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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말 받아주기 read back

블링크 조회수 : 1,118
작성일 : 2011-02-06 18:54:41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언니,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저와 제 어머니와의 갈등은 작은 건데요,
양심과 규범에 대한 잣대가 너무 경직되어 있으셔서
모든 문제를 다양성보다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만 보셔서 생기는 문제예요.


약간 속물적인 면이나 유연한 면이 있으시면 좋을텐데,
제가 '시아버지의 독단땜에 힘들다'..... 그럼
'그래도 잘 해드려야 돼' .......그럼 대화가 이어지질 않아요.
구체적으로 뭐가 힘든지 궁금하지도 않으신데다.


  
힘들다는 얘기 조금만 맞장구 쳐 주면 마음 다독여질 텐데,
그렇게 하면 제가 시아버지 냉대라도 하고
홧김에 이혼이라도 할까봐 지레 걱정하시는 눈치.
좋은 학교에서 교육 많이 받으셨는데도
대화 센스 너무 없으셔서  
'주말의 명화' 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같으세요.



그런데 저역시 동생이 뭐가 힘들다 그럼
남에겐 관대하면서도 동생에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서 그 나약함이 막 싫어지며
"그 정도도 못 견디면 "
병원처럼 정말 빡센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는 여자들은 뭐냐
이런 식으로 말을 받는 경우가 꽤 있어요,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드레싱 해 주시는 동안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제가 한의원에 갔었어요, " 그랬더니  
"한의원에 갔었어요 ? " 그러시더라구요,
애써 들어주는게 아니라 진짜 마음으로 듣는 사람처럼 궁금하다는 듯한 어조로.


"네, 피부문제로요."
"그래 거기선 뭐래요 ? "

" 면역기능이 약해져서 그런거니 샴푸나 비누 화장품 이런 거 너무 자주 쓰지 말고 써도 자연성분으로 쓰래요."
" 맞아요, 면역이 중요해요. 요즘은 지나치게 청결한 게 더 문제예요. 뭐 그렇게 매일매일 머리감을 필요 없어요"

지성피부라 매일 머리감지 않는게 참 어려운 사람인 나,
"하하하"
" 왜요 ? 몇 백만 년전에 원시인들은 머리 자주 안 감았잖아요." ( 웃는 이유 정확히 간파. )


한의원 간 이야기를 하는게 서양의학에 대한 불신이나 폄하로 들릴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뒤로 미루고
환자가 계속 이야기하고 싶게 말을 받아 주시다 보니,
대화를 이어갈 용기도 나고, 굉장히 기분 좋더라구요.
남자 선생님이셨지만, 아이의 말 열심히 받아주는, 다정한 엄마같은 느낌이요.


생각해 보니, 1년 전에 같은 선생님에게 제가 "선생님, 면역이나 운동, 식이요법이 중요하지 않나요 ?"
그랬더니 " 그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일단은 치료 받는 게 중요해요."
뭔가 뉘앙스가 다르지 않나요. 그때는  면역이야기 다시 꺼내고 싶지 않더라구요.  



다른 병원에 가서 직원게시판에 보니,
전화받을 때도 상대와의 정확한 소통을 위해 read back 하라고 써 있더군요.


그 이후, 저희집 아이에게 대화하는 방식이 조금더 정교해졌어요.
말 끝을 받아주면 아이가 느끼는
세밀한 기쁨과 존중받는 느낌,
그걸 아이 입장이 되어 정확히 느껴본 후라 이전보다 그렇게 하기가 덜 귀찮더라구요.  
제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로 개입시키구요,
그러다 보니 대화가 피상적인  1 층에서 멈추는게 아니라
17, 18층까지 계속 정밀한 탑을 위로 올리게 되구요.



가트만 박사의 '공감대화'란 책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교정해 준다. "


그런데 지나치게 반듯함을 추구하는 부모들은 이 문장의 앞부분은 통째로 들어내고
뒷부분에만 너무 신경쓰는 면이 있어요.
내 판단을 적게 개입시키며 감정을 공감해주려 계속 노력 중인데,
잘 되면 나머지 후기 올릴께요.



  










IP : 114.207.xxx.160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2.6 7:02 PM (121.189.xxx.198)

    좋은 글 감사..프린팅 좀 할게요.. 본체에 붙혀두고 연습해야겠어요

  • 2. 쓸개코
    '11.2.6 7:07 PM (122.36.xxx.13)

    좋은글이에요^^
    무슨말씀인지도 알겠고요~
    저도 모든관계에서 그런식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노력중인데
    쉽게 바뀌진 않겠지요?^^

  • 3.
    '11.2.6 7:13 PM (121.189.xxx.198)

    제가 갔던 한의원과...가정의학과에서..선생님이 저런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너무 좋고 기억에 남았었어요

  • 4. 솔직히
    '11.2.6 7:23 PM (114.207.xxx.160)

    본인도 본인 언어습관 잘 몰라요,

    제가 직장에선 되게 겸손하고 따뜻한 말투 써서 몰랐는데요.
    동생들말로는 가족들에겐 중요한 사안에 대해선
    제가 되게 강압적인 말투로 명령조로 말한다네요.
    첫째라고 다 명령조로 말하진 않을텐데 말이죠.

    미국에서 고소당하는 의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 적은 글 봤는데,
    말의 내용이나 수술실력이 아니라 단지 우월감 섞인 어조나 말투라는 군요.

  • 5. 저도
    '11.2.6 7:40 PM (221.139.xxx.143)

    한의원 선생님 말씀처럼이 아니라 글쓴 님 어머님처럼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셔서
    상처를 많이 받았었는데 지금 저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 놀랄 때가 있어요. 많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힘들죠. 처음부터 감정을 받아주는 대화를 하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제가 고쳐나가야겠죠.

  • 6. 저희 어머니도
    '11.2.6 8:24 PM (110.10.xxx.29)

    저의 친정 엄마가 저렇게 받아들이세요.
    내가 어떤 말씀을 드리면 그 감정을 받아주는게 아니라 자신과 주변사람 얘기만 늘어놓구요
    아니면 그거 틀린거다~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엄마에게 무슨 얘길 하기도싫구요....
    내가 얘길하면 내 얘기를 좀 들어주셨으면....내 입장에서도 이해를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어렵게 키우시고 제가 결혼한지 12년이 지났는데...점점 이야기 하기가 싫어져서...죄짓는 것 같고 괴롭네요.ㅠㅠ

  • 7. ...
    '11.2.6 9:41 PM (220.88.xxx.219)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말해야겠어요.

  • 8. 휘~
    '11.2.6 10:03 PM (123.214.xxx.130)

    너무 좋은글이네요. 저도 그런 생각많이하는데, 언어습관이 그렇질못해... 그런사람들보면 참 부러워요.
    나름 애쓰는데도 잘 안고쳐지더라구욤.. 정말 첫댓글님처럼 포스트잇에 써놓고 붙여놔야겠어요^^

  • 9. *
    '11.2.7 12:40 AM (203.234.xxx.118)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얘기 읽는 것만으로도 훈훈하네요.
    제 아이들에게도 저렇게 말해야 할텐데요.

  • 10. 기술
    '11.2.7 5:09 AM (112.169.xxx.211)

    대화의 기술이 참 중요하죠.. 진심을 주고받는..
    저도 이 글 퍼갈게요.

  • 11. ㅠㅠ
    '11.2.7 11:06 AM (115.136.xxx.24)

    명절 내내 제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스트레스 받고 나서 이 글을 읽으니
    더더욱 가슴에 와닿네요,,
    read back..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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