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 대학살은 1923년 일본 도쿄도 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간토 대지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하여 조선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무차별적인 대량 학살 사건이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關東大地震朝鮮人虐殺事件) 또는 '1923년 조선인 대학살'이라고도 불린다. 희생자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 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추가 자료가 발굴되면서, 희생자가 약 2만 3,058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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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 보고한 바에 의하면, 동경에서 752명, 가나가와현에서 1,052명, 사이타마현에서 239명, 지바현에서 293명 등 각지에서 6,661명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체조차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살이 가장 먼저 행해진 동경과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중심이 되어 행해졌고, 지바·사이타마현 등지에서는 민족배외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자경단에 의해 행해졌다.
이들 자경단은 죽창·일본도·곤봉·철봉 등을 들고 도망치는 한국인들을 붙잡아 무차별 학살하였으며, 심지어 경무서내로 도망친 한국인들까지 쫓아 들어와 학살하였는데도 일본 관헌은 사실상 이를 방조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10월 20일 학살 사건의 보도 금지를 해제하였으나 그들은 군대·관헌의 학살은 모두 은폐하고, 그 책임을 자경단으로 돌리는 데만 급급하였다.
그 뒤 일부 자경단원은 형식상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으나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모두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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