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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7일간의 기록 (펌)

ㅠ.ㅠ 조회수 : 464
작성일 : 2009-06-17 14:10:14
조문객의 분노와 눈물, 추억 그리고 이별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국화를 든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분노
5월 23일 오후 6시 30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검은색 캐딜락이 봉하마을에 들어섰다. 무겁고 팽팽하던 침묵이 깨졌다. “우리 대통령을 살려내라.” 사람들은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울부짖음은 곧 분노와 뒤범벅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검찰, 언론이 ‘대통령을 죽인 자들’로 ‘살생부’에 올랐다.

명계남씨와 성난 지지자들은 마을회관 광장에 임시로 차려진 기자단 천막에 들이닥쳤다. 명씨는 “너희들의 기자정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절규했다. 24일 정식분향소가 차려지고 그 옆 야외천막 프레스센터가 차려지기 전 언론들은 몇 차례 쫓겨나고 들어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른바 ‘조중동(조선·중앙·동아)’ 기자에 대한 색출 작업도 벌어졌다. 노사모 회관 앞에서는 ‘OOO(한 언론사 대표의 이름)의 개들, 오면 죽는다’는 살벌한 문구가 내걸리는가 하면, 성난 조문객이 프레스센터를 찾아 “왜 조중동 기자에게 프레스 카드를 주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잦았다. 경향·한겨레에 대해서도 “너희도 똑같다. 반성하라”는 비난이 곳곳에서 나왔다.

23일 봉하로 달려온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 죽고 이제야 왔냐” “다 나가라”는 야유 속에 빈소로 향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배신자”라는 비난과 함께 한 차례 조문을 거부당했고, 추미애 의원은 “대통령이 손 내밀 때 뭐했냐”고 면박당했다.

‘정치 보복’의 당사자로 지목된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탄 차가 계란세례를 받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물병세례를 받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도 조문객에 막혀 발길을 돌렸다.

“조문객 여러분, 대통령께서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열어주십시오.” 마을회관 위 스피커에서는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이 같은 호소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나 옹이진 사람들의 ‘마음의 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7일장이 끝나도록 정부 여당 인사는 봉하마을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눈물
5월 24일 오후 2시 30분. 따가울 정도로 땡볕을 내려쪼이던 맑은 하늘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후두둑, 후두둑, 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터진 듯 무섭게 퍼부었다. 조문객 행렬은 분향소 앞부터 2㎞ 남짓 이어진 마을 입구까지 늘어서 있었다. 비를 피할 만한 천막도 변변치 못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조문객들은 애써 비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다리던 행렬에 그대로 서서 묵묵히 비를 맞았다. 그들 빰에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에게는 노 전 대통령을 생전에 지지했는지, 정치를 같이했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하는 것은 큰 상관이 없어 보였다.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을 가여워하며, 자신을 가여워하며 울고 있었다. ‘영원한 비주류’ 노 전 대통령에 자신을 오버랩하며 서러워하고 있었다.

23일 분향소 인근에서 만난 한 여성 노사모 회원은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대통령 하나도 못 지킨 죄인이다. 어떻게 우리를 두고 가실 수 있나”라며 울먹였다. 25일 낮 대구에서 왔다는 한 청각 장애인 부부는 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부엉이바위를 바라보며 기자의 수첩에 이렇게 썼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다.”
한 번 터진 비주류의 눈물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번져나갔다. 24일 13만 명, 25일 40만 명, 26일 50만 명, 27일 78만 명을 넘어선 조문객 수는 28일에는 100만 명을 넘겼다. 3일째쯤 되면 줄어들겠거니 했던 참여정부 참모진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추억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봉하마을 회관 스피커에서는 쉼없이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노래 솜씨는 별로였다. 그러나 어떤 기교 없이, 또박또박 노랫말을 눌러가며 부르는 것은 딱 ‘노무현스러웠다.’ 구수한 사투리가 묻어나는 노 전 대통령의 ‘담백창법’은 7일 내내 사람들 가슴 속을 호소력 있게 두드렸다.

봉하마을 어귀 노사모회관 앞에는 대형 스크린이 내걸렸다. 그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이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말을 걸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분향소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스크린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박수를 보내고 눈물을 흘렸다.

봉하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을 붙잡고 마음 속에 그를 다시 살려냈다. 너도나도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말하고 아파했다.

