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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뼈아픈 후회

| 조회수 : 1,236 | 추천수 : 3
작성일 : 2019-10-09 03:18:37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밀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 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음으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처음 읽었을 때엔

무척이나 찔렸던 시


세월 지나 다시 읽으니

뼈아픈 후회는 없다


나를 위했던

너를 위했던

채웠던 시간이

애쓰던 사랑이라는 거


그걸로 올킬


그 누구를 위한 사랑은

그 누구도 위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 아래는 쑥언니 사설

* 사진은 사랑하는 계절을 떠나 보내는 우리 막내의 노숙자 스삐릿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너와나ㅡ
    '19.10.9 11:37 PM

    어디인가
    멋지네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각나네요.

  • 쑥과마눌
    '19.10.10 4:10 AM

    동네 공원이네요.
    나무도 실연한 소년의 맴을 알아 주는듯해요

  • 2. 행복나눔미소
    '19.10.10 11:53 PM


    실연이라니 ㅠ
    아픈만큼 성숙해질터인데
    소년에게 위로되는 말은 아니지요 ㅠㅠ

    건성으로 보다가
    숨은 그림 찾기 했네요 ㅎ

  • 쑥과마눌
    '19.10.11 1:33 AM

    계절에 실연당하는 건
    당연지사 ㅋ

  • 3. 피어나
    '19.10.11 10:48 AM

    소짜 아니고 막내라 쓰셔서 쑥과 마눌님 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시를 읽으니 뭔가 뜨끔한 게 잘못 산 게 분명합니다 ㅠㅠ

  • 쑥과마눌
    '19.10.11 11:30 AM

    우리는 고작 인간
    나를 위한 사랑이라도..
    나를 위한 희생이라도..
    그게 어딘겨

    내 맴은 내가 알아 하니
    니 맴은 니가 알아 받아
    오고 가는 지옥 속에
    커져 가는 폐허만 어찌 남기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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