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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마이클잭슨의 자선활동...

d 조회수 : 619
작성일 : 2009-06-28 22:55:22
The Early Years:


1969년,

잭슨5 (마이클이 친형제들과 결성한 그룹)는 고향인 인디애나주의 Gary시 시장인 Richard Hatcher가 주최한

자선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1972년 12월 25일 성탄절,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 재단에서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마이클은, 모타운 레코드 회사를 대표하여

잭슨5 멤버들인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700여명의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잭슨5는 “Foundation for the junior blind”-(청소년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재단) 에서 자선 콘서트에 참여하여

어린 시각 장애우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1972년 초반,

잭슨5는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 시에서

"Martin Luther King Jr. Center for Social Change"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재단)의

자선 콘서트에 참여해 자선 모금 활동 시작을 도왔습니다.


1972년 9월,

잭슨5는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극장에서

"Operation PTSH" ("People To Save Humanity-인류를 살리는 우리들; 공익단체)가 주최한 이벤트에 참가해

“Save the children”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1972년 영화인 “Black Exp[차단]osition”의 주제곡이기도 합니다.

이 이벤트에서는, 가수들의 공연 외에도 도시 속 흑인 시민들의 교회와 학교, 놀이터, 빈민가 등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차별없는 더 나은 미래 만들기를 동기부여 해주었습니다.


1974년 1월 29일,

잭슨5는 아프리카 세네갈 공화국의 수도 Dakar에서 1주간의 공연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프리칸 댄서들의 공연에 참여하여 관람도 하고 관광과 쇼핑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 그곳 거주자들의 소박한 집들을 방문해주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꺼이 사인도 해주었습니다.


1974년경,

마이클은 병원에 들려 5살난 Leslie Robinette을 만나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막 골수이식을 끝내고 수술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11년 후, 그녀는 마이클 잭슨이 그녀를 방문하여 삶의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는 일화를 여론에 알렸습니다.


1977년,

그룹 잭슨즈(1975년, ‘잭슨5’에서 그룹 이름을 ‘잭슨즈’로 바꿈)는

트리니다드토바고 독립국(서인도 제국의 독립국)의 수도인 Port-of-Spain의 가난한 지역을 방문하여

잭슨즈 콘서트에 갈 돈이 없었던 거주민들을 직접 만나주었습니다.

마이클은 또한 판지와 돌 따위의 재료로 지어진 그들의 소박한 집에 직접 들어가

카톨릭 학교 여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 같은 해에, 잭슨즈는 다른 가수들과 "Rock ‘N’ Roll Sports Classics" 라는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여기서 결국 1등을 차지해 2만달러의 상금을 받게됩니다.  이 돈은 University of California에 기부되었습니다.


1979년 1월,

마이클은 시카고 공립 도서관 <청소년 독서코너>에 책들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의 프로젝트 "Boogie To The Book Beat"(책의 재미에 빠져봐요)를 기회로

그는 독서의 중요함에 대해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The 1980's

1980년경,  

필라델피아주에서 투어를 하던 마이클과 잭슨즈는 그 지방의 한 어린이 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은 투어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기분전환을 해주자는 취지로 다른 어린이들의 병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1981년 7월 22일,

조지아주 아틀란타 시의 Omni회관에서 그룹 잭슨즈는

"Atlanta Children’s Foundation"- (아틀란타시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을 위해 특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 10만달러라는 돈이 모아졌고

이 돈은 아틀란타 도시의 어린아이 유괴나 살인을 막기 위해 좀 더 어린이 보호를 강화하자는데에 쓰여졌습니다.

마이클이 Hayvenhurst맨션에서 가족들과 살 때 (마이클은 이곳에서 1988년 네버랜드를 구입하기 전까지 거주),

그는 “Make a wish”같은 어린이 단체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기꺼이 그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언론에 잘 알려지진 않은 사실이지만, 마이클의 누이인 라토야 잭슨이 1991년 자서전에서 언급함. 마이클도 직접 자서전에 언급함)

마이클의 집에 초대된 아이들은 사탕가게에서(마이클이 사탕가게를 통째로 샀다고 하네요)

사탕도 먹고, 영화도 보고, 마이클의 다양한 애완동물도 직접 만져보고, 비디오 게임 등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1983년경,

동물을 좋아하기로 알려진 마이클은 택사스주의 한 암 연구 단체에 쓰일 예정이었던

한 마리의 침팬지를 데려와 애완동물로 길렀습니다. (이 침팬지가 '버블스'일 것이라고 추정)

그 밖에도 그는 수년에 걸쳐 여러 종류의 동물들, 심지어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도 데려와

자신의 집들 (Hayvenhurst, Neverland ranch)에 동물원을 마련해 애완동물로 삼아주었습니다.

(참고로 네버랜드 랜치는 마이클 잭슨이 나중에-1988년에- 구입함. )


1984년 4월 9일,

마이클은 “Brass ring Society” 단체를 통해 알게된 한 14살난 소년, David Smithee를

자신의 대저택으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앞으로 살날이 7주밖에 남지않은 소년인데, 그의 마지막 소원이 바로 마이클 잭슨을 만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1984년 4월 14일,

마이클은 “Mount Sinai Medical Center”라는 의료센터에 19개의 병원용 침대시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침대시설은 마이클이 "T.J. Martell Foundation for Leukemia and Cancer Research"단체에서 배급받은 시설물들입니다.


1984년 7월 5일,

잭슨즈가 “Tavern on the Green” 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이클은 그룹 잭슨즈의 빅토리 투어에서 벌어드린 수익금의 일부가
세개의 자선단체들, "The United Negro College Fund", "Camp Good Times", "T.J. Martel Foundation" 에 기부되어질 것임을 알렸습니다. 더 나아가, 매 공연마다 500석의 자리는 특별히 병약자와 병원 환자들을 위해 예약될 것이며, 그들을 들것에 실리게 하여 공연장으로 모시겠다는것도 함께 알렸습니다.


1984년 그룹 잭슨즈는 택사스주 달라스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1200개의 콘서트 티켓(3만 9천달러어치)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그들은 불치병에 걸린 8명의 아이들을 위해 플로리다주의 Jacksonville에서 특별히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마이클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14살의 Malanda Cooper라는 아이를 백스테이지에 초대해 만나고,

빅토리 투어 콘서트 테이프과 그가 콘서트 도중 직접 입었던 자켓을 줌으로써 Malanda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잭슨즈는 또한 700여명의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따로 공연을 해주었고,

“Thelma Marshall Children's Home” (어린이집)에서 40여명의 고아들을 직접 공연에 초대해 주었습니다.

이 공연에는 인디애나주 출신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서 여러가지 잡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잭슨즈가 인디애나주 출신이어서 그곳에 열성팬들이 무척 많다고함)



보도에 따르면, 같은 해에 마이클은 한명의 죽어가는 어린 환자를 특별히 만나주어

자신의 번쩍이는 검정색 장갑과 가죽자켓을 직접 건네주며 환자를 복돋아 주었다고 합니다.


1984년 12월 14일,

마이클은 빅토리 투어중 무대에서 일어난 불꽃폭발 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의"Brotman Memorial Hospital"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알아가던 중, 23살의 기계공인 Keith Perry를 알게 되었는데

이 환자는 차사고로 몸의 90%이상에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병원의 한 관계자 Judy Davis는 “마이클은 그의 용기를 복돋아 주었어요. 그와 몇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클은, 그의 후원 회사인 펩시콜라에서 벌어들인 150만 달러를

그의 이름을 딴 기관, “The Michael Jackson Burn Center For children”에 기부했습니다.

병원 의사들의 말로는, 마이클이 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기부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그가 Keith Perry를 알게 되어서라고 합니다.





