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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합니다.

- 조회수 : 359
작성일 : 2008-09-25 18:52:12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합니다.

좋은 엄마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고마웠던 적은 있었습니다.

고생하셨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날 위해서 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의 인생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니까요.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습니다.
천성이 예민하여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수록 때때로 아플 수 밖에 없더군요.
그런 엄마에게 오늘은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나는 자식을 낳고 싶지 않았습니다.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거든요.
좋은 역할 모델을 보지 못해서 잘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생이 먼저 아이를 낳았습니다.
몇 명의 아이를 낳아야 할까 고민을 할 때, 형제가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동생입니다.
한 반에 아이들의 사이가 같은 것이 아니라 일년 동안 말 몇 번 섞지 않은 아이가 있는 것처럼
그런 아이들이 한 배속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동생의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태어날 때의 사고로 한번도 평안한 꿈을 꾸지 못하는 운명을 가진 아이입니다.  
때때로 곱지 않은 말을 내 뱉어 나를 힘들게 하던 동생은 요즘 힘겨운 날들을 겪고 있습니다.


어제는 조카가 아팠습니다.
엄마의 실수로 그 고통이 더 심해졌습니다.

조카가 병원에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렸습니다.
저는 사정상 외출 중이었지만 병이 도져서 지난 주말까지는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지요.
조카가 아픈 탓에 엄마는 얼굴도 못비치고
저는 아프다고 응석도 못 부리는 내가 너무 서러워서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동행한 가족들이 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혼자 아파트 번호키를 눌렀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안경이 없어 실수를 계속 하셨나 봅니다.
한 동안 작동을 멈춘 자동키에 시간만 한참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이에 조카는 산소 포화도가 낮아져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하네요.
결국 오랫동안 오지 않는 엄마를 여동생이 쫓아와 해결을 했다고 하는데,
얼굴이 까맣게 변한 아이를 보고 곱지 않은 말을 뱉었을 것이 뻔합니다.
듣자 하니 아빠도 한마디 보탰다고 하는 군요.


한참 후에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의 흔적을 보고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가 울고 있었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서러워서,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없어서 우셨습니다.

늙어가면서 실수가 늘어가는 엄마는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어릴 땐 엄마가 울면 짜증부터 났습니다. TV속에 나오는 엄마는 왜 내게 없는지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엄마가 울어서 속이 상했습니다. 동생에게 화가 났습니다.

네 엄마만이 아닌데 내 엄마도 되는데,
엄마 힘들까봐 그렇게 아픈데도 아끼느라고 도와달라고 전화한 통 못하는데
그런 엄마를 울려서 화가 났습니다.

동생에 전화를 해서 따졌습니다.
내 엄마라고 나도 기대고 싶은데 너한테, 네 자식한테 온전히 뺏겨서 아깝다고는 차마 말 못했습니다.
몇 번을 전화해서 엄마를 달랬습니다. 엄마는 맘이 아파 그러는지 우는 게 부끄러워
그러는지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고 끊으려만  했습니다.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 말고 나를 걱정하고 챙겨줘야 하는 게
엄마가 아니냐고 울컥 따지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냥 처음으로 무조건 엄마 편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릴 땐 많이 배운 엄마를 가진 아이가 부러웠습니다.
학원을 많이 보내주는 엄마가 부러웠습니다.
아니, 그냥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편안한 모습으로 맞아주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바쁘고 피곤했으며 빛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엄마가 너무 소중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염색을 안 하면 창피해서 집 밖을 못나간다는 엄마 나이의 절반이 넘고 보니
친구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엄마는 살아있는 건강한 엄마였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 전화해서 기쁘게 해드릴 수 있고
나 어릴 적 옛날 얘기도 같이 추억할 수 있는 것이 큰 자랑입니다.

각종 반찬을 쥐어주며 나르게 하는 것도 귀찮고 유난스러웠는데
어느 누군가는 사무치도록 부러워하는 그런 엄마가 되셨더군요.

오늘은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합니다.
한번도 내 맘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네요.
“엄마는 안 예쁜데 왜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
사람들이 엄마 닮아서 예쁘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고생에 찌든 엄마가 내 눈에는 안 예뻤나 봅니다.  

이것 말고는 엄마에 대한 불만도 말한 기억은 없지만
그때의 말 실수를 속죄할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세상에 돈 주고도 못하고 어디 가도 구하지도 못하는 것이
살아있는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몇 일이 지나고 나면 그냥 잊어버리고 살겠지만
지금은 마음속 이야기로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해봅니다.

IP : 122.36.xxx.144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제
    '08.9.25 6:58 PM (125.140.xxx.109)

    엄마로써의 엄마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써 엄마를 보셨군요.
    저는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나니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한여자로써의 엄마가 보이더군요.
    엄마... 이 이름을 가진 여자는 여러 사람의 가슴에 깊이 깊이 깔려 있는 사람입니다.
    그이유 하나만으로도 엄마가 되어 기쁘답니다.

  • 2. ...
    '08.9.25 7:11 PM (121.152.xxx.137)

    엄마...한없이 밉고 ..한없이 그리운 나의 어머니.
    살다보니..그런거죠..엄마..엄마도 살아야겠어서.
    엄마도 너무 힘들고 ..너무 귀찮아서 다 내던지고 싶을때도 많았었겠죠.

    아빠도 차갑고 고지식하셔서 어디 털어놓을데도 없었겠죠.
    근데 난 그런 엄마가 어쩐지 미웠어요...섭섭했어요.

    죄송해요...미워서 만이 아니라
    늘..나를 사랑해주어야 하는 엄마가 길을 못찾는 바보같아서 미웠어요.

    근데 오늘 이글을 읽고 그게 미움이 아니라 걱정이었던걸 알았어요.
    바보같은 사람에대한 걱정...
    엄마 ..미안해요.

  • 3. 부활민주
    '08.9.25 7:30 PM (58.121.xxx.168)

    상상하지 마시고 편지를 쓰세요,

    내가 결혼해서 부부로 사는 게 넘 힘들고
    가정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때 엄마가 항상 먼저
    떠오르더군요,
    내가 아이를 지켜줘야지-하는 생각에 이르면
    힘들게 살아왔던 엄마가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생각되는 것이였습니다.
    우리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가정을 버릴 생각을 한 적은 없겠지?라는 생각에도
    엄마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
    내자리를 정리해 봅니다.

    나도 오늘 우리 엄마에게 가을편지를 써야겠습니다.
    나 키우느라 정말 애쓰신 어머니에게
    나 가르치느라 수고하신 어머니에게
    내가 배워서 우리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글로서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리라,

    나도 늘 생각을 했었지만,

    오늘은 우리 부모님께
    편지를 해야겠네요.

    애들에게는 심심찮게 날리던 편진데,
    남편에게도 쉴새없이 연애편지를 썼었는데,
    정작 부모님께는 어버이날 형식적으로 쓴 편지밖에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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