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지금 교과서에는 이 수필 없어졌나요?

친일타도 조회수 : 294
작성일 : 2009-11-09 12:28:20
일제시대때 경성제대 나와서 몇년간 군수생활한 것에 대해 평생 친일행적에 대해 참회했던
작년에 돌아가신 이항녕 선생님 수필 말이예요.
갑자기 생각나서 인터넷 검색해서 올려봅니다.

---------------------------------------------------------------------------------------

깨어진 그릇  (이항녕)


광복 전에, 나는 경남에서 군수 노릇을 한 일이 있다. 광복이 되자 나는 그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그래서 다소나마 속죄가 될까 하여 교육계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교육에 종사한다는 것이 전비에 대한 속죄가 되는지에 관해선 지금도 의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가장 신성한 사업이다. 그런 사업에 죄 있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지금, 내가 속죄를 한답시고 교육계에 들어온 것이 교육에 대한 모독이 아니었나 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속죄의 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 학교 평교사 되기를 바랐다. 기왕 교육계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이상, 가장 기초가 되는 일부터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국민 학교의 평교사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국민 학교 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까닭이었다. 도청에서는, 차라리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중학교의 교사가 되라고 권했다.나는 한사코 국민 학교에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자격 없는 사람을 발령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교장은 관리직이므로 나의 경력을 참작하여 발령이 가능하다고 했다.그래서, 나는 동래군의 어느 국민 학교 교장이 되었다.

내가 그 학교에 부임한 것은 1945년 12월 초순, 날씨가 퍽 쌀쌀했다. 광복을 맞은 지 4개월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교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교장이 온다는 바람에 무척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 중략 >

나는 산길을 걸어 어느새 범어사 경내에 들어섰다. 갑자기 청정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나의 과거가 회상되었다. 동족을 괴롭힌 죄 많은 인생, 나는 큰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그래도 용서되어 새로이 인생을 출발할 수 있게 된 나에게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교육의 길이 험난하면 할수록 나의 속죄의 길은 넓혀진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삿짐을 굴리던 어린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릇은 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이 되어 부임하는 마당에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고독한 사람이겠는가? 천진 무구한 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어린이들의 호의가 뼈아프도록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또 내 새 단장을 더럽힌 꼬마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달려들어 나의 새옷을 더럽혔다는 것은 내가 결코 제외된 인간이 아니란 뜻이다. 때 낀 얼굴과 손, 나는 갑자기 달려가 그들을 덥석 껴안아 주고 싶었다.

나의 훈시를 듣는 어린이들이 만일 일사 불란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처음 보는 나를 무섭게 알고 경계하는 뜻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무질서를 탓한 건, 나에게 대한 그들의 친근감의 표현을 내가 오독한 데 기인한 것이다. 그들의 무질서한 모습들이 정답게 다가왔다.

나는 급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또, 코를 흘리는 꼬마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그 중 한 놈을 덥석 껴안아 주었다.
그 후 나는, 나의 그릇을 깬 그 어린 손, 나의 옷을 더럽힌 그 코흘리개들의 때 낀 손, 그리고 무질서로써 나를 따르던 그들의 눈을 통하여 말할 수 없는 만족과 사랑을 느끼었고, 날마다 희열에 찬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매, 이제 내가 교육의 길에 들어선 지 20년, 나는 때때로 그 깨어진 그릇, 그 때 낀 어린 손들을 생각한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IP : 203.248.xxx.13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82888 치질때문에... 대항병원 의사선생님 추천해주세요. 3 괴롭습니다... 2008/04/16 1,474
    382887 우주에 250억짜리 생쑈를 쏘다 27 .... 2008/04/16 4,424
    382886 저녁내내 우울했어요.. 8 바보 2008/04/16 1,747
    382885 일본어 아시는 분... '다이고로' 뜻이요 2 다이고로야~.. 2008/04/16 1,226
    382884 배불러 미칠것같아요 ㅠㅠㅠ 5 돼지 2008/04/16 934
    382883 오는사람도.... 전화오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사람.... 12 답답합니다 2008/04/16 2,363
    382882 지겨운 뚜쟁이들... 10 사람도아냐 2008/04/16 2,046
    382881 독서지도사.. 이 직업 어떤가요? 3 .... 2008/04/16 1,049
    382880 소심하고 내성적인 이번에 초1 된 딸래미 때문에;고민입니다. 3 씩씩하게자라.. 2008/04/16 620
    382879 어린이집에서 머릿니가 유행인 거 같은데,어쩌면 좋을까요? 6 ㅜㅜ 2008/04/16 1,027
    382878 컴퓨터로 좋아하는 음악을 모닝콜을 해보자~ 2부 1 좋은 정보?.. 2008/04/16 857
    382877 퍼왔어요. 시골의사님 칼럼.. 3 의료보험 2008/04/16 1,570
    382876 6월16일 출산이면 배냇저고리는 여름용을 사야할까요? 3 예비맘 2008/04/16 656
    382875 가격표도 꼭 살펴보세요. 4 마트가시면 2008/04/16 1,053
    382874 의보,공기업 민영화 이런걸 이슈화하지 않았죠? 13 총선때 야당.. 2008/04/16 741
    382873 내가 잘못 들었나????? 2 분통 2008/04/16 974
    382872 fall in love 4 olivi.. 2008/04/16 949
    382871 18k금도 소장가치가 있는건가요? 5 2008/04/16 1,607
    382870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없어졌는데 몰랐다면....고발절차알려주세요. 17 고발절차 2008/04/16 1,710
    382869 식초건강법이요... 9 샘표간장 회.. 2008/04/16 1,125
    382868 지금 tvn에 정남규 연쇄살인사건 해요. 범죄의 재구.. 2008/04/16 927
    382867 글라스락냄새 9 커피나무 2008/04/16 1,421
    382866 최근에 치과 다녀오신분 2 아픈 이 2008/04/16 639
    382865 식기세척기 깨끗하게 설겆이 하는 방법?? 2 궁금녀 2008/04/16 731
    382864 프로폴리스? 4 비염 2008/04/16 753
    382863 티비(TV)좀 골라주세요!! 3 골라골라 2008/04/16 500
    382862 시모? 장모? 11 딴지 2008/04/16 1,287
    382861 균형감각을 상실한 정부 2 정치적 동물.. 2008/04/16 438
    382860 저 돌 맞을까요? 34 차라리 돌 .. 2008/04/16 5,964
    382859 까페라떼나 카푸치노...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7 네스프레소 2008/04/16 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