1984년,

마이클은"National Campaign Against Teenage Drunk Driving"(청소년 음주운전 반대 캠페인)후원을 자청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차사고와 그에 따른 사망위험을 청소년들에게 강조하는 캠페인입니다.





1985년 1월 28일,

마이클 잭슨은 “A&M Lion Share Studios”에 도착,

엄청난 성공을 거둔 곡인 “We Are The World” (싱어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쓴)를 여러 명의 미국 가수들과 함께 녹음했습니다.

이 곡으로 총 60밀리언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이 모든 수익금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극한의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10월 21일,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perth의 “Cohuna Wildlife Sanctuary”에서 온 동물들을 만났습니다.





1986년 2월 28일,

마이클은 전화를 걸어 14살의 Donna Ashlock를 캘리포니아로 초대 - 심장 이식 후 건강회복 중인 -

엔시오의 "Hayvenhurst" 대저택에서 머물게 하며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다른 어린 환자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3월 8일에도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같은 해 그는 12살의 Danielle Finmark를 농장으로 초대했습니다. (암투병 아동 위한 “로날드 맥도날드의 좋은 시간 캠프”에 참석해)

핀마크에 따르면 그녀는 그의 주거지와 개인 동물원을 방문하고, 점심식사와 “Short Circui” 영화를 마이클과 함께 관람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해에 (1986년), 마이클 잭슨은 “마이클 잭슨 UNCF(흑인대학기금연합) 장학기금”을 설립하여

1,5 밀리언 달러를 모아 공연예술과 매스컴 분야의 청년 교육을 후원했고,

기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이 다니는 “UNCF”학교와 대학에 1년에 한 번씩 공급되었습니다.



그 해, 리포트에 따르면 기금은 97명 학생의 장학금 수여와 42개의 UNCF 학교 모든 학생의 입학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87년 9월,

마이클 잭슨은 아들이 유괴 된 후 살해 당한 일본의 한 가정에 20,000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기억해보면,  마이클은 요코하마 배드 투어 중 무대 위에서 이에 대한 리포트를 읽었으며, 일본 투어를 그 소년에게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9월 13일, 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지원하였습니다.





1987년 10월,

마이클은 30개의 개인의 아이템과 티셔츠나 선글라스 또는 스포츠용 자켓 종류의 기념품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유네스코 연설 중 밝혔으며, 수입은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 상승을 위해 투자되었습니다.

  

1987년 11월,

마이클은 영국의 "Children In Need Appeal”에 10,000 파운드를 제공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어린이 건강 시설을 방문하였습니다.





1988년 2월,

마이클의 곡 이름이기도 한  ‘Man In The Mirror’는,  “로날드 맥도날드 캠프”와 함께

어린이 암 예방 단체인 “굿 타임즈”에 그의 로열티를 지불하였습니다

같은 해, 그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수익금을 “미국 흑인 학교 기금”에 전달하였으며,

모든 콘서트의 기금을 앞서 언급한 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





1988년 3월 1일,

마이클은 펩시의 기자회견장에서 유니세프에 600,000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유니세프의 주요 기부자가 되었습니다.





1988년 4월,

마이클은 조지아 주에서 가진 3번의 아틀랜타 콘서트 티켓을 "Make A Wish Foundation”에 무료로 제공하였습니다.





1년 뒤, ITV 텔레비전은 런던 그레이트 올몬드 스트릿에 위치한 “Hospital for Sick Children”에

4000장의 마이클잭슨 콘서트 티켓을 제공했습니다. 이 티켓은 200,000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몇몇의 환자들은 마이클과 함께 여러 시설을 방문했고, 마이클은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며 환자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수십개 씩의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988년 5월 22일,

마이클은 로마에 위치한 어린이 병원 “Bambini-Gesu”에 방문해 아픈 아이들,

특히 13세 심장이식 환자인 Nunzia Glaccio에게 사인한 사진과 사탕과 레코드를 전달했습니다.

마이클은 이 병원에 100,000파운드를 기부하였습니다.





1988년 마이클은 이따금씩 열리는 음악 유명인의 경매에서 페도라 모자에 사인하여 기부하였습니다.

이 수익금은 백혈병, 암, 그리고 에이즈의 연구 기관인 T.J. Martell Foundation에 전달되었습니다.





1988년 7월 16일,

마이클은 웨일즈에서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 공주를 만나

“Prince’s Trust”(청소년을 위한 기금)을 위한 기부금으로 150,000 달러를 전달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영국 “Great Ormond Street Children’s Hospital”에 100,00 파운드를 기부하였습니다.





1988년 7월 20일,

마이클은 “Great Ormond Street Children’s Hospital”의 중환자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를 방문하여

오랜 시간 동안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앨범과 사인한 사진, 티셔츠와 같은 선물을 나누어 주며 중환자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 배드 투어 기간 (그의 다른 투어를 포함) 마이클은 백스테이지에서 콘서트에 앞서


각 지역에서의 병에 걸린 아이들과 만났으며, 마이클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대체로 마이클은 장난감을 사고 모으는데 시간을 보냈으며 이 후 이를 직접 전달했습니다.



1988년 영국에서 영예 의식을 맞이한 마이클은 고아인 10살 Jimmy Safechuck과 동행하였으며,

이 어린 미국인 고아는 마이클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1988년 8월 29일,

마이클 잭슨의 30번째 생일날, 그는 영국 리드에서 “Give For Life”자선 공연을 했습니다.

이 콘서트를 통해 얻은 130,000달러의 수익금으로 40,000명의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또한 65,000파운드를 앞서 말한 자선단체에 기부하였습니다.





1988년 10월 23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모타운 뮤지엄 “Motown Museum Historical Foundation”에 125,000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뮤지엄 역사상 가장 높은 액수의 기부금이였습니다.

또한 마이클은 검은 패도라도 기부했고, 그의 라인석 장갑과 1972년 무대의상도 기부하였습니다.





1988년 12월,

마이클은 5세 때 등유에 의해 화상을 입은 12살 David Rothenburg를 방문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50번의 재건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흉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에 마이클은 수차례 상처 입은 어린이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특수 외과 치료실을 위해 필요한 기기 마련을 위한 돈을 지불하였습니다.





1989년 1월,

마이클은 로스앤젤리스에서 있었던 자신의 콘서트 수익금을 “Childhelp U.S.A.”(아동학대에 반대단체)에 기부하였습니다.

1989년 1월 10일 그의 배드투어가 끝날 때 즈음, “Children’s Wish Foundation”은 마이클과 공동으로

중환자 어린이를 위해 콘서트마다 100티켓을 추가로 기부하였고,

1989년 마이클은 공연 수익금을 의학학회와 어린이집, 자전단체에 기부하였습니다.





1989년 2월 7일,

마이클은 캘리포니아 스톡톤에 있는 “Cleveland Elementary School”의 각 교실과 가까운 중심부의 감리교회가 있는 곳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도왔다.

3주후, 총기를 가진 자가 운동장에서 100발을 난사 후 자살하여 5명의 아이들이 살해당하고 39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이클은 이 곳을 방문하여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로해주고, 아이들은 그에게 경험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학살 동안 동생을 잃은 8살의 탄 트란은 그의 방문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이야기               헸습니다.



“저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이클이 다시 가게 만들었어요.

만일 그가 그 곳에 왔었다면 그 곳은 매우 안전했을 거에요. 마이클은 저의 친구에요 전 무척 기뻐요.“

지역 상담가 다이엔 바그레스에 의하면 그 곳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이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다고 합니다.