1988년 방북으로 구속되고 2005년 외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은 임수경씨는 “저도 아픔이 있어 해인사에 머물 때 대통령 내외가 위로해주셨다”고 했다. 원진레이온 산업재해 노동자 40여 명도 분향소를 찾아 “88년도부터 같이 투쟁했다. 점심도 먹고 가스 구덩이에도 들어가고… 잊을 수 없다”며 애달파했다. 1989년 초선 노무현 의원은 원진레이온 산재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권오일 전 에바다 학교 교감은 청각장애인 학생 30여 명과 봉하마을을 찾아 “7년 넘게 끌던 에바다 학교 비리를 해결해주신 분이 노 전 대통령”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별
29일 0시. 분향이 잠시 중단됐다. 봉하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 ‘상록수’를 함께 부르기로 약속한 시간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가수 양희은씨의 ‘상록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봉하마을의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9일 영결식을 앞둔 이별의식의 시작이었다.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가 봉하마을에 찾아와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발인이 곧 시작될 오전 5시. 봉화산 사자바위 부근이 밝아지며 먼동이 터왔다. “받들어, 총!” 의장대 소리와 함께 운구병들이 태극기에 싸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을 모시고 마을회관 빈소 밖으로 나왔다. 조문객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관이 운구차 속으로 사라지자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사저를 돌고 오는 동안 운구차는 마을 어귀에서 기다렸다. 분향소부터 마을 입구까지 늘어선 조문객의 손에는 하나같이 노란 종이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노무현을 위한 행진곡’은 처연했다. 가사도 뒤엉키고 박자도 안 맞았지만 노래를 끝내기 아쉽다는 듯 후렴이 반복됐다.

예정된 시각보다 20분 정도 늦어진 오전 6시. 운구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구차는 한참 동안 봉하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조문객들은 쉽게 노 전 대통령을 놓아주지 못했다. 운구차 앞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떠난 운구차를 쫓아 따라갔다. 이제 봉하마을을 빠져나가면 한줌의 재가 돼 돌아올 터였다. 운구차는 수백 개 만장이 휘날리는 좁은 길을 따라 서서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운구차가 지나는 곳마다 노란 종이비행기가 일제히 날았다.

‘봉하마을 참여정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봉하마을에는 ‘작은 참여정부’가 다시 차려졌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23일)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처음으로 알린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마지막까지도 봉하마을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이후에도 장의위 운영위원장을 맡아 영결식 및 장례 일을 묵묵히 챙겼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막역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봉하마을의 ‘맏상주’였다. 그는 중국에 머물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바로 귀국, 23일 밤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이후 줄곧 봉하마을을 지키며 분향소를 찾는 정치인, 각계 주요 인사 등을 맞았다.

386측근들의 맏형 격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봉하마을에서도 ‘군기반장’ 역을 맡았다. 방송 카메라가 늘어선 포토라인 근처에서 전 참여정부 비서관·행정관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하면 “모양이 좋지 않다”며 군기를 잡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에게 “(분향소에) 나가봐야 안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라며 직접 분향소에 나가 조문객을 맞을 것을 설득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동지였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시묘살이’를 도맡았다. 국민장 기간 내내 몸이 부서져라 분향소 상주자리에 서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한명숙 전 총리가 낭독했던 눈물의 조사(弔辭)를 썼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봉하마을에 몰려든 취재진을 상대로 ‘현장 브리핑’을 맡았다.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봉마하을 아나운서를 맡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리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봉하마을 참여정부’는 참모진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100만 조문객 모두 ‘상주’이자 참여정부의 일원이었다.

조문객들은 땡볕 아래서 평균 4~5시간씩 기다려야 분향소 앞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새치기나 몸싸움, 고성은 없었다.

휴가를 내고 달려와 조문객의 식사와 헌화, 청소를 도맡는 자원봉사자도 줄을 이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휑한 봉하마을에 남아 바닥에 떨어진 노란 종이비행기를 줍고 자리를 걷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했다.

기존 정치인들과 언론에 불같이 화를 내고 손잡기를 거부하면서도 한편 자신들의 ‘정의’는 확고했다. 단순히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말할 수 없는 거칠고 순수한 에너지가 꿈틀대던 그곳은 ‘봉하마을 참여정부’였다.

<정치부·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IP : 203.250.xxx.43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지금도
    '09.6.17 2:12 PM (116.126.xxx.56)

    맘이 넘 아픕니다. 하지만 억지로 괜찮은척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립고 보고싶고 화가나는 맘을 그대로 느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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