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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IMF 2

코지 조회수 : 1,225
작성일 : 2008-09-02 18:20:58
딱 10년 전 그 날을 기억합니다.

대기업 다니던 남편, 역시 대기업 다니던 저는 임신중이었지요. 예정일은 이듬해 1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애기 잘 낳겠다고 서둘러 사직을 신청했는데,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기는 높으신 분들도 마찬가지였나봐요.
저 더러 휴가 줄테니 사직하지 말라고 부회장님 바로 밑 실세 임원이 말리시네요.
결혼한 줄도 몰랐는데...뭐 이러면서 휴직계 내라고 하시더군요.
아마도 멀리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저를 사모하셨나봐요 ㅋㅋㅋ.

당장 자를 태세였던 그 밑에 팀장, 바로 "네네" 하면서
그 회사에 전무후무한 유급 휴가를 주더군요.
저야 모 손해볼 것 없으니 그러마, 하고 이른 출산휴가에 들어 간 게
97년 가을께였습니다.

배불러 딩굴딩굴 그 때가 제 인생 최고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하면.
하는 일이 없어서 맨날 TV만 보며 지냈는데 자꾸 경제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종금사에 묶어 둔 돈을 인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났지요. 어..이게 뭥미?
음..이상하다. 주식폭락, 환율상승. 근데 전 너무 뭘 몰라서 그게 그렇게 심각한 줄도 몰랐답니다.
배속이  편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네요.

그후론 어디가나 IMF, IMF ;;-.-. 마침 유럽에서 사촌 언니가 와 있었는데
이 나라 이름이 IMF냐며 서로 씁쓰레했지요.
저희 아기가 배 속에서 제일 먼저 배운 알파벳이 I, M, F 가 아닌가 싶어요.

자, 98년 애를 낳고 봄에 복직을 했더니 일이 없더군요.
그래도 나갈 수는 없었어요. 제가 나가면 선례가 될 것 같아서.
차라리 빨리 나가서 다른 일 구하는 게 좋았을텐데
눈치도 없이 무슨 공명심에 여직원들에게 본을 보이자, 모 이런 생각이;;-.-

결국 명퇴를 받더군요. 명퇴금 달랑 받고 아무 대책없이 그만뒀지요.
"남편이 있으니까~"(이 얘기 너무 지겨워요)
여기 나온 고려증권 망해서 없어지고 제일은행 직원들의 '눈물의 비디오'가 돌고.
참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당시 저희 유일한 재테크는 은행저축이었는데 금리가 장난 아니었거든요.
그거 깨고 명퇴금 보태서 아무 생각없이 강북에 집을 샀어요.
대출은 금새 갚았는데 엄마한테 빌린 돈은 꿀꺽했네요...

그리고 대기업 다니던 남편이 무급휴가를 받았지요;;-.-정말 기도 안 차더군요.
문제는 친정. 작은 중소기업 월급사장이었는데 부도가 났어요.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미리 챙겼다며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지요....
하지만 아빤 부도가 났으니 퇴직금 한 푼 없이 잘리면서 결국..친정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어요.
돈 때문은 아닌데 이러저런 문제가 겹치면서 그리 되었어요.
아 그 때 주변 자영업 하는 친구들이나 선배들 너무너무 힘들어 했고요,
결국 일어서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다시 직장을 얻었고 남편도 뭐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네요.

물론 강북 집은 그대로...강남집 산 친구들은 지금 저와 자산이 3배 차이는 나는 것 같아요.
투기녀도 아닌데 그리 되더라고요. 죽어라 맞벌이 해봤자, 빚없이 사는 게
그나마 자랑이고 그 친구들은 아이들 반듯하게 키우고 남편 아침밥 해먹이며
알뜰하게 살면서도 갑자기 부자가 되더군요.

아가는 자라서 열 살 어린이가 되었지요.
지금 다시 IMF 얘기 나오니 그 때가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저흰 괜찮아요. 모 어찌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어찌 살까 전 그게 더 걱정되어요.
돈도 없고 철학도 없고 믿음도 없고 개념도 없고.

우린 돈만 없다고 생각했는데 본래 자랄 때도 부유하지 못해서
힘들 때도 그냥저냥 견뎠는데...그래서 배짱이라도 있었는데
오롯이 돈으로 요만큼 키운 아이들이 돈없는 세상 오면
어찌 살아갈 지...눈물이 주룩주룩 납니다.
IP : 211.243.xxx.194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8.9.2 6:32 PM (203.229.xxx.64)

    저랑 비슷하십니다..
    저도 남편과 둘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첫째를 임신중이었어요.
    IMF 구제금융 발표가 나고, 대출금리는 하늘로 치솟고,
    동료직원은 24%짜리 정기예금이 다 있다며 신규가입하던 모습이며
    달러가 2000원이 넘자 미국에 있는 친척들이 들썩거리던 거며..
    아이 돌반지 다 냈노라던 친구, 그무렵엔 전 백일반지 받은게 있었는데 내지 않았구요.
    전세값이 사정없이 떨어져서, 다가구 세 놓던 울 엄마 세입자들이 전세금내려달라는 통에
    결국 살던집 팔고 전세값 내주시던 거며...

    어째 몇달 전부터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둘 캐나다 이민 이야기를 해서
    이상타..했는데 또 돌아오네요...
    십년전. 너무너무 생생한데, 이런걸 앞으로 몇번 더 겪어야 하는 겁니까..
    이민 가고 싶어요..

  • 2. 찰랑찰랑
    '08.9.2 6:58 PM (203.241.xxx.22)

    며칠전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가 생각나 연락을 했더니, 캐나다로 이민 떠난지 6년 정도 됐더군요.우리나라에서 월드컵 한다고 광화문, 종로 바닥에서 응원 쌩쑈를 하고 다닐때, 대기업에서 퇴직금 받은 그 친구는 조용히 살길 찾아 간 겁니다. 역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야 고생을 덜 한다는......

  • 3. 경험자
    '08.9.2 7:40 PM (221.161.xxx.221)

    아래에 경험담을 쓰기도 했지만 .지방은행도 작은 증권회사.보험회사.투자금융들 힘없이 사라졌습니다. 서울역에는 노숙자가 넘치고 택시는 손님이 없어 세워두고 등등....
    문제는 그때 피해가 컸던 서민층에서 지금의 정권을 민다는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아니 겪은일을 무엇인지 모른다는게 더 무섭지요.
    다음에도 또 딴나라당 입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 4. 장보기무서워
    '08.9.2 7:58 PM (203.229.xxx.213)

    그때.. 중소기업 하시던 분들 자영업자들 자살했다는 이야기 매일 뉴스에 나오던거 기억 나세요?... ㅠㅠ

  • 5. 그때
    '08.9.2 8:39 PM (221.146.xxx.134)

    티브 인터뷰에서 학군단 출신 노숙자 아저씨 인터뷰가 아직도 생각나요
    내가 이리 살줄 알았으면...하면서 눈물 훔치던 그 아저씨
    아마 도피생활 중이셨던듯......

    동네 수입상가니 고가물건 팔던 곳은 70% 세일 80% 세일도 하고
    돈 있는 사람은 살기 좋은 세상이였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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