1989년 3월 5일,

마이클은 “Saint Vincent’s Home for Dysfunctional Children”와 “Big Brothers and Big Sisters Programs to the Circus Vargas”에서 온

200명의 아이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시 네버랜드에 새롭게 건설되었던 그의 개인 동물원을 소개했습니다.





1989년 11월 13일,

마이클은 데이비스 주니어를 기념하는 뮤지컬 갈라 쇼에서

“You Were There”(싱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를 위해 그가 쓴 곡)을 처음이자 유일하게 공연하였습니다.

이 이벤트의 기금은 “United Negro College Fund”단체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같은 날, 그는 "Maclaren Hall" 와 "Make A Wish Foundation"에서 온 50여명의 아이들을 그의 집에 초청했으며

"Wishes Granted"를 통해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4살 Darian Pagan을 알게된 그는 그 소녀를 만나

캐나다의 아크로바트 그룹 공연을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1989년 12월 28일,

어린 HIV 희생자인 Ryan White와 마이클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휴일 동안 네버랜드 랜치에서 함께 휴일을 보냈지만 얼마 후 그 소년은 HIV악화로 사망하게 됩니다.

마이클은 노래 “Gone To Soon”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시를 포함해서 : "Ryan White" to him.)











The 1990's:









1990년 1월 6일,

마이클은 82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그의 거주지에서 “Childhelp”를 매개로한 축제 행사를 열어

놀거리와 바비큐 등의 음식, 영화상영 등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990년 7월,

마이클은 프로젝트 “Dream Street”에서 온 위중한 질병에 걸린 45명의 어린이들을

네버랜드로 초대하여 음식과 영화상영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990년 8월 18일,

마이클 잭슨은 산타바바라와 로스앤젤레스의 서머 프로그램으로 “YMCA”에서 온 130명의 어린이를 환영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바베큐 음식과 비디오 게임, 신발 선물 등을 받고 그의 개인 동물원을 방문했으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1990년 11월,

“Make A Wish Foundation”를 매개로 알게된 14살의 암환자, 존 브라운은 마이클잭슨의 네버랜드에 가기를 소망하였고

브라운은 네버랜드에 갈 수 있었습니다.



1991년,

마이클 잭슨은 “Chimpanzee Tea Party”를 창립하고 주최자가 되어 제인 굿올의 원숭이 연구회의 비용을 지불해주었습니다.



1991년 5월 6일,

그는 또한 미세스 굿올의 “International Tribute Benefit”(국제 기부 단체)에 참여하였습니다.





1991년 7월 26일,

마이클 잭슨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Youth Sports &Art Foundation”를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담화를 나누고 재정지원과 함께 와이드 스크린 텔레비전 세트를 제공해주었습니다.





1991년 12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마이클의 “MJJ Productions” 회사는 200개의 칠면조 저녁 만찬을 마련하여  많은 빈곤 가정에 제공해주었습니다.





1992년 2월 11일부터 2월 18일 사이,

흑인 역사의 달을 맞이 하여 - 마이클 잭슨은 11일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3만 마일 투어를 하며 (6개 나라를 포함).

병원과 학교, 교회, 고아원과 신체장애 어린이를 위한 NGO의 교육시설을 방문하였습니다.





1992년 2월 3일,

마이클 잭슨은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의 기자회견장에서 "Heal The World Foundation"(힐 더 월드 재단) 창립을 알리고,

이 재단은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구조활동을 할 것이며, 아동 학대를 반대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보살피고 도울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약을 나눠주고, 세계 기난과 싸우고,

또한 어린이 권리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며 또한 전세계인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1992년 5월 6일,
그는 캘리포니아의 Rodney King 폭동에 의해 희생 당한 Ramon Sanchez’의 장례 비용을 지불해주었습니다.





1992년 6월 26일,

마이클 잭슨은 빈곤 계층의 아이들의 구호 활동과 도시 지역 거주지 설립과 같은 일에 사용되길 바라며

뮌헨 시장, Mr. Georg Kronawitte 씨에게 40,000 DM을 기부하였습니다.

6월 29일, 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Sophia Children’s Hospital”을 방문, 학회를 위해 100,000 파운드를 헌금하였습니다.





1992년 7월,

마이클은 이태리 로마의 “La Partita del Cuore”에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어린이 재단에는 Latvia와 함께 120,000 DM을 기부하였습니다.





1992년 7월 25일,

아일랜드 더블린 투어 중, 그는 그의 콘서트 수익금 400,000파운드를 기부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시스템 문제로 영국 리드에서의 덴져러스 투어가 지체되자 그는 국가 지방의회에 60,000파운드를 기부하였으며,

음악 자선사업에도 기부하였습니다.





1992년 7월,

마이클잭슨은 유로 디즈니의 미키와 미니 마우스 캐릭터를 데리고

런던에 위치한 “Queen Elizabeth Hospital for Children”으로 가서, 그곳의 아픈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었습니다.





1992년 7월 31일,

윔블리 스테디움에서 그의 두 번째 공연이 있기 전, “Prince’s Trust”에  200,000 파운드를 기부하였습니다.

“Heal The World European Children’s Congres”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정착되어 시작되었으며

이에 선택된 8세부터 16세까지의 84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임무 가능성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이클은 후두염에도 불구하고, “Regent’s College”에서 몇 시간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1992년 8월 16일,

영국 리드의 백스테이지에서 그는 암 치료 후 왼쪽 시력이 손상된 6세의 니콜라스 캘린과 만나주었습니다.





1992년 9월,

마이클잭슨은 스페인의 여왕에게 자선사업을 위해 1,000,000 페세타 (스페인 화폐)의 거액을 헌금하였습니다.





1992년 9월 30일,

잭슨은 그의 덴저러스 투어를 중단한 채 루마니아의 부크레슈티에 있는 “Leaganul De Copii Sfanta Ecaterina”를 방문하여

그 곳의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고쳐주었다.

그는 HTWF’의 교의에 대해 토론하고, 집 없는 500명의 아이들의 위락시설을 위해 지원해주었습니다.

콘서트 수입금의 일부는 당시 세르비아 피난민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1992년 10월 1일,

마이클은 루마니아 부크레슈티 공연을 전세계에 방송하도록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수많은 어린이의 주거지가 공급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2년 11월 24일,

뉴욕의 존에프케네디 공항 경납고 안에서 마이클은 사라예보와 유고슬라비아 전 전쟁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한

43톤의 의학 기구와 담요, 겨울 옷 등이 카고 젯에 실리는 것을 모니터 하였습니다.

힐더월드팀은 “AmeriCares”와 함께 2.1밀리언의 가치가 있는 구호품을 UN 이름으로 사라예보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원조팀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무슬림까지 필요한 지역엔 모두 구호품을 보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1992년 12월 26일,

마이클 잭슨은 “United Negro College Fund”에게서 그 공로를 인정 받았고

“Michael Jackson Scholarship Program”에 의하여 200여명의 사람들로부터 교육 양성 성과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93년 1월 26일,

마이클은 로스엔젤레스의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아이들을 위한 구원 단체의 창립인 “Heal L.A.”를 발표했습니다.

“Heal L.A.”단체는 "Cities in Schools”, “형재/자매결연”, “최고의 설립”,

“건강 센터 설립기구”, “마약없는 미국을 위한 모임” 등이 지지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과 에이즈 감염에 대한 기본 상식등을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상담과 면역 캠페인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있습니다.







1993년 2월,

마이클은 2명의 미성년자에 의해 리버풀에서 살해된 2살배기 James Bulger의 부모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1993년 2월

마이클은 “Sega”, “HTW”(게임기 회사 이름)과 함께 108,000 달러어치의 컴퓨터 게임과 장난감들을

영국의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피난처, 기부센터에 보냈습니다.





