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한명도 없는 외국에서
이민이나 학업 시작하신분 있으세요?
그 외로움과 향수를 어떻게 견뎠는지요
한국인 한명도 없는 외국에서
이민이나 학업 시작하신분 있으세요?
그 외로움과 향수를 어떻게 견뎠는지요
그냥 상상만 해도 장난아니게 힘들듯.. 전 엄청나게 목표가 확실해야 견딜수 있을것 같아요
그런 나라가 어디에요?
세계 곧곧에 한국인 없는 나라 잘 없더라구요.
아프리카 오지에도 선교사들 있어요
20년 전쯤에 아이들 데리고 태국 치앙마이에서 3년 살았어요
집주변이나 아이 학교 유치원에 한국사람 한명도 없었어요
저는 워낙 혼자서 하는 게 편한 사람이라 외로움 같은거 별로 안느꼈어요
성향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한국인 없는데도 없지만
외롭다고 한인교회 갔다가 사기당하는 한국인도 많아요.
한국에서 사기차고 외국으로 도망가서
한인 상대로 또 사기치는 사람들 많아요
저는 시골이라서 저희 동네 아시안 가족한명하고 중국, 인도 입양아 2-3명 있고 아시안 자체가 없어요
살기 편해요. 특히 공부하고 회사다니면 더더욱 불편함을 못 느낄 거예요
유튜브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들으며
댓글을 보다가 미국에서 한국인 한명도 없는
작은도시에서 이민생활 하신분이 트윈 폴리오 테이프
들으면서 외로움과 힘든 외국생활을 견뎌내시고
또 한분도 비행기 나르는 소리에 두고온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들었답니다
노래를 들으며 댓글을 읽으니 그 고달픔과 외로움이 느껴지고
가슴이 먹먹 합니다
한국 다른 도시의 이사도 적응이 힘든 저는 그 용기도 부럽구요
두 댓글 다
78년도 79년도에 외국생활 시작하셨대요
유튜브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들으며
댓글을 보다가 미국 한국인 한명도 없는
작은도시에서 이민생활 하신분이 트윈 폴리오 테이프
들으면서 외로움과 힘든 외국생활을 견뎌내시고
또 한분도 비행기 나르는 소리에 두고온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들었답니다
노래를 들으며 댓글을 읽으니 그 고달픔과 외로움이 느껴지고
가슴이 먹먹 합니다
한국 다른 도시의 이사도 적응이 힘든 저는 그 용기도 부럽구요
유튜브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들으며
댓글을 보다가 미국 한국인 한명도 없는
작은도시에서 이민생활 하신분이 트윈 폴리오 테이프
들으면서 외로움과 힘든 외국생활을 견뎌내시고
또 한분도 비행기 나르는 소리에 두고온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들었답니다
노래를 들으며 댓글을 읽으니 그 고달픔과 외로움이 느껴지고
가슴이 먹먹 합니다
제 경우 뭐 외롭기는.. 향수니 뭐니 전혀 없었어요
공부하느라 바빠서..
졸업하고는 일하느라..
인도 있을때 한국인이 없는 지역이라.
고생했어요. 음식도 없고. 교류도 없고.
현지 적응 하는 방법외엔...
한인이 대여섯명? 있다고 말은 들었으나 전혀 가까이 만날 기회도 없었고 제 성향이 찾아다니거나 먼저 누구한테 다가서는 스턀이 아니라 모르고 지냈는데 그 덕분에 현지 친구들 내지는 외국 친구들 많이 사귀었고 언어도 빨리 늘었고 그 나라의 문화에 빨리 적응했어요.
가끔 일년에 두어번쯤은 그도시에서 구할수 없어 만들어 먹지 못하는 한식이 너무 먹고싶긴 했네요.
워낙 혼자서도 잘 지내고 또 공부,일 너무 바빠서 정신 없었고
성향이 유럽쪽과 더 가까운지...전생에 유럽여자였을거란 말도 많이 들었네요^^
저는 힌국인 많이 사는 나라이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성격인데
아이 어릴때 고향땅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다가 목이 메었던 적이 있어요.
그 노래가 그렇게 슬픈노래인지 그때 처음 알았네요.
향수병을 견디는 방법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 였어요.
저같은 경우
30년 전에 그런 곳에서 살았는데
한국이나 한국 사람 다 그리운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여기서 살면서 그런 적이 없어요.
여기가 더 재밌고 저랑 더 잘 맞아요
한국 음식보다 여기 음식이 더 맛있고..
부모님께서도 기력 있으실 때에는 일년에 2/3회씩 다녀 가시고.
그냥 다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친해지고 자녀를 많이 나으시더군요
친해지고 자녀를 많이 낳으시더군요
미국인데도 한 시간 운전하고 갈 수 있는 거리 이내에 한국 사람이 없어요. 동양인도 별로 없고요. 일 때문에 여기 정착하게 되었는데 바빠서 외롭다고 느껴본 적 없고 동료들이랑 친구처럼 가족처럼 서로 챙겨주고 잘 지내요. 한국에 대한 공간적인 향수는 없어요. 제가 추억을 가진 장소들은 다 바뀌고 철거되고 재개발 되었으니까요. 한국 음식은 여기서 비슷하게 만들어 먹으면 되니까 이제는 김치 명인 소리를 다 듣게 되었고요. 보고 싶은 가족들은 일년에 한번 휴가가서 만나요, 전화 자주하고요.
대단하시네요
다들 씩씩
전 한국사람 많은 외국에서 살았는데도
타지살이가 힘들었어요
오죽하며
이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자가
ㅇ국제결혼한 한국여자라고 생각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