 부풀게 마련이다. 나도 입이 귀에 걸려 팔불출처럼 아이 손을 붙잡고 시상식에 참석을 했다. 중학교는 6학년부터인데, 7학년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와서 중간부터 다닌 아이가 상까지 타면서 졸업을 한다는 게 기특하기만 했다. 그런데 욕심이 욕심을 낳는다고, GPA (평점)에 따른 상, 각 과목 우수상, 행실의 모범상, 봉사활동상 등을 받아오는 아이를 보면서 슬그머니 채워지지 못한 욕심이 올라왔다. 과목 우수상에서 내 맘같아서는 아이가 영어나 수학 과목으로 상을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않고 그 과목에서는 아깝게 차석이고 컴퓨터에서는 우수상을 받아온 점, 그리고 다른 모든 과목이 A학점이었는데 체육이 아슬아슬하게 B가 되는 바람에 평점 4.0 만점을 놓친 점 등에 살짝 실망이 되기 시작했다. 무언가 2% 부족한 기분이었다.

마음에서는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체면을 잘 지켜야겟다고 생각했는데도 내 안색의 변화를 눈치 챈 아이가 물어왔다.
"엄마, 왜 별로 안 기뻐보여요? 아까 들어올 때는 그렇게 웃고 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러네요?"
한 번만 물었으면 꾹 참고 지나갔을텐데 재차 캐물으니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왜 그러긴...너무 아까워서 그러지. 1, 2 점 차이로 그렇게 상을 놓친 게 너무 아깝잖아. 그동안 노력을 많이 했는데..."
상장을 한아름 끌어안고 환하게 웃고 있던 딸아이의 안색이 변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보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나온 말을 주워담을 수가 없었다.
"엄마,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남이 무슨 상을 탔는지에 왜 축하를 안하고 마음 상해야 돼요? 난 중간에 들어와서 이만큼 했으면 정말 잘항 것같아서 기분이 좋은데...내 친구들도 다 날 부러워했어요."

집에 돌아와 회사 일로 미처 참석을 못한 남편에게 털어놓으니 핀잔을 준다.
"당신이 너무 했네. 난 그정도는 기대도 안했었는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뭘 밀어준 것도 별로 없는데 그만큼 해왔으면 기적인 거라구. 난 쟤가 천재같은데..."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이 방으로 가서 부녀 간의 대화가 한참이 가도 끝이 안나는 것을 보며 이래서 자식을 혼자 키우면 어렵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어리석게 굴었어도 다른 한편에 나를 이해해주는 아빠가 있으니 큰 아이는 천만군을 얻은 기분일 것이다.

졸업식에 온 가족이 꽃다발을 사가지고 가서 나는 또 한번 반성을 했다. 주위에 왁자지껄 무슨 큰 잔치를 하는 듯이 갖가지 색깔 풍선에 식구 수대로 사온 꽃다발에 먹을 것까지 다 싸들고 온 멕시코 계 가족들이 도처에서 기쁨을 못이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딸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가 상을 많이 받아 그렇게 기쁜 것은 아니고 상의 숫자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를 축하해주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는 복장의 아이에게도 한껏 키스를 퍼붓는 아빠들의 모습이 며칠 전 아이의 상을 가지고 실망하던 나의 미성숙한 인격과 얼마나 대조를 이루던지 아이에게 왠지 부끄럽기가지 했다. 멕시코 아빠 못지 않게 딸의 성실한 노력의 결과를 기뻐해주고 대견해주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입이 귀에 걸려있던 고슴도치 아빠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같이 서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며 아빠 품으로 간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엄마는 아직도 공사중이다. 언제 이 공사가 끝날지 알 수 없고 기약도 없지만 그래도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날마다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성장하는 엄마가 되지 않을까. 작년의 엄마보다는 올해의 엄마가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면 좋을텐데 다른 모든 것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개선되는 모습이 잘 보이는데 엄마 노릇은 아무리 해도 내 키가 자라는 것이 잘 보이질 않는 것을 보면 이 공사가 쉽게 끝날 것이 아닌가 보다. 오늘도 나는 공사를 빨리 끝내 허술한 엄마로 남지 않고 천천히 튼실한 공사를 해나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돌아서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미안하다, 딸들아. 엄마는 아직도 공사중이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7056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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