1993년 3월

독립영화의 창립기구는 가족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알렸으며

그들은 또한 수익금의 일부를 “Heal the World”기구에 전할 것이라 알렸습니다.



* “Heal the world”는 마이클 잭슨이 설립한 기금 협회.





1993년 4월 26일

“Heal L.A.- 로스엔젤레스 살리기”를 목적으로 시작한 투어중,

마이클은 “What a Health Foundation ” 와 로스엔젤레스 중남부의 2개의 학교를 방문하여

직접 아이들과 봉사자들과 로스엔젤레스 살리기에 대한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1993년 5월 5일

마이클 잭슨은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와 “Heal Our Children, Heal the World” 단체의 회장과 함께

조지아주의 아틀란타도시를 방문하여 “아틀란타 도시 시민들을 위한 면역 ” 이라는 그들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Turner Broadcasting System”회사와 “Ronald McDonald Children’s charities” 등의 회사에서 후원되어진 것이며,

목적은 17,000이상의 아이들이 면역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1993년 6월

마이클은 “HTW(Heal the World)” 재단기구의 1,250,000달러와 그의 수퍼볼 공연에서의 수익금의 일부를

“Heal L.A.” 단체에 기부하면서 그 돈은 로스엔젤레스 폭동에 의해 피해자가된 아이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달 10일, 그는 또 L.A.의 “Challengers Boys”, “Girls Clubs”에서 100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DAREPLUS”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1993년 6월 18일,

마이클은 워싱턴의 한 병원에 들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체스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또한 창자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Mallory Cyr라는 8살난 아이에게 편지를 써 주고 금전적 기부를 하였습니다.





1993년 8월,

“Heal The World” 단체는 태국의 펩시콜라 회사와 함께  40,000달러를 "Crown Princess Maha Chakri Sirindhorn's" 에 기부하고,

태국의 Rural 학교 아이들, 그리고 후원자로서 태국 청소년 단체에 학교 급식 후원금을 기부하였습니다.



같은 달, 러시아 모스크바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각각 “Contacts One Independent Living Center for Children"와

"Hospital de Niños Dr. Ricardo Gutierrez" 이라는 구급차들이 도착했습니다.





1993년 9월,

마이클잭슨은 일본에 있는 한 미국 해군기지 연맹의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견딜 수 없는 병 말기증상인 15살 난 독일아이, Martijn Hendricsen와

그의 형제들에게 “Make a wish Foundation”이라는 단체를 통해 자신을 직접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1993년 9월 20일,

이스라엘의 Tel Aviv에서 머무는 동안, 마이클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감을 전달해주었습니다.

또한 호텔에 머무는 동안에는 밖에서 기다리는 그의 열성팬들에게 발코니에서 인사해주고

기억에 남을 만한 물건들을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한편, 마이클 잭슨의 조합회사인 펩시콜라는 마이클의 인도 New Delhi 공연 수익의 일부인

160,000달러를 “간디”라는 아이들을 위한 단체에 보증해주었습니다.





1993년 10월,

100,000달러라는 금액이 뉴저지 뉴욕에 위치한 “Children’s defense fund”(아이들 보호기구),

”Children’s diabetes Foundation”(소아비만을위한 단체), “Atalanta Project”(아틀란타 개척 프로젝트),

“Boys and Girl clubs”(소년 소녀들을 위한 단체) 등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보다 나은 식사를 배급받을 수 있도록 기부되었습니다.





1993년 10월 22일,

마이클은 칠레 산티아고의 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1993년 10월 28일,

마이클은 멕시코에서 5000명의 불우한 아이들이

“El Nuevo Reino Aventura Park”(공원; Keiko라는 유명한 이름의 고래가 있는 공원)에 놀러가게 해주었습니다.

같은 달, 그는 브라질의 Rio De Janerio에서 역시 가난한 아이들에게 공연티켓 몇 천장을 주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불우한 몇 천명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공연티켓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1993년 11월 5일,

마이클은 멕시코시티의 “Hard Rock Cafe”에서 열린 아이들의 축제에 참가하였습니다.

이 축제는 “Tere Alarcon”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의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것이었습니다.





1993년 12월,

“Heal The World Foundation”, 힐더월드 단체는 “Gorbachev Foundation USA” 라는 단체와 연맹하여

미국 조지아주의 Tbilsi라는 도시의 60,000명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백신주사를 맞게해주었습니다.



  

1993년 12월 16일,

마이클과 힐더월드 단체는 영국기구인 “Operation Christmas Child”(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전하는 단체)를 도와

그 단체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공화국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공중에 무려 100,000개의 장난감, 사탕, 필기구, 사진, 편지등이 들어있는 선물박스들을 뿌리게 하였습니다.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선물박스의 총갯수는 30,000개였다고 함.)





1994년

마이클 잭슨은 500,000달러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AIDS 환자 돕기”센터 설립에 전달하였습니다.





1994년 1월 7일,

마이클은 마틴루터킹 주니어의 생일을 기념으로, 자신의 네버랜드에서 100명의 불우한 아이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한편, 힐더월드 단체는 “Unihealth”와 “Los angeles Immunization Coalition” 라는 단체들과 연합하여

L.A.지진피해에 의해 집을 잃은 아이들에게 무료로 백신접종을 해주었습니다.



“Heal L.A.”단체는 최소 85,000달러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Al Wooten Jr. Heritage Center", "Casa Rutilio Grande", "Clinica Para Las Americas", "Families in New Directions",

"Meeting Each Need With Dignity", "Proyecto Esperanza", "Pueblo Nuevo", "Vaughn Street Family Center" 등의 단체들에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힐더월드 단체는 "General Electric", "Lever Brothers" and "Surf Wash", 등의 단체들과 연합해

세탁기와 건조기와 세척제등을 25개의 공익기구에 전달하였습니다. (세탁 서비스도 함께)

이 모든 것은 역시 지진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힐더월드는"Heal L.A." 단체와 "Salvation Army" 와 함께 400여명의 지진피해에 의해 집을 잃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헐리우드의 유명한 관광지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초대해 하루를 보내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마이클은 로스엔젤레스의 "Community Youth Sports and Arts Foundation"(아이들을 위한 스포츠와 예술 공익센터)에서

100여명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놀며 사인과 함께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네버랜드에서 그들과 함께 영화 "Beethoven's 2nd"를 함께 보고,

자신의 동물원에서도 아이들이 놀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994년 2월 22일,

“the Jackson family honors” 이벤트에서 모아진 돈은 “Family caring for families” 라는

잭슨 가족의 민간 공익 단체에 전달되었습니다.

공익단체의 수익을 올리고 다른 기부단체들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기위해,

또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음악계의 거물인 베리고디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마이클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다른 여러명의 가수들은 함께 “If you only believe”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아무리 피할 수 없는 역경이 닥치더라도, 삶이란 아름다운 것이기에 찬양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 축가입니다.





1994년 여름,

힐더월드 단체는 로스엔젤레스 지구 학교들의 연합기구들인, "I Have A Dream Foundation", "Best Buddies", "Overcoming Obstacles" , "California One To One",들과 함께 2000명의 아이들에게 자넷잭슨 콘서트 티켓, L.A.레이커스(농구경기) 티켓,

그리고 Beach Boys밴드의 콘서트 티켓을 사주었습니다.



같은 해 가을, “Heal L.A.”단체는, 로스엔젤레스 중남부에서부터 Pico Union 지역사이의 6개의 중학교들을 거쳐

무려 1000여명의 아이들에게 “Team Mentoring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전파되도록 금전적으로 도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1994년 8월 6일,

마이클은 아내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함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익 기구들을 방문해

아픈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한편 힐더월드 단체는 “Toys R Us”(장난감 회사 이름)과 “AmeriCares”와 함께 20,000 달러어치의 장난감들과 음식,

그리고 생필품등을 전달 해주었습니다.



