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매일 지나다니는 동네 골목에 카페가 하나 있어요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는데 시그니처 메뉴를 적어
문 앞에 내놓은 흑판 간판에 어느날 눈길이 갔어요.
계절마다 이름을 붙여 라떼를 만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9월 어느날 처음 인식했을 때 거기에
"가을라떼"라고 적혀있는데
그게 너무 유혹적인 거에요.
수제밤크림에 시나몬스틱과 파우더를 넣었다고 적혀있는데
내가 올 가을 가기 전에 책 한 권 들고 여기 꼭 가서
예쁜 머그잔에 가을라떼 한 잔 마시면서 책읽어야지
암 테이크아웃은 맛이 아니지
지나갈 때마다 다짐을 하면서
9월이 10월 되고 다시 11월이 되고...
11월에 날씨가 미친듯이 추워지면서 조바심이 났어요.
아 겨울이 왔네 가을라떼는 이제 팔지 않으시겠네..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영하 8도네.. 하..
그런데 영하의 추위에도 간판에는 꿋꿋하게
가을라떼가 적혀있었어요
분홍분필로 그린 단풍잎과 함께.
위안을 얻으면서 그러나 저는 11월 말이 지나도록
가을라떼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도 있어요. 그 앞을 지나갈 땐 가을라떼 꼭 마셔야지 해놓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제 건망증도 한몫했죠.
12월이 되고 그 골목을 지나는데..
드디어 간판에 가을라떼가 사라지고 겨울라떼가 등장했어요.
토피넛크림에 마시멜로우를 올렸다고
분홍분필로 그려진 단풍잎은 지워지고
눈사람이 그려져있었어요.
그때의 실망감과 아쉬움과 자책감은...
세달이나 뭐했냐 대체 너란 사람...
그리고 12월도 벌써 한주가 지나가는 오늘,
운동이 끝나고 땀흘리며 그 골목을 지나가는데...
버릇처럼 겨울라떼 라고 쓰인 입간판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지나치는데
누가 자꾸 뒤통수를 잡아끄는 것 같은 거에요?
뒤를 저도 모르게 돌아봤는데
가을라떼!!!
입간판 뒷쪽에 그 분홍분필단풍그림이랑 가을라떼 글씨가
여전히 써있는 거에요!
지나다니면서 봤을 때 사장님 성정이 귀찮아서 앞뒤만 바꿔놓을 정도로 게으른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모자 푹 눌러쓰고 땀 좀 흘렸지만 염치 불구하고
용기내어 들어가서 머뭇거리며 물어봤죠
지금은 이제 가을라떼 안하시죠?
아니요 합니다
비록 책은 못가져왔지만 운동복 차림이지만
시나몬스틱 휘 저어가며
밤크림 들어간
살짝 달큰한 라떼
(저 원래 달고 유유들어간 커피 안좋아하거든요 )
마시고 있어요
세 달 기다려서 마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입니다
늘 헛헛하고 외롭고 정크푸드로 배채우던 저
오늘만큼은 가짜식욕이 더 일지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