또한 그 공익기구들을 함께 방문하였던 에이드리안 그랜트는 10년 후, 팬을 위한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공익단체들을 방문하고 다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멋진 일은

마이클이 죽어가는 8살난 소녀를 미소짓게 했을 때예요.

그녀는 몸에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침대에만 몇주를 그냥 그대로 누워있었거든요.

그녀는 손을 뻗어 마이클의 손을 만졌죠.

마이클의 슈퍼스타 영향력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좋게 미칠 수 있는가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어요.”





1995년 3월,

마이클과 힐더월드 단체는 간 이식 수술이 필요했던 4살 난 Bela Farkas를 도와주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는"Bethesda Children's Hospital"라는 어린이 병원에 들러

질병을 앓고 있던 한 소년과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병원비를 부담해 주었습니다.



그는 또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중, 세르비아의 Krusevac출신인 열성팬 소녀를 만나주어,

그가 세르비아의 가난한 사람들과 공감한다는 것과, 세르비아 사람들은 훌륭한 역사를 지녔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1995년 3월 3일,

마이클은 2살에 살해된 Craig Fleming라는 아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의 형제들의 병원비를 부담해주고, 나중에 쓸 수 있게 그들의 재산에 돈을 보태주었습니다.

또 그는 히스토리 앨범의 수록곡인 “Childhood”라는 노래를 Craig에게 바쳤습니다.



또한 마이클은 L.A. 학생들과 가족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안전한 환경속에서 살수 있도록,

특히 학생들은 운동이나 수학, 언어배우기 등 방과 후 교육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Community School/Safety Havens Initiative"단체 설립에 참여하였습니다.





1995년,

힐더월드 단체는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단체와 함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공화국의 전쟁에 의해 피해입은 아이들에게 장난감들을 기증해주었습니다.

마이클은 또 인간의 욕심에 의해 동물원과 공원에 갇혀있는 돌고래들이

제대로 법적인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그들을 놔 줄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Heal L.A.”단체는 "Community School/Safety Havens Initiative”라는 공익시설에 1,200 이상의 가족들을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1995년 4월 18일,

힐더월드 단체와 'Permanent Charities' 단체, 'EC2000'기구는  

네버랜드에서 열린 'WCC' ; (국제 어린이 연방의회)에 8개국에서 46명의 아이들을 참여케 하였습니다.

이 세미나는 3일간 진행되었고 어린이들의 꼭 알아야 할 이슈인

“스위스에서 아이들의 권리는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등의 문제들이 다루어졌습니다.

마이클과 부인 리사마리 프레슬리는 아이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1995년 12월

힐더월드 단체와 “WCC”청소년 대표들은 함께 멕시코 시티에서 “미래의 지킴이”라는 기념비를 세울것을 알렸습니다.

이 기념비에는 공단체 유니세프, "EC2000", "Terra Christa Communications", "Coalition for Children of the Earth" 들과

멕시코 시티의 시장이 공동 스폰서로 참여했습니다.



1995년,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딴 향수들

"Mystique de Michael Jackson", "Legende de Michael Jackson"의 판매로 벌어들인 모든 수익금이 기부단체에 전달 되었습니다.


1996년 1월 21일,

마이클은 그의 히스토리 CD(4백만장 이상팔린)를 영국의 Sevenoak에 위치한 “Dunblane Appeal”라는 곳에 공짜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1996년 6월 18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Soweto 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폭동의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화환을 전달하고,

특히 11살난 어린희생자 Jaymee Bowen을 위해서 하얀 장미와 카네이션, 백합으로 만든 부케를 전달하였습니다.


1996년 9월 마이클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첫 운동회에 명예의 게스트로 알려졌습니다.

이 운동회에는 3000여명의 아이들과 60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1996년 9월 6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마이클은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며칠 뒤, 그는 루마니아의 부크레슈티에서

"Leaganul De Copii Sfanta Ecaterina" 라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함께 놀며 장난감들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 날 마이클은 또 1989 루마니아 혁명피해자들을 기리고 그들을 위해 1,000,000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1996년 10월 1일,

마이클은 튀니지 공화국의 “National Solidarity Fund”자선 단체에

가난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그의 공연 수익금을 기부하였습니다.

이틀 뒤인 10월 3일,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마이클은 "Ronald McDonald House" 과 "AMC" 라는 병원을 방문하고

장난감들을 비롯한 선물을 준비해 병원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같은 달, 그는 타이완 카오쉬엉에 한 장애인들을 위한 공익단체를 방문하여 2000개의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1996년 11월 1일,

마이클은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히스토리 공연의 수익금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또 그는 태국 방콕에 들려 고아원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에 방문하여 100,000달러와 장난감 등을 기부하였습니다.


1996년 11월 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13살 난 Emely Smith는

마이클을 공연 도중 휴식시간에 백스테이지에서 만나기를 바랐고 마이클은 그 소원을 이루어주었습니다.

또 오클랜드에서 그는 “Starship”이라는 어린이 병원에 들러

장난감, 직접 사인한 CD등을 직접 어린 환자들 한 명 한 명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같은 달, 마이클은 호주, 브리스베인에 위치한,

암이나 천식, 종양을 앓고 있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인 "Prince of Wales Hospital"에 들러

적어도 75명의 아이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고 장난감 등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그는 히스토리 투어 도중 호주 시드니의 아이들을 위한 공익단체를 방문하여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특히 6살난 화상환자 Tjandamurra O’Shane도 함께 만나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지하실에서 Adelaide(호주의 한 도시)출신 한 남자가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여 화상 환자가 된 아이입니다.

또 마이클은 그의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The Smith Family"라는 이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익 자선단체에 전달 하였습니다.

1996년 11월 26일,

마이클은 이날 오스트레일리아 멜보른에 위치한 “Royal Children’s Hopital”병원에 들러

장난감들을 기부하고 아이들을 위해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1996년 12월 9일,

그는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아이들을 위한 병원에 들러 장난감들을 갖다주고 사인을 해주었으며

또 아이들 병 관리 센터와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그는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병원 개선에 쓰겠다고 알렸습니다.


1997년 1월 25일,

마이클은 1996년 11월 1일, 인도 뭄바이 공연에서 티켓판매의 수익금인 5,000,000$~6,000,000$ 중 85%를 벌어들였고,

그중 1,100,000 달러를 빈민가 아이들 교육을 위한 공익기구에 기부하였습니다.

이 돈의 일부는 인도 뭄바이의 Maharashtra 의 270,000명의 직장을 구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인도인 저널리스트 Hema Shukla에 따르면,

마이클은 뭄바이에 도착하는길에 차를 세워 빈민가 아이들과 20분동안 대화를 나누고 놀아주었다고 합니다.

마이클잭슨은 친구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에이즈 환자를 위한 단체를 위해 로스엔젤레스, 켈리포니아에서 공연을 하였고,

이 공연은 “엘리자베스, 생신을 축하드려요”라는 제목으로 1997년 2월 27일날 ABC채널에서 방영되었습니다.


마이클은 그의 “히스토리 투어” 에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종종 콘서트 도중 “Heal the World”노래를 부를 때 스테이지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는 “데인져러스 투어”때에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 마이클은 또한 투어를 할 때, 종종 팬들과 만나는 이벤트를 열어 자신의 서포터들과 팬들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주 호텔에서 베게와 이불에다가 감사하는 메시지를 써서 떨어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그는 피자나 초콜릿같은 음식이나 양초 등을 트럭을 이용해 배달시켜 팬들에게 나눠주고,

자주 몇 몇의 열성팬들을 그의 호텔방에 초대해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가난해서 마이클의 도움을 바라는 가족에서부터 마이클을 금전적으로 응원해주는 부자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의 캘리포니아 부근의 개인 대저택에 방문하는것이 허락되었고,

심지어는 증인들과 리포터들에 따르면, 그들은 마이클이 그 곳에 없을 때 조차 그 곳을 방문해

음식과 다른 편의함을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 날짜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어느 날, 마이클은 한 병원에 들러 그의 열성팬인 4살배기 여자아이를 만나

병원 치료비를 내주고 컴퓨터와 장난감등을 사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워싱턴 D.C에서 개에게 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그는 South Carolina에서 차를 타고 가다 엄마의 잘못으로 물에 빠져 익사한 2명의 어린아이들의

장례식에 혼자 참석하여 그들을 애도하고 장례식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1998년 7월 28일,

마이클은 “Michael Jackson Japan Co.Ltd.”기구의 창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기구의 목적은 놀이동산 건설과 전 세계에 장난감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1998년 9월,

마이클은 5살난 Aza Woods라는 암을 앓고있는 아이와 친구가 되어주고,

그를 위해 라스베가스의 힐튼 호텔에서 “Star Treck: the Experience”전시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곤 그를 자신의 네버랜드 랜치로 초대하여 그가 병의 고통을 덜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마이클은 또 나미비아 공화국의 수도인 Windhoek의 "Southern Africa Economic Summit" 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인 “보다 나은 아프리카 만들기”에 참가하였고,  

그는 나미비아 공화국을 방문하는 동안 메마른 땅인 나미비아에 휴식처와 쇼핑센터를 지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마이클은 “Children’s Holiday”(일본어로 “Yasushi Okimoto”)라는 기부를 위한 송가를 제작하였고

일본에서 넘버원 싱글을 차지했습니다.  이 노래는 일본 어린이들 합창단에 의해 불러졌고,

이 노래가 벌어들인 모든 수익금은 일본 고베에서 95년 1월에서 일어난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되었습니다.


1999년 3월,

마이클은 말레이시아 기업가인 Abdul Rahman이 이끄는 공동체와 협상 끝에 얼마 간의 수익금을

아프리카의 가나, 케냐,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니지에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데 쓰이게 하였습니다.

이 대학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질 예정입니다.


1999년 5월,

마이클은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Pavarotti &Friends for War Child"라는 자선 콘서트에 참가하여서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 for Refugees"라는 코소보에서 온 망명자들을 돕는 공익 단체를 위해

1,000,000달러 벌어들여 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마이클의 아들이 아팠기 때문에 그는 이벤트에 참가 할 수 없었고

대신 파바로티가 마이클잭슨의 노래 “We are the world”를 불러 이벤트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었습니다.



* 정확히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9년 어느 날 마이클 잭슨은 폴 맥카트니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돌아가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기리는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 5월 9일,

마이클은 다른 여러 가수들과 함께, 코소보 망명자들에게 음식과 주거시설을 전달해줄 것을 목적으로

“No boundaries” 라는 이름의 앨범을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1999년 9월 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씨티에서 개최된 Kora all-Africa 뮤직 어워즈에서

마이클은 넬슨 만델라와 그의 "Nelson Mandela Children’s Fund"기구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 기구에 1,000,000rand(약 166,400 달러; “마이클잭슨과 친구들”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였습니다.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콘서트는 독일의 뮌헨와 한국의 서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이 공연의 수익금 중 3,300,000달러를 유네스코를 비롯한 자선기구들 <;"Nelson Mandela's Children's Fund",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ed Cross and Red Crescent Societies". "What More Can I Give"

(마이클이 작사 작곡한 노래 제목이기도 하죠. 이 문장이 바로 이 콘서트의 핵심입니다.), "the concept of giving" >에 기부하였습니다.

독일 뮌헨 공연에서는 중간 중간 어린아이의 얼굴이 스크린을 통해 비춰지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12월 4일,

마이클은 이날 뉴욕의 매리엇 마르퀘스 호텔에서 열린 휘트니 휴스턴의 자금 조달 이벤트의 참가하였습니다.



The New Millennium:


2000년 1월 어느 날,

마이클잭슨은 “United Negro College Fund”(흑인을 위한 대학자금 협회) 에서 주최한,

모금활동을 위한 TV이벤트 “Evening of Stars”에 출연해 공연 함으로써 이 이벤트는 총 1천 350만 달러라는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1월 22일,

마이클은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프랑스의 "Chateau de Versailles" 공원에서

폭우에 의해 손상된 10,000여개의 나무들을 복구시키기 위한 모금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또 그는 이 날 매년 행사인 "T.J. Martell Foundation for Leukemia, Cancer and AIDS Research"(백혈병, 암, 에이즈 연구를 위한 단체)가

개최한 온라인 경매에 자신의 물품 몇 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00년 9월 19일,

Rabbi Shmuley Boteach는 BBC방송국 라디오 인터뷰에서,

런던 타임즈(잡지)가 선정할 "Millennium Preacher of the Year";(새 시대의 전도자들)에 마이클 잭슨을 추천했습니다.

그는 마이클이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을 높이 사며,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마이클의 42번째 생일 파티 때, (Rabbi도 네버랜드에 손님으로 있었음)

마이클은 백혈병을 앓고있는 10살짜리 소년과 그의 가족들을 자신의 네버랜드로 초대해

화학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병원 진료비를 부담해 주었습니다.

Boteach에 따르면,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 명의 가난한 환자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는 또 마이클이 매 주 주위 학교나 교회에서 수백명의 어린이들을 초대해 네버랜드에서 놀 수 있도록 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수 백만 달러의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마이클 잭슨 본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 몇몇의 미디어 들을 통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덧붙여 Boteach는 , 병원의사가 직접 증언한 이야기 (마이클이 암에 걸려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한 소년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

뉴욕 병원에 그 소년이 입원해 있는 환자실에 전화기를 두어달라고 부탁해 소년과 매일 전화통화로 안부를 물어주었다는)도 전했습니다.


2000년 10월,

마이클은 그의 가족과 함께, 프로젝트 창설자인 Mark Filby 와 Stephen White과의 연락을 통해,

호주의 시드니에서 열린 “Wave to the world”라는 공식 자선 모금 프로젝트(Paralympic Games 2000)를 후원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이런 방식을 통해 다른 연예인들에게서도 후원을 받았습니다.


2000년 10월 28일,

마이클은 친구인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캘리포니아 베버리 힐즈의 힐튼호텔에서 열린 “Carousel of Hope”(희망의 회전목마)라는 모금단체 에서 개최한

<청소년 당뇨병을 돕기 위해 열린 이벤트>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넣은 접시등을 기부하였습니다.

또 "African Ambassadors’ Spouses”가 주최한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행사>에서는

자신의 한정판 포스터등을 기부하였습니다.

또한 몇달 뒤,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은 “Miracle on 34thstreet”(34번가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자선 콘서트에서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공연하였습니다.


2000년 12월,

"Big International Group of Entertainment, Inc."(국제 엔터테인먼트 회사 )에서 협회한,

라스베가스 구조 프로젝트인 “The way of the unicorn/the endangered ones”(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따르면,

마이클은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공연을 통해 후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2001년 2월 14일,

마이클은 뉴욕에서Rabbi Boteach와 "L’Chaim Society"라는 청소년 조합과 협력하여,

세미나를 통해 힐더월드 단체의 “Heal the kids”라는 캠패인의 시작을 발표했습니다.

이 캠패인은 1년동안 전세계의 부모들에게 그들의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해줄 수 있도록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년후인 2004년, Boteach는 “Heal the kids” 가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01년 3월 6일,

마이클은 모나코 왕국의 유니세프와 연합되어있는 공익센터, “Movie For action charity auction”(자선 경매)에

자신의 검정색 모자, 2000년도 월드 뮤직 어워드에서 입었던 코트를 기부하고 그들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경매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주로 어머니들과 어린이들- 을 위한 것입니다.


2001년 3월 26일,

마이클은 뉴저지주 뉴욕에서 “Michael Jackson international Book Club”(국제 마이클 잭슨 책 읽기 센터)와

“Heal the Kids”를 열어 책들을 기부하였습니다.

이 단체들은 청소년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에게 책을 더 많이 읽어 주도록 권하였습니다.


2002년 10월 15일,

마이클은 독일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자들을 위해 16개의 아이템(CD, 비디오, 냅킨 등)에 직접 사인을 하여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이 아이템들은 3965유로화 (약 5천 6백달러)를 모았습니다.

또 그는 2002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입었던 자켓과 직접 사인한 페도라 모자를

“Tribute to Bambi”라는 자선 경매센터에 내놓았는데 이 두 아이템들은 18,303유로화(약 2만 5천 6백달러)를 모았고

이 돈은 독일의 “Off-Road-Kids”(거리의 아이들)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20002년 10월 12일,

마이클은 국가 군인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사,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로 , “Team Vandenberg”(벤더버그 부대)에 속해 있는

미 공군 200여명(:이들은 최근에 해외에 ‘긴급배치군’으로 배치되어있다가 돌아온 사람들입니다)과 그들의 가족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2001년 10월 21일,

마이클은 워싱턴 D.C의 “United we stand” 콘서트에서

<we are the world>, <man in the mirror>, <what more can I give>라는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이로써 약 1천5백만 달러가 뉴욕 911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모아졌습니다.

특히 <what more can I give>라는 노래는 마이클이 다른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공연하여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2002년 4월 25일, 마이클은 뉴욕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모금행사에 참가하여 공연하였습니다.

이 모금행사는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국제 민주당 위원회)를 위한 행사였고,

거의 3백만 달러에 가까운 돈이 선거 투표 등록을 위해 모아졌습니다.



마이클은 2001년 10월 30일에 발매된 앨범 “Invincible”을

15살 나이에 살해된 아프리칸 혈통의 노르웨이인, Benjamin Hermansen에게 헌납하였습니다.

헌납과 함께 그는 사람들은 인종이 아닌 성격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2002년 11월, 19일~29일,

마이클은 “Siegfried&Roy’s” 라는 연예인 경매에 직접 사인한 곰인형을 기부했고 이 인형은 5,000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경매는 “Opportunity Village”라는 공익센터(:정신 장애우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삶의 기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같은 달 21일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Bambi Charity Event”라는 자선 경매 행사에

자신의 자켓을 내놓았는데 이 자켓은 1만 6000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2003년 6월,

마이클은 독일 작센지방의 홍수 피해자 가족(the Wolves라고 알려져있습니다)을 자신이 있는 베를린으로 초대했습니다.

(마이클은 이 때 밤비 어워즈에 초대되어 베를린에 있었음)

또 어워즈가 끝나고, 그는 피해자 가족을 3일간 자신의 캘리포니아 집인 네버랜드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네버랜드에 있으면서 그들은 마이클의 아이들을 직접 만났다고 합니다.

또 그는 어린나이에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아이들을 위한 모금 행사인 “Shoes for Charity”에 자신의 화려한 양말을 기부하였습니다.


2003년 9월 15일,

마이클은 자신의 네버랜드에서, 여러 유명인들이 대거 참석한 자선 행사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 행사의 참가 티켓은 한 사람당 725달러 였고, 마이클은 수익금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였습니다.

마이클은 또 이 행사에서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중요함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는 또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평생 헌신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2003년 10월 1일,

마이클은 캘리포니아 베버리 힐즈호텔에서 열린 자선 행사,

<로스엔젤레스의 낭창(피부결핵)환자들과 낭창연구를 위한 이벤트>에 참여하였습니다.


2003년 10월 27일,

마이클은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 알라딘 호텔에서 자선을 위해 작곡된 노래, “What more can I give”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같은 날, “Music for giving” 이라는 웹사이트에, 여러 유명 가수들(어셔,머라이어 캐리, 셀린디온 등)이 참가한

다른 버젼의 “what more can I give”가 올라왔고, 이 노래는 2달러에 다운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수익금은  "Oneness", "Mr. Holland’s Opus Foundation", "The International Child Art Foundation"등의

자선협회들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다른 여러가수들과 함께 리메이크 되어진 이유는,

마이클이 1999년 후반, 코소보 희생자들을 위해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부르기로 했던 노래와 혼동되어서 라고 합니다.

“What more can I give”는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911테러에 의한 희생자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2004년,

마이클의 주문 제작된 자동차, Bentley Arnage Red Label Turbo(벤틀리 차)가

자신의 기부단체, “Go for your dream” 를 위한 경매에서 팔렸습니다.

이 차는 2001년, 마이클이 네버랜드에서 다른 여러 유명 가수들과 함께 “What more can I give”라는 노래를 녹음할 때,

가수들의 교통수단으로 쓰였던 차입니다.


2004년 12월 17일,

마이클은 주변 교회와 교회학교에서, 약 200여명의 어린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자신의 네버랜드로 초대했습니다.

전에도 항상 그래왔듯이, 그는 또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도(주로 그의 팬들) 함께 초대했습니다.

그 당시 마이클의 대변인이었던 Raymone Bain은, 이 이벤트가 결코 갑작스럽게 꾸며진 것이 아니며,

오래 전 부터 항상 적어도 한달에 2~4번, 어린이 단체들이 네버랜드를 방문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크리스마스 직전의 연말이니, 마이클은 아이들을 놀라고 기쁘게 해주고 싶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이벤트는 매년 있어왔으며, 수백명의 아픈 아이들이나 불우한 아이들이 그들의 가족과 함께

네버랜드에 놀러와 놀이기구를 타고 간식을 즐기고 게임을 하며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초대된 손님으로서 모든것은 그들에게 공짜로 주어졌고,

마이클이 바빠서 네버랜드에 있지 않을때에도 이러한 이벤트는 항상 진행되어 왔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 이 당시는 마이클의 재판이 진행되던 시절이라 마이클을 잘 모르던 사람들은,

갑자기 아이들을 네버랜드에 초대해 호의를 베풀며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 아니냐며

이 이벤트에 대해 반문을 했기 때문에 마이클의 대변인은 이러한 설명을 덧붙여야만 했습니다.)



2005년,

재판이 진행되던 동안 마이클과 그의 부모(조셉,캐더린 잭슨)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들을 네버랜드에 초대했습니다.

그의 팬들은, 재판 때문에 무척 힘들텐데도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않는 마이클에게 무척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2006년 1월,

중동국가 바레인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마이클은 “AAJ Holdings”라는 지방 공공 단체와 함께 사우디 아라비아만(灣) 지역을 음악 학원등을 놀이동산으로 바꿔

도시를 개혁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2006년 5월 28일,

MTV레전드 어워드를 받기 위해 일본에 있던 마이클은 “Seibi Gakuen”이라는 동경의 한 어린이 집을 찾아,

16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만나 그들이 일본 전통음악에 맞춰 공연하는것을 지켜 봐 주었습니다.

또 그는 관중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해서 악수와 함께 사인도 해주었습니다.


2007년 3월 10일,

일본의 Zama부대에서 약 3,000여명의 미군과 그의 가족들을 만나 그들 중 몇몇과는 직접 악수를 나누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헌신에 대한 감사를 짧게 연설했습니다.

그는 또 그들 중 한 군인의 진급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11월 8일,

마이클은 목사 Jesse Jackson의 생일잔치겸 모금 행사인 이벤트에 참가하였습니다.


영국 Devon지방에서 열린 기부행사에 마이클과 그의 가족들이 전화통화를 통해 참여하였습니다.

2008년 6월 6일, 통신에 따르면 6000파운드(약 9871달러)와

다른 값비싼 아이템들(마이클이 직접 싸인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썼던 하얀 페도라 모자 포함)이

그의 참여를 통해 경매에서 모아졌다고 합니다.


2009년 3월 17일,

리티 티비쇼 스타 Jade Goody(리얼리티쇼 “Celebrity Big Brother 2007”에 출연, 2009년 3월 22일 뇌종양으로 결국 사망)는

“New”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이클이 런던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마이클은 2009년 7월에 런던에서 콘서트 계획을 발표하기위해 3월 3일에서 8일까지 런던에 있었습니다)

그녀에 말에 따르면, 마이클은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직접 전화를 하였지만,

그녀는 너무 아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마이클이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안녕 제이드, 난 네 걱정을 하고있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길 바래.

나는 네가 7월에 열리는 내 런던 콘서트를 보러 와줄 수 있으면 해.

나의 형, 저메인(제이드와 함께 리얼리티쇼에 출연)은 계속 너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어…”


Jade의 홍보 담당자 Max Clifford는 마이클잭슨이 그녀의 가족들이 중심인 장례식에서 혼란을 빚게 될 것을 우려하여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녀의 가족에게 따뜻한 애도의 편지를 보내주었어요.

Jade가 용감한 소녀였고 그녀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면서요. 아, 또 그가 꽃을 보내겠다고도 했다는군요.”



* 마이클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위치한 월트 디즈니 리조트의 <돌고래 호텔>의 꼭대기 두 층을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혹은 과거에 소유했다고- 현재는 불확실)

그는 이 두 층을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공짜로 머물 수 있게 해주는데 사용했습니다.





Charities: 마이클 잭슨의 기부 업적

전 세계 팝스타 중 가장 많은 기부 단체에 가입되어져 있고(무려 39개), 가장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이클 잭슨의 박애주의 정신과 그의 기부 업적은 2000년도 발행본 기네스북에 공인되어져 있습니다.



그가 가입한 자선 단체들로는 :

1. AIDS Project L.A.

2. American Cancer Society,

3. Angel Food,

4. Big Brothers of Greater Los Angeles,

5. BMI Foundation, Inc.,

6. Brotherhood Crusade,

7. Brotman Burn Center,

8. Camp Ronald McDonald,

9. Childhelp U.S.A.,

10. Children's Institute International,

11. Cities and Schools ScholarshipFund,

12. Community Youth Sports &Arts Foundation,

13. Congressional Black Caucus (CBC),

14. Dakar Foundation,

15. Dreamstreet Kids,

16. Dreams Come True Charity,

17. Elizabeth Taylor Aids Foundation,

18. Juvenile Diabetes Foundation,

19. Love Match,

20. Make-A-Wish Foundation,

21. Minority Aids Project,

22. Motown Museum,

23. NAACP,

24. National Rainbow Coalition,

25. Nelson Mandela's Children's Fund,

26. Red Cross,

27. Rotary Club of Australia,

28. Society of Singers,

29. Starlight Foundation,

30. The Carter Center's Atlanta Project,

31. The Sickle Cell Research Foundation,

32. Transafrica,

33. Unesco,

34. United Negro College Fund (UNCF),

35. United Negro College Fund Ladder's of Hope,

36. Volunteers of America,

37. Watts Summer Festival,

38. Wish Granting,

39. YMCA - 28th Street/Crenshaw. 가 있습니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마이클은 적어도 33개 이상의 다른 자선 단체들을 후원하고 도왔다고 합니다. (아래 단체들 참조)

1.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2. Community School/Safety Havens Initiative,

3. Lupus L.A.,

4.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 for Refugees,

5. Atlanta Children’s Foundation,

6. Martin Luther King Jr. Center for Social Change,

7. Foundation for the Junior Blind,

8. Oneness,

9. Mr. Holland’s Opus Foundation,

10. The International Child Art Foundation,

11. Go For Your Dreams,

12. Opportunity Village,

13. Off-Road-Kids e.V,

14. UNICEF,

15. T.J. Martell Foundation for Leukemia,

16. Cancer and AIDS Research,

17.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ed Cross and Red Crescent Societies,

18. National Solidarity Fund,

19. Family Caring for Families,

20. Operation Christmas Child,

21. Children's Defense Fund,

22. Children's Diabetes Foundation,

23. Boys and Girl Clubs,

24. Ghandi Foundation for Children,

25. Crown Princess Maha Chakri Sirindhorn's,

26. Heal L.A.,

27. Prince’s Trust,

28. Youth Sports &Art Foundation,

29. Jane Goodall’s ape research institute,

30. Children’s Wish Foundation,

31. Give For Life,

32. Wishing Well Fund,

33. MusiCares and Camp Good Times.











“연예인으로서의,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제외하더라도 마이클 잭슨은 박애정신 그 하나로 충분히 이름값을 한다.

그는 병을 앓는 아이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중략…] 마이클은 언제나 자신의 유명세를 남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쓰고 싶어해왔다.

그는 수많은 자선 단체들을 위해 일해왔고, 이를 통해 아픈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도와왔다.

스릴러 앨범을 만들던 어린 청년의 시절에서 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 빅토리 투어에서 부터

그는 수많은 어린이 병원들을  방문해오며, Make-A-Wish(자선단체), Ronald McDonald house,(맥도날드에서 후원하는 어린이집) 등을 포함해 수많은 병원들을 방문하기 까지, 그는 언제나 열심히 일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선행이 메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마이클은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는 봉사는 그들을 돕기 위해 하는 개인적인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니라면서.

오늘 날에는 이렇게 마이클처럼 진지하게 남을 위해 헌신하는 연예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By 저널리스트Frédéric Taddeï, 2008

원본출처: [The Silenced Truth]

http://www.thesilencedtruth.com/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

이 사이트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클 잭슨의 수많은 자선을 정확히 알리고,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는 곳입니다.
또한 그는 이미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요.
이곳은 그가 지금까지 인류 복지 증진에 기여해왔음을 알리며 그의 노벨평화상 청원을 진행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노벨평화상 청원 방법입니다.※
http://petitionspot.com/petitions/mjfornobelpeaceprize
이름, 이메일주소, 우편번호를 적은 후 (반드시 실명 & 정확한 정보여야 합니다),
아래 [sign this petition] 버튼을 누르면 새로운 창이 뜹니다.
그 후 첫 번째 문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출처 : 마이클 잭슨의 끊임없는 자선활동 (■네이버 마이클잭슨 대표 팬카페 - 문워커[MoonWalker]) |작성자 이응

R.I.P. King Of Pop: Michael Joseph Jackson 1958.08.29 ~ 2009.06.25  
▶謹弔◀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IP : 125.186.xxx.15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po
    '09.6.29 12:47 AM (114.203.xxx.248)

    진짜 좋은일 많이 하셨네요...
    명복을 빕니다....

  • 2. masquerade
    '09.6.29 6:48 AM (82.35.xxx.149)

    울고싶네요. 마이클.. ㅠ.ㅠ

  • 3. 보고 싶어요
    '09.6.29 7:01 AM (121.160.xxx.212)

    벌써 그가 그립습니다

  • 4. 고인의
    '09.6.29 2:19 PM (203.142.xxx.240)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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